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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마성   

보마성(寶馬城)은 길림성 안도현(安圖縣) 이도백하진(二道白河鎭)에서 서북쪽으로 4㎞ 떨어진 구릉 남쪽 기슭에 있다. 사방은 면면히 이어진 구릉지대로, 성 남쪽은 지세가 점차 낮아진다. 남쪽으로 약 500m 떨어진 보마하(寶馬河)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 이도백하(二道白河)로 들어간다. 보마하는 현재 두도백하(頭道白河)와 이도백하 사이를 연결하는 하천이 되었다. 보마촌(寶馬村)은 성에서 서북으로 1㎞ 떨어진 두도백하 우안에 있다. 서남쪽으로 5㎞ 떨어진 곳에는 왜왜정자(歪歪頂子 : 平頂山이라고도 부른다)가 있다.

이 성의 평면은 장방형이다. 동벽은 길이 126m, 서벽은 길이 약 132m, 남벽은 길이 103m, 북벽은 길이 102m로, 전체 길이는 465m이고, 방향은 190°이다. 성벽과 성벽 기단은 돌을 쌓았고, 윗부분은 흙으로 쌓았다. 성벽은 심하게 파괴되어 남쪽 절반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므로 문지는 확인할 수 없다. 너비 4m, 높이 1.2m에 달하는 북벽은 보존상태가 비교적 좋다. 성벽 윗부분에서는 옹성이나 각루·치·해자[護城河] 등이 발견되지 않았다. 성 밖은 모두 경작지로 바뀌었으며, 성 안의 남쪽도 최근에 경작지로 개간되었다. 보마촌으로 통하는 동서향의 도로는 북벽 밖 10m를 지나간다.

성 안팎에는 많은 초석·기와편·도기편 등의 유물이 흩어져 있다. 성 중간에는 남벽에서 36m 떨어진 곳부터 남쪽에서 북쪽으로 차례로 3개의 흙 기단이 있다. 가장 북쪽에 있는 것은 북벽에서 14m 떨어져 있다. 흙 기단의 규모는 동서 길이 22m, 남북 너비 약 20m, 높이 1~2m로, 남쪽에 있는 흙 기단이 가장 높다. 흙 기단과 흙 기단 사이의 거리는 약 10m 정도이다. 이 흙 기단 위와 그 주위에는 많은 기와편들이 흩어져 있다. 남쪽에 있는 흙 기단 위에는 초석 4개가 지면위로 노출되어 있어서 건물지였다고 생각된다. 남쪽에 있는 흙 기단 남동쪽에는 4개의 초석이 배열되어 있다. 그중 흙 기단 중간에 있는 초석 1개가 가장 크고 가공상태도 정교하다. 그러나 현재는 이미 몇 조각으로 깨졌을 뿐만 아니라 그중 일부는 없어졌다. 초석의 길이는 98㎝, 너비 96㎝, 두께 48㎝이다. 윗부분에는 지름 83㎝, 높이 4㎝로 둥근 북같은 형태가 조각되어 있고, 테두리에는 2개의 둥근 원 무늬가 수놓아져 있다.

최근에 어떤 사람이 흙 기단위에서 기와편을 많이 수습해 갔는데, 그 중에는 짐승얼굴무늬 와당·구적·암키와·언강이 있는 기와·푸른색 벽돌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수키와는 언강부분 짧아 그 길이는 불과 2.5㎝에 지나지 않는다. 언강 윗부분에는 두 줄의 테두리가 있다. 기와는 모두 베무늬가 있는 회색이다. 어떤 벽돌은 매우 크며, 그 잔존 길이는 44㎝, 너비 25.3㎝, 두께 6.8㎝이다. 어떤 것은 완전한 장방형으로 길이가 35.5㎝, 너비 16.5㎝, 두께 5.3㎝이다. 이들은 아마도 요금시기의 유물로 생각된다.

성 서북쪽 모서리에는 용도가 확실하지 않은 지름 8m, 높이 1.5m의 흙둔덕이 있다. 남쪽 흙 기단에서 동남쪽으로 20m 떨어진 곳에는 근대에 판 우물유적 1곳이 있다. 우물 안에는 아직도 물이 있다.

성안의 지면에 흩어져 있는 자리가 옮겨진 초석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원주형으로 북모양을 하고 있으며 윗부분은 머리를 묶은 형상이다. 윗부분은 지름 50㎝, 높이 33m이다. 함몰된 부분에는 3줄의 선 무늬가 있고, 그 위와 아래에는 연꽃문양의 기하학적 무늬가 수놓아져 있다. 두 번째는 북모양을 한 것으로, 윗부분은 지름 48㎝, 높이 30㎝이다. 무늬가 없으나 가공상태는 매우 정교하고 세밀하다. 세 번째는 방형으로 된 것으로 윗부분에는 십(十)자 형태의 홈[凹槽]이 있다. 네 번째는 방형 초석으로 윗부분에는 길이 6㎝, 너비 3㎝, 깊이 5㎝의 장방형 구멍 3개가 뚫려 있다. 다섯 번째는 손으로 만든 낮은 받침형태로 지름 55㎝, 두께 23㎝이다. 이러한 형태의 초석이 2개가 있다. 초석은 모두 사암질이다.

성 안팎 지면에 흩어져 있는 유물에는 기와조각·벽돌조각·건축재료·도기편·자기편 등이 있다. 기와편은 회색이 많으나, 약간의 홍갈색 기와도 포함되어 있다. 모두 무늬가 있다. 도기편은 니질회도이다. 모두 바닥이 평평한 그릇이며, 주둥이가 밖으로 벌어지고 입술이 말려있는 구연부가 많이 보인다. 건축재료는 니질로, 사슴뿔모양·뾰족한 혀 모양 등이 보이는데 모두 깨져서 원래의 형태는 분명하지 않다.

1978년 성고고대가 이 성을 조사할 당시에 약간의 지압문 기와편이 발견되어 이 성을 발해성으로 판단하였다.

『안도현지』(민국17년본) 고성지(古城志)에 "보마성은 현에서 서남쪽으로 70리 떨어진 곳에 있으나 축조연대는 알 수 없다. 현재는 이미 무너져 폐허가 되어 성 기초와 곳곳에 기와편들이 흩어져 있을 뿐이다. 성 둘레는 260장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성안 유물로 보면, 이 성은 발해시기에 축조하여 요금시기에도 사용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보마성은 당나라시기 발해국이 당나라와 교통하던 주요한 교통로인 "조공도"에 있으므로, 당시에는 매우 중요한 고성이었다. 학계의 일부 학자는 이 성을 발해시기 중경현덕부 관할의 흥주(興州)로 비정하기도 한다. 그밖에도 "당나라시기 어떤 장군이 이곳에서 귀한 말을 얻어 보마성(寶馬城)으로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현지인들에 따르면, 청나라 말기 성안에 절을 세울 때, 성 서북쪽 모서리에 비구니[尼姑] 부도[座棺]가 있었으나 현재는 없어졌다고 한다. 성안에서 청나라 시기 벽돌이나 기와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교하고 세밀하게 가공한 몇몇 초석은 합이파령(哈尒巴嶺) 의극당아덕정비(依克唐阿德政碑) 부근 청나라 시기 사찰·송강진(松江鎭) 고려성(高麗城) 천명산(天明山)에 있는 민국시기 사찰지 초석과 유사하다. 이에 근거하면, 상술한 전승은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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