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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답사기 3 : 환인 (오녀산성 사적진열관), 환인~집안 - 백유선" 에서 "환인에서 집안으로"만 가져왔습니다.

고구려답사기 3-3 : 환인에서 집안으로
둘째날(8월 6일) 2 
2005.09.14 13:24:56 백유선 

      고구려답사기 3-1 : 환인 (오녀산성 사적진열관) - 백유선  http://tadream.tistory.com/13734
      고구려답사기 3-2 : 동북공정 - 백유선  http://tadream.tistory.com/13735 
      고구려답사기 3-3 : 환인에서 집안으로 - 백유선  http://tadream.tistory.com/13736 

(전략)

환인에서 집안으로
 
오녀산성 사적진열관을 둘러본 후 다시 집안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약 5시간이 예정된 긴 여정이었습니다. 집안은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이자 400여 년 고구려의 도읍지인 국내성이 있는 곳으로서 중국 내 고구려 유적이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번 고구려 유적 답사에서 가장 기대되고 가슴 설레게 한 답사의 핵심이 되는 곳이었죠.
 
오전에 있었던 오녀산성 등산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운을 빼서인지 곧 잠에 빠져드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의 해외여행이자 첫 중국 여행인데 눈에 보이는 것은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환인에서 집안 가는 길은 왠지 낯설지 않아 보였습니다. 집 모양과 옥수수밭이 많다는 것이 다소 다를 뿐 우리나라의 산하와 그다지 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심양에서 환인을 향해 갈 때는 온통 들판뿐이었지만, 그 길과는 달리 산도 많고 또 점차 압록강, 즉 우리나라와 가까운 곳으로 가는 중이라 그런지 우리나라의 시골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고구려의 옛 땅이 곧 우리나라 땅이었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느낌으로 다가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잠에 취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교수의 차안 강의는 계속되었습니다. 주로 서서 강의를 하는 건강함을 보여주었죠. 가는 곳마다 '이곳은 고구려 산성이 있는 곳이다.', '이곳은 조선족 마을이다' 등 마치 우리나라의 잘 아는 곳을 가는 것처럼 만주의 지리에 훤해 보였습니다. 차안 강의는 역사에 대한 내용보다는 삶의 지혜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이런 내용을 이런 식으로 가르친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만약 내가 마이크를 잡았다면 나는 어떤 식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지 여러 사람들에게 내세울 내용이 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부끄럽게도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노교수의 열정에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내며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가는 길에 관마장 산성을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관마장 산성은 고구려 산성으로서는 드문 차단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꼭 보고 싶었지만, 성의 흔적이 그다지 남아있지 않아서 인지 서교수는 그냥 차량으로 통과하며 보게 했습니다.
 
차단성이란 우리의 문경 새재와 비슷한 형식의 성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즉 문경 새재의 관문, 특히 2관문에서처럼 높은 산사이의 골짜기만을 막아 수도인 국내성으로 가는 길목을 차단하는 성입니다. 즉 여느 고구려 산성과는 달리 산을 빙 둘러 성을 쌓은 것이 아니라 길목만 차단하는 것이죠. 특히 보고 싶었던 이유는 얼마 전 문경 새재로 교직원 연수를 다녀왔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나중에 서교수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관마장 산성은 차단성이면서 길목 세 곳을 모두 막아 그 자체로 산성의 역할을 하는 점이 문경 새재와는 다르다는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차는 우리나라 산맥과 이름이 같은 노령산맥의 굽이굽이 험준한 고개를 넘어 집안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이곳은 터널을 뚫는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고구려 유적의 세계 유산 등재로 많은 관광객이 올 것을 대비하는 것 같았습니다. 산을 넘으면 집안이 멀지 않다고 했습니다.
 
산은 넘어 조금 가자 이번에는 고대 채석장 유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집안의 고구려 고분 등에 사용된 거대한 돌을 채석했던 곳이었습니다. 아직도 차로 20분은 가야 한다는 데 과연 여기서 채석한 돌을 어떻게 운반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서교수의 이야기는 앞쪽 계곡이 얼면 얼음 위로 밀어서 운반했을 것이라고 했지만, 계곡에는 바위가 많아서 과연 그것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고대 채석장 유지.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인 집안의 거대한 고분 등에 사용된 돌을 채석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환인에서부터 심양의 조선족 가이드 대신 새로 안내를 맡은 집안의 조선족 가이드 아가씨와 서교수로부터 집안에 대한 간단한 안내가 있었습니다.
 
