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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답사기 3 : 환인 (오녀산성 사적진열관), 환인~집안 - 백유선" 에서 오녀산성 사적진열관만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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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답사기 3-1 : 환인 (오녀산성 사적진열관)
둘째날(8월 6일) 2
둘째날(8월 6일) 2
2005.09.14 13:24:56 백유선
고구려답사기 3-1 : 환인 (오녀산성 사적진열관) - 백유선 http://tadream.tistory.com/13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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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녀산성 사적진열관
점심을 먹고 오녀산성 사적진열관으로 향했습니다. 아직 정식 개관을 하지 않은 듯 문을 닫고 있다가, 우리 일행이 도착하자 문을 열어주어 관람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은 환인에 와도 찾지 않은 곳이라 했습니다. 중국학자를 비롯해 아는 사람이 많은 마당발 서교수 덕분에 우리 일행은 이곳을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오녀산성 전시관. 사진처럼 평상시에는 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관람이 어렵습니다. 왜 그런지는 정확히 알기 어려웠습니다.>
사적진열관은 세계 문화유산 심사를 받기 직전에 급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만든 중국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겠죠? 전시된 내용은 오녀산성의 모형과 오녀산성에서 발굴한 유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신석기 시대의 화살촉부터 청동기 시대의 유물,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한 현토군 시대의 유물, 그리고 고구려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그 중 상당수는 복제품이었으며 진품은 다른 곳에 보관한 듯 했습니다.
그런데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곳에서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노골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고구려사의 중국사 편입 현장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특히 고구려의 건국 과정을 설명한 글에는 이미 고구려는 우리 역사가 아닌 중국 역사로 둔갑해 있었습니다. 그리 넓지 않은 전시관이었지만 관계자가 계속 따라다니면서 사진 촬영을 제지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현장을 담아두기 위해 그들의 눈을 피해 사진 촬영을 감행했습니다.
<오녀산성 사적진열관의 게시물 1. 주몽이 한나라 현토군의 영향아래 있던 졸본지역에서 고구려를 건국했다는 내용입니다.
<오녀산성 사적진열관의 게시물 2. 고구려는 한나라의 중앙 정권에 예속된 지방 민족 정권이라는 내용입니다>
고구려 건국에 관한 그들의 입장은 분명했습니다. 고구려 건국을 설명한 두개의 안내판은 중국어로 쓰여 있어 자세히 알기는 어려웠으나 어느 정도의 한문 해독이 가능하면 읽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영어와 비교하며 두 개를 종합하여 중요 부분만 대략 해석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기원전 108년 한 무제가 현토군(한사군의 하나) 설치했다. 그 가운데 현토군 아래 고구려현이 설치되었다. 오녀산 주위는 이 고구려현에 속했다. 선진적인 한 문화의 영향을 받아 현지 주민의 생산력이 빠르게 높아졌다. 기원전 37년 부여 왕자 주몽이 졸본지구(지금의 환인)에서 고구려를 세우고 오녀산 위에 성을 쌓고 도읍하였다.
고구려왕은 (중국의) 중앙정권이 하사한 조복(朝服)을 받고, 그 호적을 고구려 현령이 관장하였다. 여기서 고구려 민족 정권과 중앙왕조의 예속관계가 확립되었다.
즉, 고구려는 한나라의 한 지방인 현토군에서 수립된 정권이라는 것과 고구려가 한나라에 속한 지방정권이라는 내용입니다.
사진 촬영 제지로 찍지 못한 또 하나의 게시물에도 고구려가 한나라의 지방정권이라는 사실이 또 한 번 명기되어 있었습니다. 교실 서너개 정도의 진열관에 무려 세 개의 안내판을 입구, 중간, 나오는 곳에 붙여 놓고, 모두 3번씩이나 이런 사실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는 중국인이나 외국인들은 이런 내용을 반복적으로 읽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고구려의 역사가 중국의 역사라는 사실을 머릿속에 넣을 수밖에 없는 교묘한 전시 방법이었습니다. 이런 전시 방법은 나중에 답사한 집안의 박물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즉 사적진열관이나 박물관은 중국 역사 왜곡의 철저한 교육장이 되고 있는 셈입니다.
중국에 가기 전에는 동북공정과 중국의 역사왜곡 사실에 대해 이렇게까지 심각하다는 것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왜곡 정도가 수위를 넘었다는 것을 체감하며, 저를 비롯해 모두들 그 심각성을 절실히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다른 한 쪽에는 환인 주변에 있는 미창구 장군무덤이라고 부르는 무덤 출토 유물 및 무덤의 내부 모형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내부 모형이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에도 하나가 있기는 하지만 드문 편이라 몰래 사진을 찍었습니다.
<속칭 미창구 장군무덤으로 불리는 고구려 무덤의 내부 모형.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에도 무슨 무덤이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이와 같은 고구려 무덤 내부 모형이 있습니다. 아마 사신도가 그려진 강서고분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널길 앞쪽의 작은 방은 흔히 전실 또는 앞방이라고 합니다. 널방에는 두 개의 널받침(관대)이 놓여있는 고구려 돌방무덤(석실분)의 전형적인 내부 모습을 보여줍니다. 앞방은 부장품을 넣어두는 곳으로 생각됩니다. 비스듬하게 세워져 있는 것은 무덤방으로 들어가는 돌 문짝의 하나입니다.>
< 이 무덤은 특이하게도 연꽃 문양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불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디자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서교수의 질문에, 디자인을 전공하는 한 학생은, 하나의 무늬를 반복하여 디자인하는 것은 그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릴 수 있다고 하면서, 이 무덤의 문양 디자인이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다는 평을 하였습니다.
오녀산성 글 목록 http://tadream.tistory.com/5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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