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70615.22015200805
이영식교수의 이야기 가야사 여행 <21> 대성동고분군-상
전세금 털어 발굴 나섰던 한 고고학자 열정의 산물
국제신문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2007-06-14 20:10:47/ 본지 15면
김해 대성동고분군 정비 전
왕가(王家)의 언덕
여러분과 함께 지난 3주에 걸쳐 여행해 보았던 김해시 주촌면의 양동고분군에서 전기 가야사회의 천군(天君)과 같은 종교적 지도자의 성격을 읽을 수 있었다면, 가락국왕으로서 정치적 군장(君長)의 면모를 보다 선명하게 보여주는 곳이 대성동고분군일 겁니다. 김해 시내 한 복판에 자리해, 봉황대에서 옛 공설운동장(수릉원) 터를 지나, 구지봉 쪽으로 오르락내리락 했던 낮은 언덕에 형성되어 있는 고분군입니다. 지금은'가야의 거리'로 정비되어 대성동고분박물관 바로 앞의 언덕만을 대성동고분군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남동쪽의 수릉원이나 동북 구지봉 쪽의 구지로 일대에서 확인되고 있는 고분들 역시 대성동고분군에 포함되어야 할 겁니다. 대성동고분군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면, 동쪽으로 분산, 서쪽으로 경운산, 남동쪽으로 임호산 등이 보이지만, 이러한 곳에서 가야의 고분은 물론 가락국 왕릉급의 고분이 발견된 적은 없습니다. 원래 어느 시대, 어느 집단이나 무덤 쓰는 자리는 정해져 있었던 것이고, 600여년의 가락국 왕실도 오로지 이 언덕만을 택해 무덤을 썼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락국 역대의 왕릉이 자리한 대성동고분군은 '왕가의 언덕'이라 불릴 만 합니다.
전경과 정비를 끝낸 오늘 모습.
의지(意志)의 발굴조사
대성동고분군은 1990년 6월부터 2001년 9월까지 경성대박물관이 실시했던 5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만, 그 시작은 한 고고학자의 강한 신념과 의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지금은 자리를 옮겨 부산대에서 고고학을 강의하고 있는 신경철 교수가 바로 그 사람 입니다. 일찍이 중요한 유적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엄청난 발굴조사의 경비를 조달할 수가 없었습니다. 토지의 형질변경을 위한 긴급조사라면 공사 주체가 경비를 대기도 하겠지만, 학술만을 위한 기획 발굴을 지원할 기관이나 단체는 좀처럼 찾기 어려웠습니다. 대성동고분군 발굴조사 이후에 본격화 되었던 김해시의 가야사 복원과 가야문화정비사업도 아직은 계획조차 세워지지 못했던 때로, 불확실한 일에 예산을 편성할 수도 없었던 모양입니다. 이에 신 교수는 자신의 전세금을 털어 넣어 발굴하기로 하고, 김해시에 조건을 걸었습니다. 중요한 유물과 유적이 확인되면 사후에라도 김해시가 발굴 경비를 대는 조건이었답니다. 결과적으로 가야사와 고대한일관계사를 새롭게 밝힐 중요한 사실들이 꼬리를 물고 발견되었고, 다행히도 신 교수는 전세금을 날리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북경원인(北京猿人)의 연구로 유명한 형질인류학자 와이덴라이히(Weidenreich)가 "어디를 파면 좋을까는 예상되어 있다. 삽과 곡괭이 그리고 참가자들도 준비되었다. 현재 모자라는 것은 자금뿐이다"라고 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획기적인 대성동고분군의 발굴을 둘러싸고 만들어졌던 영남고고학계의 전설일 수도 있지만, 언젠가 직접 신 교수께 물었을 때 심하게 부인하지도 않았으니, 그만치 어려웠던 초기 발굴조사의 환경을 짐작하는 데는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어렵사리 얻어진 대성동고분군의 발굴 정보는 우리에게 새롭고 중요한 가야사 복원의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애기 구지봉
김해 사람들은 대성동고분군이 자리한 언덕을 '애꾸지'라고도 부르는데, '애꾸지'는 '애기 구지봉'의 뜻이라고 합니다. 고분군의 북쪽으로 얼마 되지 않은 곳에 구지봉이 보이고, 그 앞 쪽으로는 가야사 전문의 국립김해박물관이 보입니다. 수로왕이 등장하고 가락국 건국신화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 구지봉이라면, 가락국 왕실의 후손들이 대대로 묻혔던 언덕을 '애기 구지봉'이라 부르고 있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땅 이름이 전하고 있는 지역적 전승의 역사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교수·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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