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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앞 고립된 유가족들 “대한민국 침몰하게 둘 수 없어 싸우는 거예요”
경찰, 노숙농성 주변 차단...유가족 “국정원이 김영오씨 고향 내려가 사찰했다” 주장
정웅재 기자 jmy94@vop.co.kr 발행시간 2014-08-24 17:25:05 최종수정 2014-08-24 20:04:24

세월호 가족대책위 대통령 면담 촉구 3일차 농성 기자회견
세월호 가족대책위 대통령 면담 촉구 3일차 농성 기자회견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주민센터 청와대 앞에서 열린 농성 3일차 세월호 가족대책위 대통령 면담 촉구 기자회견에서 요구가 적힌 손피켓과 편지를 들고 있다ⓒ김철수 기자

세월호 사고로 자식을 잃은 유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청하면서 24일로 3일째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사무소 앞에서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농성을 시작한 22일, 청와대에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신청했지만 청와대에선 아직까지 묵묵부답 대답이 없다.

대통령 면담 신청, 돌아온 건 공권력 '통제'
유족들 경찰차로 둘러싸고, 경복궁역에서부터 시민들 검문

오히려 그들에게 돌아온 건 공권력의 통제다. 유가족들이 노숙중인 청운효자동사무소 앞마당 주변은 경찰차량으로 빙 둘러 물 샐틈없이 막아놨다. 밖에서 보면 안에서 누가 무엇을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마치 고립된 섬과 같다. 기자들만 신분증을 제시하고 농성장으로 들어갈 수 있을 뿐이다.

경찰은 경복궁역에서부터 경찰력을 배치해 검문을 강화하고 있다. 기자도 경복궁역에서 청운효자동사무소까지 불과 1km밖에 안 되는 거리를 걸어가며 경찰에게 세 차례나 "실례지만 어딜 가시냐" 는 질문을 들어야 했다.

농성장에서 유가족들을 돕고 있는 이윤상 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는 "시민뿐만 아니라 종교인, 신부님 등도 막고 있다"라고 전했다.

2학년 9반 예지엄마 엄지영 씨는 경찰의 이런 불법적 행태에 대해 분노를 터뜨렸다.

"오늘 유가족 등 30~40명이 광화문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보니까 경찰차 40대 가량이 길가에 세워져 있다. 민생 치안도 많은데 저희 30~40명 때문에 500여 명의 경찰이 지키는 거 보니 국민들 세금이 거리에 버려지는 것 같다. 국민 세금을 이렇게 막 써도 되는지 묻고 싶다. 경찰이 이러는 거는 시민들이 저희한테 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생각 밖에 안 든다. 시민들이 저희들과 함께 할까봐 겁이 나서 막는 것 같다."

"펄펄 끓는 아스팔트 위 농성 보다 
더 힘든 건 왜곡과 거짓"

70~80여명의 세월호 유가족들은 면담 요청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답변을 기다리면서 아스팔트 바닥에서 지내고 있다. 첫날인 22일에는 맨 바닥에 누워 비닐만 덮고 잤다. 그나마 지금은 은박스티로폼을 바닥에 깔고 지낸다.

"첫날 경찰이 모포 한 장 못 들여오게 막아서 비닐만 덮고 잤어요. 은박스티로폼을 들여오려고 경찰차 밖에서 농성장 안으로 던졌다가 (경찰이) 찢고 난리가 났어요. 시민들이 의원님과 목사님을 통해서 그나마 덮는 모포를 들여왔는데 숫자도 안 맞아서 부족해요." (고 박성호 군 어머니, 정혜숙 씨)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비라도 내리면 온 몸으로 속절없이 비를 맞아야 하는 노숙이 편할 리가 없다. 아니 당연히 불편하고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더 힘든 건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왜곡과 근거없는 거짓 선전이다.

2학년 7반 이수빈 어머니 박순미 씨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의 말을 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 말들이 저희를 너무 아프게 한다. 뜨거운 햇볕 아래 펄펄 끓는 아스팔트 위에서 농성하는 거 너무 힘들다. 그런데 더 힘든 게 저희를 비방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다. 그 말들이 저희를 불구덩이에 집어넣고 있다"고 말했다.

