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58030
중국 '공공의 적', MB와 이렇게 닮았다
[게릴라칼럼] 비만 오면 생각나는 MB... 악몽이 따로 없습니다
12.07.22 12:10 l 최종 업데이트 12.07.22 12:10 l 김종성(qqqkim2000)
▲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하며 인위적으로 물길을 막고 준설을 했다. ⓒ 낙동강지키기부산운동본부
4대강 사업을 통해 실제로는 변종 대운하 사업을 추진한 이명박 대통령. 그의 롤모델 가운데 수나라 양제(수양제)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수양제는 당대에 욕을 먹고 죽었지만, 대운하는 오늘날까지 중국을 움직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지금은 욕을 먹지만, 훗날 남긴 것은 '운하'가 수양제의 그것처럼 한국을 움직일 것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자신의 희망사항과 관계없이, 수양제보다는 제3의 인물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아시아 대륙의 문명 교류를 매개한 3대 루트는 초원길·비단길·바닷길이었다. 초원길은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선 부근에서 시작해서 몽골초원을 지나 북중국에서 끝난다. 비단길(사막길)은 중동에서 시작해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북중국에서 끝난다. 19세기 이전만 해도 아시아 바닷길은 중동에서 시작해서 인도양과 말라카해협을 지나 남중국에서 끝난다.
이 대통령, 수양제 꿈꾸겠지만...
중국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대운하가 뚫리기 전에, 이 3대 루트는 통합적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세 길을 연결하는 매개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 길을 이어준 것이 바로 대운하였다. 물론 3대 루트의 종착점과 완전히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운하는 어느 정도 육로의 도움을 받아 3대 루트를 하나로 연결해 주었다.
북쪽으로는 초원길·비단길과 연결되고 남쪽으로는 아시아 바닷길과 연결되는 대운하의 등장은, 아시아의 육로와 해로를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이로써 아시아는 대운하를 매개로 동그라미 모양의 루트를 갖게 되었다. 아시아 동쪽에서 세 루트를 이어주는 것이 대운하였으니, 수양제 본인은 욕을 먹고 죽었을지라도 대운하만큼은 두고두고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만약 대운하가 3대 루트를 연결하지 못했다면, 수양제는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 '헛질'만 했다는 이유로 훨씬 더 많은 욕을 먹었을 것이다. 수양제가 자신에 대한 비난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배경에는 대운하가 이룩한 문명사적 역할이 결코 적지 않다.
그럼, 이명박 대통령이 구상한 한반도 대운하는 중국 대운하만큼 문명사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 한반도의 지리적 위치를 생각하면, 그 답은 뻔하다. 한반도 대운하가 아시아 문명사에 기여할 수 있는 범위는 지극히 한정적이다.
한반도 대운하가 중국 대운하만큼 역사적 의의를 남길 수 없는 것은 한국의 역량이 중국보다 못해서가 아니다. 한국과 중국이 세계사에 기여할 수 있는 분야은 각기 다르다. 대운하는 한국 몫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후세에 '한국판 수양제'로 기억되기 힘든 것은 이 때문이다.
▲ 초원길(맨 위, 청색), 비단길(중간, 적색), 바닷길의 위치. 출처는 <고등학교 역사부도>. ⓒ 신유
그렇다면, 이 대통령은 후세에 어떤 인물로 기억될까? 중국에서는 무척 유명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은 인물을 살펴보자.
고대 이래로 홍수 피해가 극심할 때마다 중국인들이 떠올리는 인물이 있다. 이른바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인 셈이다. 그 인물은 고대 중국의 홍수 피해를 가중시킨 장본인이다. 그래서 고대 이래로 중국인들은 '역사상의 악인' 하면 그 인물을 떠올린다. 고대 중국 역사서인 <서경>에서 그 인물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다.
중국 최초의 왕조로 불리는 하나라가 등장하기 이전이었다. 전설적인 왕인 요임금이 통치할 때였다. 당시 중국의 최대 문제는 북방 유목민의 침입과 홍수 피해였다.
유목민의 침입이야 목숨 걸고 막으면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일이지만, 홍수 피해는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홍수가 산을 에워싸고 언덕을 질펀하게 만들" 정도였다고 <서경> '요전'은 말하고 있다. 노아 때의 대홍수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다. 요임금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인물에게 왕위를 넘겨주고자 했다.
중국 공공의 적 백곤... 한국에서 이명박은?
