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구려답사기 9 : 심양 1 (백암성,심양고궁) - 백유선" 중 백암성 만 가져왔습니다.
고구려답사기 9 : 심양 1 (백암성)
여섯째날(8월 10일) : 심양 1
2005.09.14 14:58:09 백유선
백암성
13시간에 걸친 긴 기차 여행이었지만, 마치 호텔에서 지낸 듯 지루함이나 피곤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상쾌한 기분으로 심양 북역을 걸어 나왔습니다. 처음 심양에서부터 환인까지 우리를 안내했던 가이드 김혜연씨가 반가운 얼굴로 다시 맞아주었습니다. 곧바로 식당으로 이동하여 아침 식사를 하고 심양을 구경할 틈도 없이 다음 일정에 들어갔습니다.
쉴 틈 없이 꽉 짜인 일정에 모두들 잘 견뎌 주었지만 드디어 탈이 난 어린이가 있었습니다. 사실 어린이가 견디기에는 다소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즐겁게 다니고 있는 다른 아이들이 참 대견스러웠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창덕궁에서도 그렇고 종묘에서도 그렇고 겨우 한두 시간을 못 견뎌 지루해 하는 모습을 보아 왔거든요. 결국 탈이 난 아이 때문에 부모도 함께 하루 일정을 포기하고 미리 호텔로 가서 쉬어야 했습니다. 미안해 할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어린이의 부모는 일정을 같이하지 못하게 된 것을 몹시 미안해했습니다.
다음 날이면 서울로 향해야 했기 때문에 사실상 마지막 답사가 될 오늘 일정으로는, 백암성과 심양고궁이 잡혀 있었고, 저녁에는 북한 식당에서의 식사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먼저 백암성으로 향했습니다. 백암성은 심양에서 약 1시간 30분 정도의 거리라고 했습니다. 연주성산성이라고도 불리는 이 산성은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1999년 '청소년을 위한 한국사'를 준비하면서 고구려 산성 사진이 필요했었습니다. 책 속의 쉬어가기 부분에 고구려 산성에 대한 내용이 있었거든요. 저작권 문제로 아무 사진이나 함부로 실을 수 없었기 때문에, 어렵게 저작권자를 수소문해서 구한 사진이 백암성이었습니다. 그때 사진에서 본 백암성은 보존 상태가 썩 좋아 보였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한번 가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만 했었지요.
그런데 그 백암성을 향하고 있으니 설렐 수밖에요. 심양에서 출발한 후 드넓은 벌판만 보았을 뿐 산이라고는 볼 수가 없었는데, 백암성 근처에 이르니 겨우 산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백암성이 바라다 보이는 입구에는 조그만 마을이 있었습니다. 마을을 지나면서 살펴보니 주변에는 성벽에서 나온 돌들이 많았습니다. 부서진 성벽에서 돌을 가져다 담도 쌓고 집도 짓고 여러 용도로 사용하는 듯 보였습니다.
산으로 들어서니 그곳에 '연주성산성'이라 쓰인 표지석이 눈에 띄었습니다. 고구려 당시의 본래 이름은 백암성이었지만 지금의 이름은 연주성산성이었던 거죠. '아차' 했습니다. '청소년을 위한 한국사'에는 '연주성산성'이라 하지 않고 '연주성'이라고 했거든요. 한 번도 와보지 못한 곳이어서 들은 대로 쓰다 보니 생긴 잘못이었습니다. 다음 쇄에서는 꼭 수정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벌써 5년이 지났으니 여러 부분 개정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오류조차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스스로 부끄러워졌습니다. 오래 전에 예고된 2권도 게으름 때문에 진행이 계속 중단되고 있어서 새로이 각오를 다져보았습니다.
백암성은 위쪽의 개모성과 요동성, 그리고 아래쪽에 있는 안시성과 함께 중국의 침략을 막는 고구려 서쪽의 중요한 거점 산성중의 하나였습니다.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지만, 당나라와 고구려의 전쟁을 언급하는 좀 더 자세한 역사책이나 지도에는 대체로 등장하는 산성입니다. 6세기 중엽에는 이곳에서 돌궐의 침략을 물리친 적이 있는 요동의 중요 방어성이었습니다.
당나라가 쳐들어왔을 때에는, 요동성이 함락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을 지키던 성주가 그냥 항복해 버려 제 구실을 하지 못한 부끄러운 기록도 가지고 있는 곳이죠. 하지만 아래쪽 안시성에서 잘 버텨 줌으로서 고구려가 당태종의 침략을 물리칠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은 교과서에 실려 있습니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폭염 속에서 서길수 교수의 고구려 축성법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둘레가 약 2.5km 정도 된다는 산성을 따라가면서 고구려의 흔적을 찾기 위해 애썼습니다. 남쪽으로는 요하의 지류인 태자하가 감싸 흐르고 있어서 누가 보아도 중요한 요충지임에는 틀림이 없었습니다. 고구려의 기상을 져버리고 당에 항복해 버린 성주가 괜히 미워지더군요. 어린이처럼 생각해 보았습니다.
