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inhakoreanology.kr/science/kor_study_dn.php?sq=37&att_sq=322 (문서파일)
* "북한지역의 부거석성 고찰 - 윤현철"중에서 "4.부거성=동경설의 문제점" 내용에 중경,상경,동경의 유사성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 부분만 발췌했습니다.

서고성(중경), 동경성(상경), 팔련성(동경)
2012 윤현철 

1. 지리적 장점

한 나라의 수도는 정치・경제・문화・군사 및 대외 왕래의 중심지로써, 국가 혹은 정권의 통치를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역대의 통치자들은 수도 건설에 매우 큰 힘을 기울여 왔는데 발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중경과 상경, 팔련성은 모두 발해 경내에서도 지세가 상대적으로 평탄하고도 넓은 하천의 충적평원 혹은 산간분지에 위치하고 있어 도시의 건설과 확대에 적합하였다. 주위는 뭇 산에 둘러싸여 천연 병풍을 이루고 있어 군사방어에 유리하였으며, 토지가 비교적 비옥하고 물 자원이 풍부하며 기후가 좋아 농업생산의 발전에 적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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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학술계는 보통 발해국의 중경・동경과 상경은 모두 동일한 시대, 즉 문왕 대흠무시기에 건설한 것이라고 주장한다.20) 그러나 반드시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은, 위에서 서술한 3경이 비록 모두 동일한 시기의 발해 수도들이기는 하지만, 중경현덕부가 제일 먼저 건설되었으며, 그 건설과 발전은 그 후의 상경용천부와 동경용원부의 건설과 발전에 참고로 될 만한 성공적인 경험을 제공하였다는 점이다. 


2. 성의 규모와 구조

발해국의 경이나 부의 치소로 확정 혹은 추정되는 성곽들은 대체로 둘레가 2,000m 이상이다. 예하면 상경성(16,839m), 팔련성(동경용원부, 2,894m), 서고성(중경현덕부, 2,720m), 청해토성(남경남해부, 2,132m), 소밀성(장령부, 2,590m), 대성자고성(솔빈부, 3,750m)이다. 주급이라고 추정되는 성들의 둘레의 길이는 대체로 1,000m 이상이다. 예하면 동단산고성(속주, 1,050m), 대상둔고성(속주, 1,061m), 유수천성(풍주, 1,455.6m), 경영고성(목주 혹은 하주, 1,200m), 계관고성(독주주, 1,690m), 용두산고성(발주,1,680m), 남성자고성(발주, 2,060m), 크라스키노고성(염주, 1,380m)이다.

일부 학자들은 중경과 동경, 상경용천부의 황성・궁성은 대흠무 시기에 건설되었는데 “모두 남북이 긴 방형으로써 종횡 비례가 아주 흡사하며”, “모두 성 안을 대체로 3개 부분 7개 구역으로, 즉 북부에 1개 구역, 중부에 3개 구역, 남부에 3개 구역으로 되어 있다.”21)라고 주장한다. 고고자료에 의하면 중경현덕부 외성의 둘레의 길이는 2,720.1m, 상경용천부 내성의 둘레의 길이는 2,880m, 팔련성 외성의 둘레의 길이는 2,894m이며 모두 2중성 구조이다. 비교를 통하여 상경 궁성의 규모와 서고성・팔련성의 규모는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효동과 위존성은 “서고성의 남북 길이는 726m, 동서 너비는 628m이며 정연한 세로로 놓인 장방형이다. 팔련성의 남북 길이는 약 740m,동서 너비는 약 706m인데 그 총체적인 형상이 방형에 가깝다.” “현존하고 있는 상경성 궁성유지는 남북 길이가 720m, 동서 너비는 620m이며, 역시 정연하고 세로로 놓인 장방형이며, 규모 및 형제(形制)가 중경 서고성과 같다. 응당 설명하여야 할 것은 상경성의 궁성 성벽은 돌로 쌓은 것이지만 중경성은 흙으로 쌓아 서로 같지 않다. …… 그리고 상경성의 궁성이 이른바 남북의 길이가 720m, 동서 너비가 620m라는 수치는 두 성벽 두께의 중간치까지 계산한 것이다. 돌로 된 성벽 본신의 두께는 5m좌우인데, 내외의 흙으로 된 성벽 두께를 더하면 10여m에 달한다. 만약 성벽 두께를 포괄하여 계산하면, 서고성의 남북 길이 729m, 동서 너비 628m와 거의 일치한 수치를 얻어낼 수 있다.” “양자는 또 규모가 같을 뿐만 아니라 형제(形制)도 같았으며 심지어 내부구조도 의외로 비슷한 점이 있었다. …… 무릇 서고성에 있는 주체 건축유지, 심지어는 세부구조까지도 상경성 궁성유지에서 그와 상응한 것들을 거의 모두 찾아낼 수 있다.”고 조사결과를 발표했다.22) 그리고 팔련성 유지의 내부구조도 아주 비슷한데, 다만 규모가 좀 클 뿐이다. 때문에 현존의 상경 궁성유지가 소재하고 있는 곳이 바로 대흠무시기에 제일 먼저 기획하고 건설한 수도 상경이라는 것을 판정할 수 있다. 

