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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평 이순신 이야기 31-“이순신처럼 분노하라!”
<혼돈의 시대, 리더십을 말하다>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  ilyo@ilyoseoul.co.kr [1045호] 승인 2014.05.12  13:43:06

진정한 분노는 책임과 의무가 뒤따라
화와 분노 긍정적 촉매로 활용해 승리
 

▲ 현충사십경도중 한산도생활

세월호의 비극이 온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고 있다. 그 분노를 어쩌지 못해 무기력감을 호소하는 사람도 많다. 생중계되는 다양한 사연들에 눈물이 마르지 않아 집단 우울증 증세까지 생겨났다.

그 와중에도 부질없는 이념과 자신의 이익에 눈이 멀어 비극을 이용하고, 또 조롱하는 이들도 많이 나타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이미 이전에도 그렇게 해왔다. 말 한 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옛 속담 대신, 그들은 자신만의 이익과 권력을 위해 뱀의 혓바닥이 아니라, 입만 열면 뱀독을 뿜어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을 용인했다. 자유민주주의란 이름으로, 그들의 방종과 오만과 독설을 들어주었다. 

이순신을 공부하는 필자는 지금 ‘이순신처럼 분노하라’라고 말하고 싶다. 기본과 원칙을 지키지 않은 우리 자신의 잘못에 대해 분노하고, ‘좋은 것이 좋다’라는 조직의 관행에 대해 분하고, ‘빨리 빨리’라는 사회의 절대선에 대해 이제는 ‘안돼!’라고 분노하라고 하고 싶다. 또 민주주의의 적에 대해 분노하고, 그들과 맞서 싸우라고 하고 싶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남 탓’ 보다 먼저 ‘내 탓’을 인정하고, 나 자신부터 잘못을 인정하고, 잘못을 저지른 나 자신에게 먼저 분노하고, 그 분노로 내가 속한 조직과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을 바꾸어야 한다. 진정한 분노는 바로 ‘내 탓’을 인정할 때부터 시작된다. 또 일시적인 분노가 아니라, ‘바뀔 때까지’ 분노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분노이다.

개인의 분노 넘어 사회 변화의 분노로

이순신도 화 혹은 분노를 했을까. 《난중일기》에는 화가 난 이순신, 분노로 가슴이 타들어가는 이순신의 모습도 나온다. 또 온갖 스트레스로 ‘화병(Hwabyung)’에 걸린 듯, 몸이 불편하다고 쓴 일기도 180여 회나 등장한다. 화병은 1996년 국제 정신의학계에 정식 등록된 한국적 정신신경 장애증상이다. 연세대 민성길 교수는 화병의 증상이 우울·불안·불면·소화 장애·두통·신체 통증 등 일반적인 신경증적인 증상들 이외에 특징적으로 불과 연기, 그리고 그 억제와 상징적으로 관련되어 보이는 답답함·열기·입마름·치밀어 오름·목과 가슴의 덩어리 뭉침·한숨·뛰쳐나가고 싶은 마음 등이라고 했다. 그 화병이 세월호의 비극으로 인해 전염병이 되어 온 국민을 감염시키고 있다.

지금의 화병은 평상시, 한 개인의 화병과 차원이 다르다. 보통 때의 한 개인의 화병은 사람마다 다른 영향을 준다. 때문에 아놀드 루드비히는 비범한 성취를 한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성공에 오랫동안 만족하지 않아 욕구불만이 많고, 그로 인해 끊임없이 노력하기 때문에 항상 긴장하고 스트레스에 시달리지만, 그 긴장과 스트레스가 오히려 창의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그와 같은 화병은 비범한 성취를 하는 창의의 원천이 된 것이다. 역사적인 인물들의 병을 분석한 페르난드 데스텡도 질병이 예술가에게 일상생활의 잡다한 시간을 빼앗기지 않게 하는 창작의 시간을 주었고, 병에 의한 휴식으로 사색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회였다고 한다. 세상과의 갈등, 자신과의 갈등이라는 ‘번민’으로 인한 불면증이 예술가에게 밤새도록 상상하고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미친 증세가 있던 니체는 “질병이 나에게 고요함과 한가로움, 그리고 기다림과 인내라는 선물을 주었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니체에게 질병은 창조력을 준 시련이었다.

