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yimworld.com/html/class/ancienthistory/baekje.htm
* "백제의 성립과 발전 - 노중국" 중 "
2.백제사의 여러 쟁점 - 5)지방통치제도의 발전"를 가져왔습니다.

백제 지방통치제도의 발전

          1. 백제사에 대한 이해  http://tadream.tistory.com/14408
          2. 백제사의 여러 쟁점

              1) 건국시기와 건국세력의 문제  http://tadream.tistory.com/14359
              2) 한성시기의 도성 문제  http://tadream.tistory.com/14360
              3) 정치세력의 문제  http://tadream.tistory.com/14361
              4) 중앙통치체제의 정비  http://tadream.tistory.com/14362
              5) 지방통치제도의 발전  http://tadream.tistory.com/14363
          3. 백제사 연구의 과제  http://tadream.tistory.com/14408 
   
고대국가의 성장기에 영역확장과 그 결과 새로이 편입된 지역에 대한 통제는 국가의 통치의지가 구체적으로 시행, 관철되는 것으로 중앙집권화 노력의 성패를 가름하는 관건이었다. 따라서 지방통치제도의 문제는 중앙의 통치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백제의 지방통치에 대한 연구는 각 지역별로 고고학 연구성과가 축적되면서 199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지방통치에 대한 문제는 백제사 연구의 중요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백제 지방통치제도의 변화양상에 대해서는 다케다(武田辛男)는 4세기 말의 성, 촌체제→5세기의 왕, 후, 태수제→6세기 초의 담로체제→6세기 중엽이후의 방-군-성체제로 파악했고,노중국은 읍락-소국체제→4세기 후반이후의 담로체제→6세기 중반이후의 방-군-성체제로 명명했다. 한편 박현숙은 부제→4세기 중반이후의 담로제→6세기 중반이후의 5방체제로 지방통치제도의 변화상을 파악했으며, 김영심은 부체제→5세기 중반이후 담로제→6세기 전반이후 5방체제 정재윤은 5세기후반이후 성체제→6세기 초반이후 담로제→6세기 후반 이후 5방제로 이해했다.

이를 통해 부제(部制→담로제(擔魯制)→5방체제(五方體制)로 변화하는 지방제도의 골격은 파악된 셈이지만, 세부적인 문제에서는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즉 백제의 지방통치와 관련하여 초기의 ‘부’를 어떻게 볼 것인지, 담로제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 5방체제의 형성과 그 의미를 어떻게 볼 것인지 그리고 지방관의 파견시기와 지방관의 성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하는 문제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백제초기사에 보이는 ‘부(部)’의 문제는 부체제와 관련하여 또는 지방의 행정구획과 관련하여 크게 논의되었다. 특히 백제초기 ‘부’의 성격을 어떻게 파악하느냐 하는 문제가 고구려, 신라의 ‘부’ 문제와 더불어 부각되었다.
 
노태돈은 부여, 백제, 신라 등의 초기역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부’를 연맹단계의 내부구조로서 주목하였다. 그리하여 이후 ‘부체제(部體制)’는 중앙정치구조와의 관련성 아래 고찰되었다. 즉 종래 국가발전 단계상의 혈연적인 부족연맹체론(部族聯盟體論)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그 대안으로 ‘부체제론’을 제기한 것이다. 독자성을 띠는 단위정치체제인 부체제가 해체되면서 일원적인 관료조직에 입각한 중앙집권체제가 출현했다고 보았다.  
  
그러나 백제 초기의 ‘부’는 고구려, 신라의 이른바 ‘부체제(部體制)’와는 달리 초기기록에서부터 이른바 ‘족제적(族制的) 또는 부족적(部族的)’ 성격이 약한 방위부(方位部)인 행정구역적 특징을 나타내고 본 견해들이 있다. 물론 백제 초기의 부제(部制)에도 독자성을 띠는 세력집단들의 존재가 상정되지만 이는 중앙권력의 미숙성으로 야기된 것으로, 실제적으로는 지방행정구획인 부(部)에 산재해 있던 재지세력들을 통한 간접통치의 양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담로제와 관련하여서는 실시시기와 성격에 대한 이해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본서기』인덕기 41년조의 기록을 근초고왕대의 사실로 이해하는 입장에서는 근초고왕대에 담로제가 실시되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근초고왕이 369년 전라도지역의 마한세력을 복속하기 이전인 한성시대 전기에는 부(部)-성(城)-촌(村)이 중심이었는데, 한성시대 후기에는 금강 이북지역은 부-성-촌제였으나, 복속지는 일부성에만 지방관을 파견하는 거점지배방식을 취한 이원적 통치 형태를 취했다고 본 견해도 있다. 그렇지만, 담로제는 대부분 새로운 영토확장이 이루어지는 근초고왕대에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한편 담로제는 지방통치구획으로서의 부제에 대한 보완으로 여러 성에 대한 거점 지배의 성격을 띠는 것으로, 22개의 담로는 초기 5부네에서 사비시대의 5방체제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지방통치체제로 이해하기도 하였다. 즉 비류왕대부터 담로제가 시행되었기 때문에 근초고왕대의 비약적인 발전이 가능하였다고 보았다. 이와 달리 근초고왕대에 전후한 무렵에야 부-성-촌체제로 편제하여 국가권력에 의한 지방세력 통제를 꾀하였으며, 이후 각 지역의 성주의 역할이 증대되면서 부가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보았다.
 