정원시기에 대흠무는 수도를 동경으로 천도하였다. 이 시기는 대흠무가 상경에서 “문치”를 실시한지 30년이나 되어 발해국의 국력이 비교적 강하였으며, 천도를 결정한 이상 필연코 혼신의 힘을 다해 새 수도를 영조하였을 것이다. 때문에 동경에 대한 기획은 응당 당시의 상경보다 컸을 것이며 적어도 상경과 비슷한 규모였을 것이다. 팔련성은 외성과 내성 2중성 구조이다. 성터는 대체로 3부분 8구역으로 나뉜다. 그중에서 중부에 3개 구가 있고, 남부에 4개 구역이 있다. 외성 성벽의 남쪽 길이는 701m, 북쪽 길이는 712m, 동쪽 길이는 746m, 서쪽 길이는 735m, 둘레의 길이는 2,894m이다. 성벽은 흙을 다져 쌓았다. 그중에서 남쪽 성벽의 동쪽부분과 북쪽 성벽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으며, 남아있는 높이는 1m, 너비는 6m이다. 외성에 모두 4곳의 성문이 있는데 각기 여러 성벽의 중부에 설치되어 있다. 성벽 밖 6m되는 곳에 호성하 유적이 있다. 내성은 중부의 중구에 위치해 있는데 이 성터의 핵심이다. 성벽은 남북 길이가 318m, 동서 너비가 218m, 둘레의 길이가 1,072m이다. 성벽은 흙으로 쌓았으며, 성벽의 너비는 6m이다. 중경현덕부의 내성과 마찬가지로 이 성의 내성도 남쪽 성벽의 중간부분이 안으로 꺾어 들어갔다. 내성 성벽의 남・동・서쪽의 중부에 성문이 각기 하나씩 나있는데, 그중에서 남쪽문의 너비는 25m이다. 내성에는 모두 8곳의 건축유적이 있다. 그중에서 내성의 중축선 위에 위치한 것이 2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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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벽 축조방식

성벽 축조방식이 특수하다. 성벽은 성의 방어력을 강화하여 적의 침입을 막아 안전을 도모하는 방어시설이다. 발해는 성곽을 축성함에 있어서 주로 흙과 돌 두 가지 재료를 사용하였다. 흙으로 쌓은 성을 토성, 돌로 쌓은 성을 석성, 흙과 돌을 섞어 쌓은 성을 토석혼축성이라고 한다. 이외에 성벽의 대부분을 흙을 쌓고 개별적인 구간을 흙과 돌을 섞어 쌓은 것도 있으며, 또 성벽의 기초는 돌로 쌓고 기초 윗부분을 흙으로 쌓은 것이 있다. '고구려・발해고성지연구휘편'에 의하면 지금까지 발견된 발해시기의 토성은 97개, 석성은 43개, 토석혼축성은 31개다. 일부 구간을 흙 혹은 돌 혹은 흙과 돌을 섞어 쌓은 것이 5개이고 축성재료를 판정하지 못한 것이 11개이다.23) 이로부터 발해국의 성곽형태에서 토성이 주류를 이루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다음은 토석혼축성이고, 석성이 제일 적다. 서고성과 팔련성은 모두 토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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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문화적 요소

다섯째, 발해의 역사에서 동경용원부를 수도로 삼았던 시기는 대흠무의 통치 말기이다. 대흠무가 적극적으로 문치를 실시하고, 전면적으로 당조의 선진문화를 수용하는 정책의 영향으로, 발해는 문화적으로도 큰 발전을 이룩했으며, 사람들의 사상・관념에도 변화가 발생했다. 발해문화를 언급하며, 불교가 발해문화에 미친 영향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불교문화는 대흠무시기에 발해국의 문학・건설・예술 방면에 깊이 침투하였으며, 해동문화를 조성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대흠무가 “효감금륜성법대왕”이란 존호를 받고, 불가의 대표로 자처하였는데, 이것은 발해국에서 불교의 숭고한 지위를 표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발해의 도성에도 불교유지가 남아있어야 한다고 보여 진다. 지금까지 발견된 흑룡강성 영안시 발해진 상경유지 근처에서 발견된 불교유지는 10여 곳이며, 길림성 서고성 중경현덕부 유지 근처에서 발견된 불교유지는 18곳이다. 


 

동경 - 팔련성 목록  http://tadream.tistory.com/14376
발해의 지방과 성 목록 http://tadream.tistory.com/4502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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