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chungjutour.co.kr/remains/jangmisansung.html
이로부터 보련이가 성을 쌓던 산을 보련산, 장미가 성을 쌓던 산을 장미산이라고 하고 그 성을 각기 보련산성, 장미산성이라고 부르며 지금까지 남아있다
장미와 보련의 성쌓기 내기 전설
삼국시대에 노은면 "가마골"마을 부근에 장미라는 남동생과 보련이라는 누이가 있었는데 명산의 정기를 타고 나서인지 두 남매는 태어날 때부터 장수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관례에 따르면 한 집안에서 장수가 둘이 출생하게 되면 그 중 하나는 희생을 당해야한다는 숙명을 띄고 있었다한다. 따라서 이 두 남매도 비운을 안고 있음을 자인하고 있기 때문에 성장하면서부터 운명을 정하는 방법을 상론하게 되었던 것이며 그 방법으로 성쌓기 내기를 하게 되었다.
즉 같은 분량의 다음어진 돌을 가지고 규정된 규모의 성을 쌓는 것인데 물론 생사의 결판이기도 한 것이다.
장미산성에서 바라 본 남한강 일대아무리 남매라 하더라도 생명에 대한 애착도 애착이려니와 장수라는 명예가 있기 때문에 심각했다. 뿐만 아니라 같은 혈육이라는 데서 그 어머니의 심정 또한 메어지는 듯 하였다.
보련은 노은에서 장미는 가금에서 드디어 운명의 싸움은 시작되었다.
그 어머니는 두 남매보다도 더욱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속도가 아무래도 장미보다는 보련이가 더 능숙함을 판단한 것이다. 어머니의 심정은 그래도 아들 쪽이 컸던 모양이다. 장미의 속도가 미급함을 본 어머니는 생각 다 못해 떡을 해가지고 보련에게로 갔다. 너무 빠르니 이 떡이나 먹고 쌓으라며 떡을 펴놓았다.
보련이가 한창 배도 고프고 피로하기도 해서 한 그릇을 맛있게 먹고 또 다시 시작을 해서 마지막 돌 한 개를 가지고 올라가는 도중 장미쪽에서 축성이 끝났다고 북소리와 함께 기치가 올랐다.
보련은 주저앉고 말았다. 그제서야 어머니가 아들을 살리기 위한 시책인줄 알았지만 모든 것을 운명으로 돌리고 그 길로 노은 땅을 벗어나 어디론지 떠나갔는데 다음날 저녁에 보련의 본집을 향하여 큰 별이 하나 떨어졌다고 한다.
이로부터 보련이가 성을 쌓던 산을 보련산, 장미가 성을 쌓던 산을 장미산이라고 하고 그 성을 각기 보련산성, 장미산성이라고 부르며 지금까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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