백암성은 앞서 오녀산성이나 환도산성에서 살펴 본 고구려 축성법의 특징을 모두 잘 보여주고 있는 산성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곳에는 다른 성에서는 보기 힘든 몇 가지의 특징적인 모습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성벽과 몇m의 간격을 두고 성벽을 따라 작은 담 모양의 성을 쌓은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었습니다. 즉 성벽 앞쪽에 또 다른 방어시설을 만들어 둔 거죠. 평지성의 경우에는 흔히 성벽 앞으로 물이 흐르는 해자를 파서 방어에 이용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목책을 세우기도 하고요. 몽촌토성에도 해자와 목책이 있습니다. 이는 성 앞의 1차적인 방어벽의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산성은 해자를 팔 수도 없고, 또 비탈이기 때문에 그런 시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또 하나의 방어 시설이 있는 셈입니다. 서길수 교수는 이런 시설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기 때문에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또 하나는, 성벽 안쪽에도 치성과 같은 시설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본래 치성은 성벽에 오르려는 적을 공격하기 위한 시설이므로 당연히 성벽 바깥쪽에 만듭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안쪽에도 치성과 같은 시설이 있다는 것이 다른 성에서는 볼 수 없는 또 하나의 특징이라고 했습니다. 서교수에 의하면 성을 받쳐주는 시설이기도 하고, 또 전투 시에 아군이 성벽 위로 오르기 쉽게 하기 위한 시설이 아닌가 하고 추측했습니다.
백암성의 가장 높은 곳에는 장대가 잘 남아 있었습니다. 사방으로 주위가 한 눈에 내려다 보여서 지휘하기에는 좋은 곳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장대 주위에 성안의 성이라고 할 수 있는 작은 내성이 쌓여 있는데, 아성(牙城)이라고도 한다고 했습니다. 처음 보는 시설이어서 이 역시 백암성의 특징으로 생각되었습니다. 흔히 '아성이 무너졌다'는 말은 단단한 성안의 성을 뜻하는 이런 시설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장대를 지나 남쪽으로는 태자하 강가에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자연성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내려다보이는 이곳의 경치는 꽤 아름다웠습니다. 성을 한 바퀴 돌고 내려와 동네 입구에서 만난 '아이스케이크'장사는 우리 일행 덕분에 횡재를 한 듯 연신 싱글벙글하였습니다. 한꺼번에 두 개나 먹는 사람도 많았거든요. 자전거에 통을 싣고 장사하는 모습이 어린 시절에 보았던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백암성을 마지막으로 고구려 유적 답사를 마쳤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지 이곳을 보고 나니 당태종의 군대를 물리친 안시성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부질없는 생각이었을 뿐입니다. 언젠가는 또 올 기회가 있겠죠.
<연주성산성 표지석. 백암성은 지금은 연주성산성이라고 합니다. 요동의 요충지에 위치한 이 산성은 6세기 중엽 돌궐의 침략을 물리친 적이 있으나, 7세기 당의 침략 때에는 위쪽 요동성이 함락되자 성주가 항복해 버린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구려 산성중에서 비교적 잘 남아있는 성입니다.>
<산성에 오르는 길에 목동이 양떼를 몰고 가는 평화로운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뒤쪽 넓은 경작지는 모두 옥수수밭입니다.>
<백암성 성벽입니다. 바깥쪽(왼쪽)에 치성이 잘 남아 있습니다. 안쪽(오른쪽)에도 치성과 같은 시설이 보이는데 다른 성에서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서교수는 성벽이 무너지는 것을 막고, 전투 시에는 병사들이 오르내리기 위해 만든 시설로 추정했습니다.>
<서길수 교수가 고구려의 축성법인 겉쌓기와 속쌓기, 그리고 겉쌓기 한 돌은 옥수수 알갱이와 비슷한 모양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 고구려 축성법의 또 다른 특징 중의 하나는 바닥으로부터 일정 높이까지는 들여쌓기를 하여 성벽의 안전성을 높였다는 것입니다. 장군총에서도 들여쌓기 한 것을 볼 수 있었죠?>
<치성의 보수 흔적입니다. 서교수는 고구려성은 석회와 같은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는 고구려와 발해 멸망 후 이곳을 차지한 거란이나 여진이 보수한 흔적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백암성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 중에 하나는 성 밖에 약간의 간격을 두고 조그만 담 모양의 성을 쌓은 것이라 했습니다. 해자처럼 이중의 방어벽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오른쪽 아래로 약간의 흔적이 보입니다.>
<백암성 성벽의 모습. 뛰어난 축성법으로 인해 1500여 년 세월을 잘 버티고 있습니다. 바깥쪽으로 치성이 잘 드러나 보입니다.>
<성 밖에 채석장이 있어서 폭발 소리가 자주 들렸습니다. 성의 보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백암성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장대입니다.>
<장대 주위에는 작은 내성 즉, 아성이 있었습니다. 이런 작은 내성은 다른 곳에서는 거의 보기 힘든 것입니다.>
<남쪽은 깎아지른 절벽이 성벽을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절벽이 마치 성벽처럼 보이네요.>
<마지막으로 기념사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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