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71207.22017201633

이영식교수의 이야기 가야사 여행 <44> 비사벌의 가야-상
창녕지석묘 이례적으로 높은 언덕 정상에 위치, 보는이 압도
채석지 꽤 멀어 많은 노동력 동원 권력 존재 증거
국제신문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2007-12-06 20:17:24/ 본지 17면

경남 창녕군 장마면에 있는 '창녕지석묘'.

창녕으로 가십시다

지난주까지 합천 다라국(多羅國) 왕릉의 옥전고분군을 답사하면서, 출토 유물에서 보이는 창녕지역의 영향에 대해 여러 번 말씀드렸지요. 합천과 창녕은 낙동강의 서와 동으로 나뉘고 있지만, 아주 가까이 인접해 있는 이웃사촌입니다.

옥전고분군 아래를 흐르는 황강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가면, 구슬고개 부근에서 낙동강과 만나게 되는데, 이곳이 적포나루입니다. 다라국의 경계를 이루는 땅이름이 옥전(玉田)의 '구슬밭'과 통하는 '구슬고개'라는 점도 흥미롭지만, 좁은 지역에 상적포, 중적포, 하적포로 나뉜 3개의 지명이 남을 정도로 번성했던 낙동강 물길의 요처였습니다. 낙동강을 거슬러 오른 팔만대장경이 이곳을 지나고, 다시 황강을 거슬러 해인사에 안식처를 얻었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적포에서 24번 국도를 타고 낙동강을 따라 남으로 내려오면, 강을 가로지르는 적포교를 만나게 되고, 여기서 강을 건너면 창녕이 됩니다. 많은 아름다운 길이 있겠지만, 이 길 왼쪽 아래로 펼쳐지는 낙동강의 파란 곡선과 군데군데의 황금빛 모래밭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빛뜰 장마면의 고인돌

적포교에서 낙동강을 건너 구불구불한 유어면의 산길을 넘으면 비사벌(比斯伐)의 창녕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들러야 할 곳이 있습니다. 유어면 남쪽의 장마면 유리 산 9번지 장마초등학교 뒷산에 있는 '창녕지석묘'란 이름의 고인돌입니다. 창녕에 고인돌이 이것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가장 먼저 알려지기도 했고, 입지나 규모 등에서 창녕을 대표할만한 고인돌이기 때문에 부쳐진 이름이었습니다.

고인돌의 대부분은 김해의 왕릉공원이나 구지봉과 같이 평지나 얕은 구릉에 자리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고인돌은 높은 언덕의 정상에 세워져 있습니다. 몇 개의 받침돌 위에 옆으로 긴 사각형의 거대한 뚜껑돌을 얹은 바둑판 모양의 고인돌입니다. 규모가 큰데다 높은 정상에 있어 언덕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이들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고인돌이 청동기시대 지도자의 무덤임은 잘 알려져진 사실입니다. 이렇게 거대한 돌을 채석하고 운반해 여기까지 올리는 데 동원되었던 노동력이 만만치 않았을 겁니다. 사방을 둘러 보아도 이런 바위가 채석될만한 산지는 모두 5㎞ 이상은 떨어져 있습니다. 많은 노동력의 동원이 가능한 권력이 존재했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직 국가나 왕권의 단계도 아니고, 가야국이 형성된 단계도 아닙니다.

우리가 가야사 여행을 시작하면서 김해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가야국(가락국) 수로왕의 등장을 기다렸던 아홉 촌장사회(九干社會)의 무덤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창녕지역에서도 고인돌의 청동기문화 위에 철기문화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가야국이 탄생했던 것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전하는 비지국(比只國), 비사벌국(比斯伐國), 비화가야(非火伽耶) 등이 그 이름들입니다.

비사벌은 빛이 좋은 들

가야 이전의 창녕사회를 보여주는 이 고인돌은 모조품으로 창녕박물관에서도 볼 수 있지만, 창녕 가야국의 이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발품을 팔아 이 고인돌의 언덕에 오를 필요가 있습니다. 더구나 5월쯤의 따스한 날이라면 더욱 제격일 겁니다. 여기에 서면 사방 360도를 돌아도 아름다운 빛이 퍼지는 평평한 뜰만 보입니다. 동그랗게 펼쳐진 분지의 중심에 장마면의 고인돌이 서 있는 셈입니다. 동네 분들이 화 내실지도 모르겠지만, 매일 비만 올 것 같은(?) 장마면이고 장마초등학교입니다만, 여기에서 사방으로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빛뜰은 창녕 가야국의 이름을 연상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기록이 전하는 비지, 비사벌, 비화는 모두 다 빛 또는 빛뜰과 통하는 말입니다. 비지=빚, 비사벌=빗벌, 비화(火)=빗불로, 서로 다른 말 같지만, 모두 빛뜰 창녕의 가야국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비화가야 보다는 비사벌국이 가야시대에 불렸던 나라 이름에 가까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인제대 인문사회대학 학장·역사고고학과 교수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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