사비시대의 행정구획에 대해서는『주서』에 기록된 왕도5부제와 지방통치제도인 5방체제가 일찍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마니시(今西龍)는 앞의 시기왕의 연관관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5부, 5방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여, 무령왕 단계에서는 지방에 22담로를 설치했다가 사비천도 후에 도성을 5부로, 지방을 5방으로 나누었다고 보았다. 야마오(山尾辛久)는『양서』백제전의 내용을 6세기 초의 사실로 보아 사비천도 후에 실시된 방제가 얼마 후 37개 전후로 담로로 개편된 것으로 보았다. 김철준은 백제 초기의 전국 행정구역 4부가 사비시대의 5방으로 연결된다고 보아 지방지배체제에 대한 개괄적인 윤곽을 제시했으나 그 연결고리인 담로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김영심은『주서』에 기록된 5방이란 이전의 담로가 군(郡)이라는 중국식 표현으로 대치되는 변화를 나타낸 것으로서 백제 지방통치체제가 명실상부한 군현제의 모습을 갖춘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방-군-성체제를 갖추는 시기를 군령과 성주가 구체적인 칭호로 나타나는 6세기 전반으로 상정했다. 이에 대해 박현숙은 5방에 대한 지명 비정을 통한 방의 실체파악과 방-군-성의 유기성 등을 살핌으로써 백제국가가 전국을 어떻게 통할했는가에 주목하였다.
 
한편 사비시대의 행정구획 5부제는 비록 왕도의 행정구획이지만,『주서』에 5방체제와 함께 보이고 있으며, 통치체제의 일부분으로서 사비시대 백제국가의 지배체제의 일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찍부터 지방제도인 5방 체제와 함께 연구되었다. 김영심은 5~6세기 백제의 지방제도를 다루면서 동성왕대인 5세기 말~6세기 초단계에서 이미 왕도 5부제의 틀이 마련되었고, 사비 도읍기에 들어서 부-항체제를 갖춘 전형적인 5부제가 실시된 것으로 보았다. 박현숙은 궁남지 출토 목간을 통해 왕도 5부제의 변화양상을 언급하면서 사비시대에 들어 왕도에 5부(部) 25항(巷)제도가 실시되었음을 밝혔다.
 
지방관의 파견과 관련하여 백제 지방통치를 이해하기도 하였다. 이를 구명하기 위해 도사(道使)의 존재를 주목하였으며 도사의 파견시기를 담로제의 확립과정 속에서 구하고, 이 때 파견된 지방관을 성주라고 호칭하였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성주라는 명칭이 3세기 초반부터 나타나므로, 그 파견시기를 3세기대로 올려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제기되었다.
 
백제의 중앙통치제도와 조직에 대한 이해는 지배세력과 정치변동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논의가 나올 수 있다. 즉 왕권의 전제화가 진행된 시기였는지, 아니면 귀족에 의해 정치가 주도되었는지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따라서 통치체제나 정치조직에 대한 연구는 왕과 귀족 사이의 관계설정 및 지배귀족들 사이의 힘의 관계, 그리고 정치변동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고찰되어야 한다.
 
또한 지방통치제도도 중앙정치조직과 함께 국가의 통치를 원활히 하기 위해 마련된 지배체제의 중요한 축이므로 이를 단순히 제도사적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역사지리와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중앙정치 및 권력구조, 나아가 대민지배와 지방사회의 존재양태 등과 유기적 관계 속에서 연구되어야 한다.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