박순미 씨는 "진실되지 않은 말은 하지도 말고, 듣지도 말아야 한다"면서 "왜곡되지 않은 말, 진실된 말을 내보내달라"고 언론에 당부했다.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 24시간 감시하는 CCTV
"시민들에겐 법 지키라고 하고
경찰이 법대로 하는 건 하나도 없지 않냐"

유가족들은 이날 오후 2시 농성장인 청운효자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다시 한번 박근혜 대통령에게 면담을 촉구했다. 유가족들은 당초 기자회견 후에 박 대통령에게 전하는 말을 적은 노란 풍선을 띄울 계획이었다. 그러나 풍선을 띄우지 못했다.

세월호 유가족 대책위 유경근 대변인은 "오늘 풍선 날리기를 기획했는데 무산됐다. (청와대 앞인) 이곳이 비행금지구역이라서 항공법 위반이라며 풍선을 날려선 안 된다고 했다. 그럼 역으로 묻고 싶다. 저희보곤 불법이라고 풍선 날리기는 안 된다고 하고선 (경찰은) 저 불법은 왜 하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유 대변인은 손으로 청운효자동사무소 네거리에 설치돼 있는 CCTV를 가리켰다. 도로 교통상황을 체크하도록 돼 있는 CCTV는 도로가 아닌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을 향하고 있었다. 경찰이 유가족들을 경찰 차량으로 고립시킨 것으로도 모자라 CCTV로 24시간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 셈이다.

유 대변인은 "경찰이 차량으로 이렇게 가로막고 있는 것도 불법이다"라며 "시민들에게는 법을 지키라고 하고 경찰이 법대로 하는 건 하나도 없지 않냐"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더 이상 침몰하게 놔 둘수 없어서
유가족들이 싸우는 거라는 걸 분명하게 알려주세요"

박근혜 대통령은 5월 16일 유가족과 청와대에서 면담을 한 자리에서 "무엇보다 진상규명에 유족 여러분의 여한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131일이나 흐른 현재까지 특별법 제정도 안 되고, 유가족들이 노숙농성을 하면서 면담을 요구하고 있는데 유가족들을 외면하고 있다.

김병권 세월호 유가족대책위 대표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여 안전한 사회를 건설하자는 저희 가족들의 요구가 왜 이렇게 안 받아들여지는지 알 수가 없다"라며 "제일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눈물 흘리며 가족들과 국민들의 바람대로 철저한 진상규명을 약속했던 대통령님이 이제는 말과 얼굴을 바꾸며 뒤로 물러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이 슬픈 농성을 하루속히 종결할 수 있도록 대통령님의 결단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다른 유가족들의 심정도 다르지 않다.

고 박성호 군의 어머니 정혜숙 씨는 '지금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지금 경제논리로 사람 죽이고 마음대로 하는 거잖아요. 그것도 정부가 자국민을 상대로요. 경제논리가 생명까지 좌지우지하고 있는 세태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유가족들이 울분을 표시하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정 씨는 "우리는 산 속이라도 들어가서 사는 게 속 편한 일인지도 몰라요. 그런데 그게 해결책은 아니니까, 그런다고 속 편해지는 것도 아니고 또 (세월호 사고와 같은) 이런 뉴스를 어디서 듣는다면 그걸 막지 못한 죄책감이 들거 아녜요"라고 덧붙였다.

정 씨는 "우리나라가 더 이상 침몰하게 놔둘 수 없어서 유가족들이 싸우는 것이라는 걸 분명하게 알려 달라"면서 "국민들이 함께 나서 주셔서 대한민국이 더 이상 침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학년 9반 예지 엄마 엄지영 씨도 "대통령님이 저희를 한 번 만나는 게 그렇게 어렵냐"면서 "저희는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저희 얘기 한 번만 들어달라는 것이다. 저희를 만나서 저희 마음을 한 번 읽어주시면 좋겠다. 정말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기자회견이 끝나고, 박 대통령에게 전하는 글을 적은 노란 종이로 비행기를 접어 경찰차 밖으로 날려 보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국정원 직원들이 김영오 씨를 불법사찰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유경근 대변인은 "국정원 요원들이 김씨 고향인 전북 정읍에 내려가 과거 어떻게 생활했는지 사찰하고 다닌 것이 포착됐다"며 "국정원이 자신의 입맛에 맞게 공작을 벌여서 김씨 뿐만 아니라 유가족들을 몰아붙이고 분열시키려고 한다"고 밝혔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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