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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의 강, 두만강을 말한다(19) - 고구려시기 녀성파워의 이모저모
2. 화희를 통해 보는 류화부인 원형의 재현
김관웅  2012-9-6 9:20:23

고구려의 제2대왕 류리왕(琉璃王,기원전 19―기원 18년 재위)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와 졸본부여로 탈출한 아버지 주몽을 찾아가던 경과나 세자로 책봉되던 과정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므로[3] 이 글에서는 략한다.
 
주몽이 별세한 후 왕위를 이어받아 류리는 비록 왕이 되기는 하였지만 그의 결혼생활도 행복하지 못했다. 류리는 왕이 된 이듬해에 비류국 국왕이였던 송양의 딸을 맞이하여 왕후로 삼았지만 고작 1년만에 왕후는 그만 요절하고말았다.
 
류리명왕은 다시 두명의 안해를 얻어 궁궐을 두채 짓고 따로 살게 하였는데, 한명은 고구려녀자 화희(禾姬)였고 다른 한명은 한족(汉族)녀자인 치희(雉姬)였다.
 
두 녀자가 한 남자와 살고있으니 서로 질투하는것은 어쩌면 당연할수도 있었겠지만, 이 두 녀자는 워낙 출신이나 배경이 너무나도 달랐기때문에 질투는 도를 넘어섰다.
 
그러던 어느날, 평소 사냥을 즐기던 류리명왕이 7일 동안이나 사냥터에서 돌아오지 않는 일이 생겼다. 남편이 없는 동안에 화희와 치희는 서로 크게 다투었다. 화가 난 화희가 치희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너는 한가(汉家)의 비첩(卑妾)인데 어찌 무례함이 이다지 심한가?”
 
한족녀자 치희는 드살이 센 고구려녀자 화희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지라 궁궐에서 도망을 쳤다.
 
사냥에서 돌아온 류리명왕이 이 소식을 듣고 급히 말을 몰아 치희를 쫓아갔지만 치희는 화가 나고 또한 화희가 무서워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이에 류리명왕이 나무밑에서 잠시 쉬다가 꾀꼬리 한쌍이 노는것을 보고 지었다는 한시(汉诗)가 바로 그 유명한 “황조가(黄鸟歌)”[4]이다.
 
翩翩黄鸟,  펄펄 나는 저 꾀꼬리
雌雄相依。  암수 서로 정답구나
念我之独,  외로워라 이 내 몸은
谁其与归。  뉘와 함께 돌아갈고.
 
유교의 “칠거지악(七去之恶)”에는 처첩이나 혹은 첩들 사이에서 질투하면 남편이 쫓아낼수 있다는 조묵이 있었다. 그러나 유교의 영향이 별로 없었던 고구려 초기에는 국왕조차 처첩 사이에서 질투를 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더구나 화희 같은 고구려 녀자가 이렇게 강짜를 부리는데는 더욱 속수무책이였던것 같다.
 
이처럼 고구려때 녀성들의 파워는 대단한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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