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20809240001


오골성(烏骨城)


이 칭 : 옥골성(屋骨城), 봉황산성(鳳凰山城)

소재지 : 중국 요령성(遼寧省) 봉성진(鳳城鎭) 고성리(古城里) 봉황산(鳳凰山)

규 모 : 둘레 15,955m


고구려 요동지방의 중심 성으로 최고 지방관인 욕살(褥薩)이 파견된 대성(大城)의 하나. 


고구려가 요동에 진출한 뒤인 5세기 경에 처음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쪽으로 낭낭산성을 거쳐 안시성에 이르고, 서북으로 백암성을 지나 요동성과 통하며, 동남쪽으로는 압록강가의 박작성(泊汋城)을 지나 평양이나 국내성과 이어지는 요동반도 동남부의 교통 중심지에 자리하고 있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성이다. 이 산성은 서쪽으로 봉황산의 줄기와 동쪽으로 고려성자산(高麗城子山)이라는 우뚝 솟은 산봉우리와 가파른 바위 절벽들이 이어지는 험준한 산세를 자연 성벽으로 삼고, 산봉우리 사이의 낮은 지대에는 성벽을 쌓았다. 성의 규모는 둘레 15,955m로 현존하는 고구려 산성 가운데 가장 크다. 86구간의 석축 성벽과 87구간의 천연장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돌로 쌓은 성벽의 총 길이만도 7,525m에 이른다. 성 내부는 평탄한 지대가 펼쳐져 있는데, 명나라 때 편찬된 《요동지》에는 “오골성에 10만의 무리를 수용할 수 있다"고 하였다.


오골성이 위치한 곳은 전쟁이 빈번한 요하 일선과 비교적 멀지만, 교통에 요지인 만큼 그 역할은 매우 중요하였으며, 일선에 배치된 다른 성을 배후에서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기능을 하였다. 645년 당나라 이세적(李世勣) 군대가 백암성을 공격하자 오골성에서 1만여명의 군사를 보내 도왔고, 648년 당나라 설만철(薛萬徹)이 박작성을 쳐들어가 포위하자 고구려 장군 고문(高文)은 오골성과 안지성의 군사 3만을 거느리고 와서 대응하였다. 특히 645년에는 당 태종이 직접 안시성을 공격하다 여의치 않자, 항복한 고구려 장수 고연수 등이 오골성을 먼저 공격하고 평양으로 직공하자는 계책을 건의한 바 있다. 그러나 건안성과 신성에 있는 10만 병력과 안시성의 병력이 퇴로를 막고 뒤를 칠까 두려워 오골성을 치지 못하고 결국 안시성에서 패하고 돌아간바 있다. 오골성은 요동에서 평양으로 이어지는 중요 길목임을 알 수 있다.


고구려가 멸망하고 부흥운동이 한창인 670년에도 고구려 장군 고연무(高延武)와 신라 장군 설오유(薛烏儒)가 연합하여 오골성 일대에서 당나라의 말갈군를 격파한 바 있다. 


성벽의 잔존 상태는 매우 양호하며, 북쪽 성벽에 용도를 알 수 없는 석축 축조물이 남아 있다.



오골성 망루


오골성 북쪽 성벽


오골성 성벽


오골성 전경, 중국 요령성(遼寧省) 봉성진(鳳城鎭) 고성리(古城里)

오골성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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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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