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70720.22015202624

이영식교수의 이야기 가야사 여행 <25> 부산은 가야인가, 신라인가-상
4~5세기 부산은 양국 사이서 정치적 변화
국제신문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2007-07-19 20:27:39/ 본지 15면

1969년 복천동 1호분 발굴 전경.

금동관(金銅冠)이 나왔다

1969년 9월 부산시 동래구청 뒤의 야산에서 고분 하나가 발굴되었습니다. 나중에 복천동1호분으로 명명되는 이 고분에서는 금동관이 출토되었습니다. 경주 이외에서는 처음 출토되었던 것으로 전국적인 관심사가 되었고, 약 1,500년 전의 고대의 부산에도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가진 왕자(王者)가 존재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가야의 옛 도읍인 김해와 가깝기도 하고, 그때까지만 해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가야의 유물도 출토되어, 가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지요. 그러나 금동관 자체는 출(出)자 모양을 한 신라 계통의 물건이었습니다. 같은 고분에서 가야계와 신라계의 유물이 함께 나옴에 따라 과연 고대의 부산은 가야였던가 아니면 신라였던가 하는 논의가 생겨나게 되었던 겁니다.

동래 복천동고분군

이후 복천동고분군은 1995년까지 120여 기의 고분이 발굴 조사되었고, 대개 4~5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1996년 10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유적이 발견되었던 현장에 출토유물과 조사내용을 정리 전시하는 복천박물관이 세워졌습니다. 박물관 본관 외에도 발굴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 놓은 야외 노출전시관도 있고, 고분이 있었던 자리는 낮은 회양목을 선으로 둘러 심어 목곽(木槨)이나 석곽(石槨)의 위치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고대 부산 사람들의 삶과 죽음의 역사를 생생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박물관이 개관되었던 겁니다.

그런데 복천동고분군은 가야와 신라의 문화적 색채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앞 시기에 만들어진 고분들에서는 가야 계통의 유물이 출토되지만, 뒷 시기에 만들어진 고분들에서는 신라 계통의 유물이 출토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복천동을 중심으로 한 고대 부산의 정치적 향방이 4~5세기를 사이에 두고 커다란 변화를 겪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산의 고대를 가야사로 볼 것인가, 아니면 신라사로 보아야 하는가' 또는 '가야였던 고대의 부산지역이 언제부터 어떻게 신라의 세력권으로 편입되었던가'를 둘러싼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언젠가 선거에서의 유행어를 빌린다면 '부산과 경주 또는 TK와 PK가 언제까지 남이었고, 언제부터 남이 아니었던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동래는 이미 신라다

신라는 532년에 김해의 가락국을 병합하고, 562년에 고령의 대가야를 마지막으로 가야의 여러 나라를 통합하였으며, 660년과 668년에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켜 '통일'을 완수하였습니다. 685년에 신문왕은 대동강 이남의 한반도를 주·군·현(州·郡·縣)으로 나누어, 중앙의 경주에 대한 지방으로 편성하는데, 이때 부산지역은 양주(良州, 양산)에 속하는 하나의 군(郡)으로 편입되었고, 757년부터 경덕왕은 동래군(東萊郡)으로 부르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부산지역이 동래로 불리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신라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삼국지'에서 '변한=가야 12국'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는 독로국(瀆盧國)을 독로와 동래가 음이 서로 비슷하다는 것을 근거로 부산의 지역에 있었던 가야의 나라로 생각하였습니다만, 가야시대에 동래라는 지명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근래에는 독로가 왜(倭)와 바다로 접해 있다는 기술과 거제도의 옛 이름 두루(기)와 통하는 것을 근거로, 거제도로 생각하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라 이전의 동래에 가야의 나라가 있었음은 분명합니다만, 과연 어떤 나라가 있었을까요? '삼국사기'에 의하면 동래군은 본래 거칠산군(居柒山郡)이었다고 합니다. 거칠(居柒)은 후에 거칠 황(荒)으로, 산(山)에는 고개 령(嶺)이 겹쳐 쓰여 지금의 황(령)산(荒(嶺)山)이 되었습니다. 황령산 앞쪽으로 서면에서 동래에 이르는 지역에 있었던 가야의 나라가 거칠산국이었고, 동래 복천동고분군의 이른 시기의 가야계 유물들은 그 흔적들이었던 겁니다.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교수·박물관장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