그러나 예술가가 아닌 세상을 이끄는 사람, 혹은 평범하지만 어제 보다 낳은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화병이 세상을 바꾸는 강력한 힘이 되기도 한다. 화와 분노를 긍정적 촉매로 쓴다면, 일상의 불의를 거부할 수 있고, 불법에 대항할 수 있으며, 부패한 사회 구조와 부정한 제도를 바꾸는 힘도 된다. 또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저항의 무기도 된다. 한 개인으로 돌아가 보면, 자신의 무능·무기력에 분노는 스스로를 바로 세우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이순신의 분노 승리의 원동력

이순신도 스트레스와 화병, 그리고 일본군에 대한 분노로 몸이 자주 불편했다. 그는 내가 해야 할 일, 내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내 탓’을 걱정하며 불면의 밤을 지새웠다. 또 ‘남 탓’인 일본군과 무능한 다른 리더들을 극복하기 위해 분노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는 그 분노를 창의력의 원천, 불의와 부정에 저항할 수 있는 힘, 승리의 집념을 다지는 에너지로 삼았다. 

 적에 대한 분노
 
▲ 1592년 4월 16일. 영남 우수사의 공문이 왔는데, “부산의 거진(巨鎭)이 이미 함락되었다”고 했다. 분하고 원통함을 이길 수가 없다.
 
▲ 1593년 2월 12일. (적선을) 나아갔다 물러났다 하며 유인했지만, 끝내 바다로 나오지 않았다. 두 번이나 뒤쫓았으나 잡아 섬멸하지 못했으니, 이를 어찌하겠는가. 분하고 분했다. 
 
▲ 1593년 7월 19일. 저녁에 진주에서 피살된 장병들의 명부를 광양 현감이 보내왔는데, 이를 보니 비참하고 원통함을 이길 수가 없었다.
 
▲ 1597년 7월 16일. (원균의 칠천량 패전 소식을) 듣고 보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우리나라가 믿는 바는 오직 수군에 있었는데, 수군이 이와 같으니 또다시 가망이 없을 것이다. 거듭 생각할수록 분하여 간담이 찢어지는 것만 같다.
 
◆ 무책임과 불의 등에 대한 분노
 
▲ 1597년 8월 12일. 배설의 겁내하던 꼴을 들으니 더해지는 탄식을 참지 못했다. 권세 있는 집안에 아첨해 감당치 못할 지위까지 올라가서 국가의 일을 크게 그르쳤건만, 조정에서는 살피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하겠는가.
 
▲ 1597년 9월 8일. 우수사 김억추는 겨우 만호에만 적합하고 장수를 맡길 수 없었는데, 좌의정 김응남이 서로 친밀한 사이라고 해서 함부로 임명하여 보냈다. 이러고서야 조정에 사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다만 때를 못 만난 것을 한탄할 뿐이다. 

이순신의 분노는 책임과 의무 때문이다. 또 그 분노를 승리의 원동력으로 바꾸었다. 국문학자 김열규 교수는 “내고 난 다음에 마음 무거운 것은 빚이다. 내고 나서 영 떨떠름한 것은 바람기다. 내고 난 다음 남부끄러운 것은 방귀다. 내고 난 다음 스스로 부끄러운 것은 화다. 빚과 바람기와 방귀 그리고 화는 기왕이면 내지 말아야 할 네 가지 것들이다. 나머지 세 가지도 내지 말아야 하지만 화는 더더욱 내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술픔을 삭히는 것과 같이 화를 삭인 사람에게 인품의 향내가 나고, 화를 다스린 사람에게서는 제왕의 위엄이 돋보일 것이라며 화를 삭이고, 다스리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삭임’이 최고라고 한다. ‘삭임’은 소화시키는 것이고, 더 나아가 승화시키는 것이다. 참고 견뎌서 마침내 한 점 흔적도 안 남기고 씻은 듯이 지워버리는 것이 삭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국민의 화와 분노의 원인을 우리 국민 모두는 스스로 잘 알고 있다. 화와 분노를 억누르지 말자. 이순신처럼 분노를 삭혀 승리의 에너지로 분출시킨 지혜로운 분풀이를 하자.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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