집안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하고 있다는 것과 지금은 인구 약 30만 정도의 도시라는 것, 또 세계 문화유산 등재를 전후하여 고구려 유적에 대한 정비가 대폭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처음 알았던 사실은 집안과 환인이 모두 청나라 때에는 봉금 지역으로 정해져 19세기 후반까지는 거의 사람이 살지 않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본래 청나라의 만주족은 백두산을 자기 민족의 성지로 여겨, 백두산 일대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간도 지역에는 사람이 살지 못하게 하는  봉금 지역으로 정했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압록강 맞은편의 집안 및 환인까지도 봉금 지역이었다는 사실은 새로웠습니다.
 
어두워지고 나서야 차는 집안에 다다랐습니다. 어둡지 않았으면 눈에 보였을 고분 사이를 뚫고 집안에서 가장 좋은 호텔이라는 취원빈관에 도착했습니다. 호텔에 짐을 푼 후 저녁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겨우 이틀째지만 오늘 저녁 식사는 한식으로 예정되어 있어서 어떤 음식이 나올지 자못 기대되었거든요.
 
그 동안의 중국 음식도 예상보다 좋아서 전혀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고추장, 김치, 김 등 한국 반찬을 준비해온 사람도 있었지만 음식을 그다지 가리지 않는 저로서는 아직까지는 전혀 음식에 대한 불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한식은 생각보다는 곤란했었습니다. 불고기였는데 소스도 중국 음식은 분명히 아닌데 한식이라고 하기도 곤란한 퓨전 스타일인데다, 숯불 화력 조절이 안 되어 고기를 올리면 바로 타기 시작하는데 먹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맥주 몇 잔을 곁들여 간신히 식사를 마친 후 가까이 있는 압록강을 산책했습니다.
 
압록강 물이 몹시 탁해서 그 이유를 물어보니, 비가 와서 상류의 운봉발전소의 방류로 인해 그렇다고 했습니다. 평상시에는 바닥이 보일 정도라고 합니다. 어두운 밤이라 북한 땅은 보이지 않았지만, 강 건너가 그토록 그리던 곳이지만 갈 수 없는 땅이라는 민족적 비극 앞에서 잠시 착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착잡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호텔로 돌아가지 않고 몇몇 일행과 조선족 가이드와 함께 남아 맥주를 마셨습니다.
 
우리로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북한 땅에 조선족은 통행증만 받으면  쉽게 갈 수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요즈음은 북한이 어려워서 무엇이든 많이 가져다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래서인지 북한에서도 중국에 친척을 둔 신랑감이 인기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똑똑해 보이는 이 가이드 아가씨도 현직 초등학교 교사였습니다. 방학 기간을 이용한 아르바이트 중이었던 거죠. 봉급은 다른 직업에 비하면 중하정도 된다는 이야기, 2학년 담임인 그녀의 주당 시수는 14시간 정도라는 것 등등 중국에서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묻고 들었습니다.
 
삼륜 택시를 타고 호텔로 오는 도중 마사지 업소를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호텔 앞 조선족 삼륜 택시 기사에게 물어보니, 단지 마사지만 하는 건전한 업소라는 것과 불건전한 영업을 하는 장소는 따로 있다는 것, 그리고 건전한 마사지는 우리 돈 1만원이 채 안되며, 불건전한 것은 3만원 정도 한다는 것 등등의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건전한 마사지를 권하는 기사의 권유에, 마지막까지 호텔에 들어가는 것을 아쉬워하며 대화를 나누던 일행 중 한 명은 마사지가 피로 회복에 좋다며 한번 받아보고 싶어 하는 눈치였습니다. 하지만 본래 마사지와는 거리가 먼 저의 거부 때문에 혼자는 어렵겠다며 포기를 하더군요. 여행 중의 다양한 경험은 삶의 밑거름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는 있지만, 마사지는 취향이 아닌지라 그의 동참 권유를 뿌리칠 수 있었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 국내성을 한 바퀴 돌아보자는 약속을 하고 날씨가 좋기를 기원하며, 중국에서의 두 번째 밤을 보냈습니다.
 

<집안의 취원빈관.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집안에서는 좋은 호텔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침구가 다소 눅눅한 점이 아쉬웠습니다. 다음날 아침 국내성을 돌면서 압록강과 통구하 두 강에 드리운 안개를 보면서 그 이유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두 강으로 둘러싸인 집안은 대체로 습도가 높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집안 거리의 가로등. 환인 시내에서도 보았던 가로등입니다. 모두 고구려 유적의 세계 문화유산 등재 후 설치한 것이라고 합니다.>
 

<압록강에서 가까운 김영 불고기집. 한식이라고는 하지만 허름해 보이는 음식점인데다 가장 맛이 없는 식사 중의 하나로 기억되는 곳입니다. 간판을 보니 그래도 분점까지 있는 식당이었습니다.>
 

<압록강 가에서 일행과 함께 맥주 몇 잔을 마신 후. 좌로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은 시청 청계천 복원 담당관, 서울시 강서(?)수도사업소장 부부, 월간중앙 기자, 필자, 여행사 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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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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