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8129.html  
* "현대인보다 뜨거웠던 사랑 - 한겨레21"에서 "신의와 정절의 사랑 도미 부인과 개로왕" 내용만 가져왔습니다.

신의와 정절의 사랑 도미 부인과 개로왕
현대인보다 뜨거웠던 사랑
[한가위별책-백제 깨어나다] - 동아시아의 디오게네스,백제인
국경을 초월하고 목숨마저 내던진 백제의 연인들
[2010.09.17 제828호]  백순화 백석대 교수·정보통신학부  


국경을 초월하고 목숨마저 내던진 백제의 연인들


오늘날 대중문화에서 사랑은 압도적인 소재다. 대중문화가 재현하는 사랑은 차고 넘치는 스펙터클이다. 스펙터클한 대중문화에 휩싸여 사는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런 우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고대인도 사랑을 했을까? 빤한 대답이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사랑을 했다. 다만 사랑도 시대와 문화의 특성을 일정하게 반영한다는 점에서 고대의 사랑이 오늘날의 사랑과 똑같은 모습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펙터클해야만 사랑은 아니다. 고대인은 지금보다 훨씬 지독한 사랑을 하지 않았을까?

신라인의 사랑 유형에는 지략과 화해의 사랑, 감응과 승화의 사랑, 경계를 초월하는 사랑이 있었다고 한다(최정선, <신라인들의 사랑>, 프로네시스, 2006). 그렇다면 백제인의 사랑은 어땠을까? 백제 설화로 전해오는 대표적인 사랑 이야기로는 잘 알려진 ‘무왕과 선화 공주’를 비롯해 안장왕과 한씨 미녀’ ‘도미 부인과 개로왕’ ‘아사달과 아사녀’ 등이 있다. 이 사랑 이야기들은 국경을 초월한 사랑, 신의와 정절의 사랑, 기다림과 이별·배려하는 사랑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한마디로 기꺼이 목숨을 거는 사랑이다.

신의와 정절의 사랑
도미 부인과 개로왕

도미의 아내는 백제 여성으로 <삼국사기> 열전에 실린 유일한 사람이다. <삼국사기>에는 시대적 배경을 개루왕(제4대) 때의 일로 기록했으나, 개루왕은 재위 기간이 128~166년에 해당해 열전의 내용과 맞지 않는다. 제21대 개로왕(재위455~475)으로 추정된다. 남편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절대 권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사랑을 지켜낸 도미 부인의 고귀한사랑 이야기는 오래도록 백제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져서 보령시의 도미항을 중심으로 ‘상사봉’ ‘미인도’ 등의 증거물과 함께 오늘도 살아서 전해지고 있다. 충남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에는 도미 부인의 정절각을 지어 영정을 봉안하고 지금도 그 정절을 높이 기리고 있다. 이 이야기는 1984년 5월 창작무용극 <도미부인>으로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문화행사 무대에 올려졌고, 그 뒤 18개국에서 100회 이상 공연을 했다.

옛날 백제 개루왕 때였다. 전마들(전마평·충남 보령시 청소면 진죽리 일대)의 군용마를 기르는 목장에 어느 날 임금이 행차를 했다. 그때 임금은 도미의 아내가 천하제일의 미인이라는소리를 듣게 되었다. 워낙 여색을 밝히던 임금이라 신하를 시켜 목수 일을 하는 도미를 불러 말했다. “어둡고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은근하고 교묘한 말로 꾀면 그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여자가 없을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도미가 대답했다. “신의 아내만은 비록 죽음에 이른다 하더라도 두 마음을 갖지않을 것입니다.” 왕은 이를 시험하고자 도미를 궁궐에 붙잡아두고 신하 한 사람을 왕으로 분장시켜 도미의 집으로 보냈다. 신하는 밤중에 도미의 집에 이르러 도미부인을 불러 말했다. “내 너의 아름다움을 듣고 좋아한 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도미와 내기를 하였는데, 내가 이겼으므로 너를 얻게 되었다. 내일 너를 후궁으로 삼기로 하였다. 이제부터 네 몸은 짐의 소유가 되었다.

자, 이리 오너라. 어디 한번 안아보자.” 왕으로 분장한 신하가 그녀의 몸을 안으려 하자, 도미의 아내가 말했다. “국왕은 거짓이 없을 것이니, 어찌 제가 순종하지 않겠습니까? 청컨대 대왕께서는 먼저 방으로 들어가소서. 소첩이 다시 옷을 갈아입고 곧 들어가 대왕을 모시겠습니다.”방에서 물러 나온 도미의 아내는 한 계집종을 예쁘게 단장시켜 방으로 들여보내 모시게 했다. 왕은 나중에 그녀가 속인 것을 알고 크게 노했다. 왕은 도미를 불러 사흘 동안 말 100마리를 수용할 수 있는 마구간을 짓게 했다. 사흘째 서산에 지는 해가 한 뼘쯤 남고 마구간이 다 지어졌는데, 임금이 신하를 시켜 마구간의 출입문에 다는 빗장 나무 하나를 몰래 감추게 했다. 임금은 왕명을 어겼다고 노발대발하며 도미의 양쪽 눈을 빼고 조각배에 태워 바다로 떠내려 보냈다. 그러고는 다시 도미의 처를 불러 “네 남편은 이미 죽었다. 오늘 밤 내 시중을 들면 후궁으로 삼겠다”고 했다. 도미의 아내는 얼굴에 밝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어찌 이런 좋은 일을 마다하겠습니까? 하온데 소첩이 지금 월경 중이니 청컨대 몸이 깨끗이 될 때를 기다려 모시고자 하옵니다.”왕은 그 말을 믿고 이를 허락했을 뿐 아니라 금은 패물까지 두둑이 줘서 며칠 뒤에 다시 오도록 했다. 대궐을 빠져나온 도미의 아내는 그날 저녁에 상사봉(相思峰)으로 올라 도미항 쪽을 바라보며 통곡했다. 이런 연유로 그 산봉우리를 상사봉이라 부르게 되었다. 하늘도 무심치 않았던지, 그녀가 상사봉에서 내려와 해안가에 다다르니 한 척의 빈 조각 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배를 타고 흘러가는 대로 맡겨두었더니 천성도라는 섬에 도착하게 되었다.

하늘의 도우심인가, 그녀는 그곳에서 두 눈을 잃고 장님이 된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풀뿌리를 캐 먹으면 연명했지만 행복했다. 그러나 언제 왕의 신하들이 들이 닥칠지 몰라서 늘 불안했다. 마침내 그들은 함께 배를 구해 타고 고구려 땅으로 건너갔다. 고구려 사람들이 이들을 불쌍히 여겨서 옷과 먹을 것을 나눠주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가난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다가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도미 부인 묘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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