맨 처음 추천된 인물은 공공이었다. 요임금은 공공을 거부했다. 말은 그럴싸하지만 막상 일을 시켜놓으면 제대로 하는 게 없다는 게 거부 사유였다. 다음으로 추천된 인물은 백곤이었다. 숭백곤 혹은 곤으로도 불리는 인물이다. 신하들은 백곤이 홍수를 충분히 다스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요임금은 이번에도 거절했다. 명령을 잘 안 따르고 집안을 망칠 인물이라는 게 거부 사유였다. <서경> 해설서인 <서경집전>에서는, 백곤이 고집이 세고 비뚤어진 탓에 자기 주장만 내세우고 사람들과 잘 화합하지 못한다고 했다. 요임금이 거부한 건 그 때문이다.
하지만, 신하들은 압박을 강화했다. "인격을 떠나서 백곤은 유능한 인물"이라는 것이 신하들의 주장이었다. 일단 한 번 믿고 맡겨보자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요임금은 백곤에게 국정을 위임했다. 권한대행직을 맡긴 셈이다. 왕위를 넘기기 전에 능력을 테스트하기로 했던 것이다.
백곤은 9년이란 시간을 받았지만, 끝내 홍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홍수를 막기는커녕 도리어 가중시키고 말았다. 결국 백곤은 처벌을 받았고 우임금에게 후계자 자리를 빼앗겼다. 이후 백곤은 중국인들에게 '악인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 백곤의 아들인 우임금의 상상화. ⓒ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중국어판
백곤은 왜 실패했을까? 단순히 홍수를 막지 못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방법으로 문제의 해결을 시도했다는 게 진짜 원인이었다. 기독교 식으로 말하면, 창조질서를 교란했던 것이다.
<서경> '주서'에서는 "옛날에 백곤이 홍수를 막고자 오행을 어지럽혔기에 상제가 진노하셨다"고 했다. 음양과 더불어 오행(목·화·토·금·수)은 우주질서를 이루는 기본 원리다. 백곤은 우주질서의 기본 원리를 무시했던 것이다.
서기 3세기에 장화라는 중국인이 편찬한 백과사전인 <박물지>에서는 백곤이 '하늘나라 땅'을 파내서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했다. '하늘나라 땅'을 파내서 인공적으로 물길을 만들었다는 말이다.
이를 두고 실학자 박지원은 중국 견문록인 <열하일기>에서, 백곤이 물의 흐름을 역행하고 중국의 땅을 파내 강물을 끌어다 사막에 대는 방법을 구사했다고 했다.
백곤은 물이 어디서 어디로 흘러야 할지 개의치 않고 인공적으로 물길을 파내서 홍수 피해를 줄이고자 했다. 자연질서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고 '삽질'을 했던 것이다. 그 시대에 삽이 없음에도 백곤의 행위를 삽질에 비유하는 것은 너무 비약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혹시 있다면, 이미 선사시대부터 돌삽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된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의 홍수문제를 해결한 인물은 하나라의 시조이자 백곤의 아들인 우임금이라는 점이다. 아버지가 해결하지 못한 일을 아들이 해결했으니, 웬만하면 백곤을 용서해줄 만도 하다. 그런데도 중국인들은 백곤과 우임금을 별개로 생각하고 대대로 백곤을 욕했다. 자연질서를 어지럽힌 행위는 아들의 업적으로도 씻을 수 없는 범죄였던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해하는 것만 범죄가 아니다. 사람이 자연을 해하는 것은 훨씬 더 중한 범죄다. 사람을 해하는 범죄는 한두 명을 해하는 것으로 끝날 수 있지만, 자연을 해하는 범죄는 자연을 해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수많은 사람에게 해악을 준다. 그래서 훨씬 더 중한 범죄인 것이다.
중국인들이 백곤을 악인의 대명사로 간주한 것은 백곤이 홍수 피해를 가중시켰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백곤이 자연질서를 역행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큰비만 내리면 백곤의 죄악을 떠올렸던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백곤에 비견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 의도로 강을 파헤쳤든, 그는 이미 자연질서를 교란했다. 이미 4대강 주변에서 발생하는 피해가 이 점을 증명한다.
해마다 장마철만 되면, 한국인들의 머릿속에는 이명박이란 세 글자가 떠오를 것이다. 중국인들이 큰비만 내리면 백곤을 떠올리듯이, 그도 그런 존재로 기억될 것이다. 그는 백곤과 더불어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이 될 것이다.
▲ 이명박 대통령.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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