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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가 살아온다 <18> 발굴사 쾌거 '다호리' 황폐화
국제신문
다호리 유적은 없다?
한국 고대사를 다시 쓰게 만든 창원 다호리 유적은, 허망하게도 현장에 아무런 흔적이 없다.
국도 25호선이 지나는 창원시 동읍 삼거리의 이정표에는 ‘주남저수지·다호리 유적’이라 적힌 표시가 분명하게 돼 있다. 그러나 30번 지방도를 따라 들어가면 주남저수지 가는 길만 안내되어 있을 뿐, 다호리 유적은 온데간데 없다. 이상한 일이다.
어렵사리 다호리 유적 안내판을 찾는다 해도 실망하기는 마찬가지. 고분군이 있어야 할 자리에 논밭과 과수원, 그 중간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나 있기 때문. 논배미 귀퉁이의 안내판만이 이곳이 사적 제327호라는 사실을 말해줄 뿐이다.
고고학적 발굴사의 쾌거로 평가되는 다호리 유적은 왜 이 모양인가.
“사적지의 절반 가량이 사유지다. 예산확보가 안돼 보존 정비계획조차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는 고분을 정비하고 전시관이라도 지어야 할 것으로 안다.” 창원시 문화계 담당자의 말이다.
지난 88년초 도굴된 고분이 신고되면서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해 발굴이 이뤄진 다호리 고분군은 그해 9월 3일 다호리 237번지 일대 120필지, 10만1천8백2㎡가 사적지로 지정됐다. 그러나 이후 10년이 넘도록 당국은 예산부족을 이유로 방치하고 있다.
다호마을 주민 김용기(66)씨는 “다호리 유적은 일제때부터 도굴이 자행됐으며 정식 발굴 직전까지 도굴꾼들이 수시로 들락날락했다. 다호리 일대 모두가 고분이라는 말도 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옛날 낙동강 제방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마을 동남쪽에 있는 야산(현지에서 ‘댐등’이라 부름)까지 물이 들어왔다고 하며 조개무지 흔적도 발견되고 있다”고 전했다.다호리 유적에서 나온 2천여년전의 칠기와 목재유물이 기적적으로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김씨가 말하는 지형적 조건과도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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