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vadada.tistory.com/354#<13> 가야의 장신구
가야가 살아온다 <13> 가야의 장신구
가야인들은 구슬을 몹시 좋아했던 모양이다. 신라인들이 금은을 선호한 것과 대조된다.
‘삼국지’ 위서동이전에는 변진 사람들은 구슬을 보물로 여기고 옷에 꿰어 장식한다는 기록이 있는데, 가야고분에서 실제로 다채로운 구슬 꾸러미가 쏟아졌다.
학계의 연구를 보면 가야인들은 색색의 유리구슬이나 수정, 대롱옥 등으로 목걸이나 팔찌를 만들어 착용하고 조가비를 다듬어 목걸이나 팔찌를 만들었다. 팔찌는 왜에서 수입한 것도 있었다.
김해 양동 고분군은 가야 장신구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준 곳이다. 양동 270호분에서 나온 구슬 꾸러미는 현대인의 눈을 의심케 할 정도다. 수정제 곡옥(曲玉), 다면옥(多面玉) 및 남·청·홍색의 유리제 구슬로 된 꾸러미는 길이의 총연장이 무려 313㎝에 달했다.
양동 322호분에서 나온 것도 총 길이가 158㎝였는데 구성물이 다채롭기 그지없다. 수정제의 곡옥, 다면옥, 마노제의 환옥(還玉), 남색 유리제의 환옥 등은 오늘날 금은방에 갖다놓아도 손색없을 정도다.
임효택 동의대 박물관장은 “2~3세기 가야고분의 구슬은 장식성이나 출토량에 있어 당대 최고 최대를 자랑한다”며 “재질도 유리, 수정, 호박, 비취 등으로 다양하고 형태도 판옥, 대롱옥, 다면옥 등으로 화려하고 섬세하다”고 지적했다.
가야인들이 구슬을 이용하여 부를 표시하려는 관습은 4세기대의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도 나타난다. 가야에서 전형적인 귀금속 유물이 출토되는 시기는 5세기 이후로 부산 복천동 고분군을 통해서다. 이는 신라에서 금은 제품이 출토되는 시점과 거의 비슷하다.
홍익대 김태식(역사교육) 교수는 “가야시대 장신구는 일반인들이 소유하기 어려운 것으로, 늦어도 3세기 전반에는 가야사회에 사회·경제적으로 일반인과 구별되는 귀족계급이 나타났다고 볼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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