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log.daum.net/jirisanlove/9607229
가야가 살아온다 <10> 임나일본부설 허구성
속속 드러나는 허구성
국제신문 2002년 11월
한동안 수면 아래로 잠복했던 ‘임나일본부설’이 불과 3년전 한일 사학계의 관심사로 대두되었다가 또 다시 허구로 밝혀진 사례가 있다. 사적 119호인 경남 고성 송학동 고분이 바로 그 진앙지였다.
이 곳 고분은 1980년대부터 일본에서만 그 존재가 알려져 있는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전방후원분이란 일본에서 4~6세기에 걸쳐 조성된 당시 일본의 천황(天皇)을 비롯한 최고 지배계급 무덤. 외형이 평면상으로 볼 때 앞부분은 네모난 방형, 뒷부분은 무덤의 주체인 원형 봉토(圓形封土)를 보여 마치 열쇠구멍을 연상케 했다.
송학동 고분을 놓고 그 동안 한일 사학계는 의견이 분분했는데 1999년말부터 2000년 초까지 동아대 박물관이 발굴조사를 벌여 전방후원분이 아닌 전형적인 가야양식 무덤으로 밝혀졌다. 만일 이 무덤이 전방후원분으로 판명됐다면 임나일본부설은 사실로 드러나는 셈이어서 발굴 결과에 한일 사학계가 주목했었다.
최근에는 금석학자 청명 임창순씨가 생전에 소장했던 광개토왕릉비 탁본이 공개돼 ‘임나’가 재조명되고 있다. 이 탁본은 100년 넘게 변조 의혹을 받고 있는 능비 앞면 제 9행의 ‘신묘년 조’ 기사 부분이 눈길을 끈다.
이를 판독한 임세권(안동대) 교수는 “이 대목에서 渡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海자는 매(每·매양이라는 뜻)라고도 읽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단은 海로 해석하는게 자연스럽다고 덧붙였다.
海로 볼 경우 이 대목은 일반적으로 “왜가 바다를 건너 백잔(백제)과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로 해석되지만, 남북한 역사학계는 주어를 왜가 아니라 고구려로 보고 있다.
아무튼 여러 탁본 중에서 사료가치가 높은 청명본 탁본이 공개됨으로써 광개토왕릉비 연구와 여기에 나오는 ‘임나가라(任那加羅)’에 대한 연구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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