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35565
흑산도에선 상하이에서 우는 닭소리가 들린다?
[고래의 섬, 흑산도①] 고대 국제해양플랫폼, 흑산도
17.06.20 15:27 l 최종 업데이트 18.01.03 10:25 l 이주빈(clubnip)
사람들은 '고래'하면 동해나 울산, 장생포만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홍어로 유명한 전남 신안군 흑산도에 '고래공원'이 있습니다. 흑산도와 고래는 어떤 특별한 인연이 있을까요? 왜 흑산도에 고래공원이 생긴 것일까요? 대체 흑산도에선 고래와 관련한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이 연재는 흑산도와 고래의 연관성을 좇는 '해양문화 탐사기'입니다. - 기자 말
▲ 해무에 안긴 흑산도 예리항 전경. 철마제를 지냈던 상라산 전망대에서 찍은 모습이다. ⓒ 이주빈
목포항을 출발한 여객선이 도초도와 비금도를 벗어나자 선장의 안내방송이 흘렀다. 반복되는 일상인 듯 선장의 목소리에선 다소 지루함이 느껴졌다.
"지금부터는 서해남부 먼바다입니다. 파고(波高)가 2미터 이상으로 높게 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행객 여러분께서는 지정된 자리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잠시 후, 선장의 말처럼 파도는 쾌속여객선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파도에 부딪힌 여객선은 하늘 높이 솟았다가 바다 속으로 곤두박질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날개 꺾인 새처럼 평형을 상실한 채 좌우로 끝없이 요동쳤다.
상하좌우로 어그러진 불규칙한 신호가 몸을 어지럽혔다. 멀미 기운이 돌았다. 균형을 잡으려 수평선과 시선을 맞추려 해 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불일치, 여객선은 수평선과 계속 어긋나며 빠르게 스쳤다. 그렇게 어긋나 버린 빠른 스침은, 먼바다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육지로부터 도망가는 것 같은 불쾌한 느낌을 주었다. 운명처럼 섬에서 태어나 늘 먼바다를 넘나들고 살지만, 이렇듯 먼바다로 들어가는 길은 언제나 고통스런 의례다.
'먼바다'는 육지 사람들에겐 생소한 단어다. 한반도 해안선을 기준으로 20km 이내에 있는 동해와 40km 이내에 있는 서해·남해를 근해(近海) 즉 '가까운 바다'라고 부른다. '먼바다'는 가까운 바다 너머에 있는 바다로, 한반도 육지로부터 동해는 20km 밖에, 서해·남해는 40km 밖에 있다.
바다 너머 바다인 먼바다를 건너 찾아가는 곳은 흑산도. 목포에서 약 92.7km(50해리)나 떨어진 서남해 외딴 섬이다. 지금은 '산과 바다가 푸르다 못해 검다'해서 '흑산(黑山)'이라 하지만 한 때 흑산은 '월산(越山)'으로 불렸다.
대개의 경우 지명은 닮은 형상을 빗대 짓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흔히들 하는 것처럼 달 월(月)자를 써 '월산(月山)'인가 했더니 넘을 월(越)자를 써 '월산(越山)'이란다. 산 너머 바다라는 말인가, 바다 너머 산이라는 말인가. 이토록 지독하게 섬의 정체성과 일치하는 섬 이름이 또 있을까.
섬은 바다라는 자궁 안을 떠도는 별이다. 늘 그 어떤 '너머'를 꿈꾸지만 늘 그 안에 갇혀 사는 아련한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다. 그래서 섬은 본능적으로 표류를 획책한다. 수평선 너머 어딘가를 하염없이 동경하는 월경(越境)의 슬픈 물매, 그것이 바로 섬이다.
▲ 구비구비 휘어진 일주도로가 지금은 흑산도 명물거리가 되었지만 저 도로 아래 동네 읍동은 중국 사신 등이 묵어가던 관사가 있었던 국제 포구였다. ⓒ 이주빈
섬이 이도저도 다른 것들이 쉽게 만나 어울릴 수 있는 플랫폼 구실을 하는 까닭도 섬의 이 슬픈 본성 때문이다. 다른 섬과 마찬가지로 흑산도도 예나 지금이나 플랫폼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고대 해양항로에서 흑산도는 일본과 한반도 그리고 중국을 잇는 매우 중요한 '국제 해양플랫폼'이었다.
동북아시아 해양플랫폼으로서 흑산도가 제 이름을 달고 구체적으로 언급된 첫 문서는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다. 이 책은 일본 천태종 3대 좌주(座主) 가운데 한 명인 엔닌(圓仁) 스님이 847년에 쓴 것이다. 장보고 선단의 도움을 받아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던 그에게 흑산도는 특별한 중간기항지였다.
"흑산도는 백제 삼왕자(세 번째 왕자)가 도망해서 피난한 곳이라 한다. 그곳엔 수백 호가 살고 있다고 한다."
18세기 중반에 씌여진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도 국제 해양플랫폼으로서 흑산도의 위치가 언급돼 있다. 이중환은 흑산도-홍도-가거도를 거쳐 중국 닝보(寧波)까지 바람을 잘 만나면 사흘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썼다.
"신라에서 당나라로 조공 갈 때 모두 이 고을(나주) 바닷가에서 배로 떠났다. 바닷길로 하루 가면 흑산도에 이르고, 흑산도에서 또 하루 가면 홍의도(홍도)에 이른다. 다시 하루를 더 가면 가거도에 이르며, 북동풍을 만나 3일을 가면 태주 영파부 정해현에 도착하게 되는데, 실제로 순풍을 만나기만 하면 하루만에도 도착할 수도 있다."
- 이중환 <택리지> '전라도 나주조(羅州條)' 중에서
흑산도와 홍도, 가거도 등 흑산군도(黑山群島)에 속하는 섬들엔 유독 중국과 연관된 전설들이 많다. 전설의 태반은 상하이에서 우는 닭소리가 들린다는 거다. 순풍을 타면 하루거리라는 중국 닝보 인근이 상하이. 흑산도 사람들에게 중국은, 닭 우는 소리 들리는 옆 동네였을 뿐이다.
▲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흑산도, 홍도, 가거도를 거쳐 사흘이면 중국 상하이 인근 닝보에 도착한다고 기록했다. 지도를 보면 순풍과 해류를 타면 흑산군도 중 하나인 가거도에서 닝보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임을 절로 알 수 있다. ⓒ 구글 지도 갈무리
12세기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남긴 기록은 매우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그는 남방항로를 통해 고려 개경을 방문하면서 흑산도 이야기를 썼다.
"흑산은 처음 바라보면 극히 높고 험준하다. 가까이 다가서면 첩첩이 쌓인 산세를 볼 수 있다. 앞의 한 작은 봉우리는 가운데가 동굴같이 비어 있고 양쪽 사이가 만입(灣入)했는데, 배를 감출 정도이다. 옛날에는 바닷길에서 이곳은 사신의 배가 묵었던 곳이어서, 관사가 아직 남아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기서 더 이상 정박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주민들이 사는 마을이 있다. 고려에서 큰 죄인이지만 죽음을 면한 자들이 대부분은 이곳으로 유배되어 온다. 중국 사신의 배가 이르렀을 때 밤이 되면 산 정상에서 봉화를 밝히고 여러 산들이 차례로 서로 호응하여서 왕성(王城 , 개경)에까지 가는데, 그 일이 이 산에서부터 시작된다. 신시(오후 5시)가 다되어 배가 이곳을 지나갔다."
- 서긍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중 '제35권 해도(海道) 2, 흑산(黑山)' 중에서
서긍의 기술을 통해 우리는 흑산도와 관련한 몇 가지 역사적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우선 당시 흑산도는 사신의 배가 묵을 정도로 고대 한·중 뱃길의 중요한 경유지였으며, 사신들이 묵을 수 있는 관사까지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사신들의 행차는 당시 통신체계인 봉화를 통해 개경까지 곧바로 보고되었다는 것도 파악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당시 흑산도는 고려의 죄인 중에서도 죽음을 면한 중죄인들이 귀양을 오는 유배지였음을 알 수 있다.
서긍의 기술은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이 1999년 실시한 발굴 조사를 통해 사실로 확인되었다. 연구진은 흑산도 읍동 일명 '해내지골' 일대에서 관사지로 추정되는 곳을 발견했다. 그리고 '무심사선원'이라는 절터를 찾아냈다. 또한 해발 226미터 상라산 정상에서 제사터와 봉수터로 추정되는 곳을 확인하였고, 그 일대에서 철제마 등 제사 관련 유물도 발굴했다.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은 지난 1999년 흑산도 읍동 일대에서 사신이 묵어가던 관사지 터와 무심사 선원 터 등을 확인하였다. 무심사선원 터엔 석등과 석탑 등이 남아있다. ⓒ 이주빈
철마(鐵馬)는 이승에 사는 사람들의 소원과 기도를 하늘로 실어 나르는 역할을 한다. 고대 한·중·일 교역항로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했던 흑산도. 그때 흑산도 사람들은 철마에 어떤 기도를 실어 하늘로 보냈을까. 전설만큼이나 서러웠을 기도는 철마를 타고 파도처럼 아스라이 사라졌을 테다.
섬 하나 보이지 않던 먼바다를 한 시간 동안이나 출렁이며 건너던 여객선이 흑산도에 도착했다. 언제나처럼 가수 이미자가 부르는 <흑산도 아가씨>가 여객선터미널 스피커를 타고 푸르다 못해 검은 흑산바다로 흩어졌다. 흥이 더해진 여행객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이사이로 깊은 바다처럼 표정이 없는 얼굴을 한 흑산도 주민들이 여객선 플랫폼을 빠져나갔다. 훅 '짠내'가 밀려왔다.
▲ 먼바다를 건너온 쾌속여객선이 흑산도 예리항에서 고단한 몸을 쉬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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