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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제1차 출전
(1592.5.4)


1592년(선조 25) 4월 27일 조정으로부터 경상도로 월경해도 좋다는 허가와 함께 경상우수영과의 합동작전에 대한 작전권을 부여받은 이순신은 4월 29일 원균으로부터 왜군 규모 등에 대한 파발을 받고, 전라우수사 이억기에게 지원 요청을 한다. 

이순신은 출전 준비를 마치고 이억기의 함대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이억기의 함대가 늦어지자 1592년 5월 4일 단독으로 출전을 명한다.

이순신은 휘하의 전함(판옥선) 24척, 소형 협선 15척, 포작선(고기잡이 배) 46척을 이끌고 5월 5일 당포(지금의 경남 통영시 산양면 삼덕리) 앞바다에 도착하여 원균을 기다렸다.

그러나 원균은 다음날 오전 8시가 되어서야 단 1척의 전함만을 끌고 나타났다. 기대했던 원균의 함대가 전멸함을 알고 이순신은 경악했지만 결코 실망하지 않았다. 다행히 원균의 부하 중 원균의 눈을 피해 숨겨 둔 군함을 타고 나타난 남해 현령 기효근과 영등포 만호 우치적, 옥포 만호 이운룡 등이 합류하여 경상우수영의 함대는 전함 4척과 협선 2척이 되었다. 전함 28척과 협선 17척, 포작선 46척으로 형식상이나마 경상우수영 함대와의 연합함대가 형성된것이다.



1. 옥포해전(1592.5.7)

1592년(선조 25) 5월 7일 옥포 앞바다에서 이순신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일본의 도도 다카토라 함대를 무찌른 전투로 이순신 함대의 최초의 해전.

이순신은 연합함대를 이끌고 척후선으로 수색을 해가며 전진하였다. 마침내 다음날인 5월 7일 거제도 옥포(지금의 경남 거제시 옥포동) 앞바다에서 우척후선 선장 김완, 좌척후선 선장 김인영이 옥포만에 정박중인 왜 선단을 발견하는데 성공한다.

도도 다카토라가 이끄는 함대로 남해의 해로를 여는 정예의 최선봉 함대였다. 이들은 부산진과 김해를 함락시키고 5월 6일 오전에 율포를 유린한 후 5월 7일 아침에 이곳 옥포에 도착한 것이었다.

옥포해전도

1592년(선조 25) 5월 7일 정오, 마침내 조선 함대는 옥포 포구에 정박하고 있는 50여척의 적선을 발견하고
이를 동서로 포위해서 포구를 빠져나오려는 적선들에게 맹렬히 포격을 가했다. 이순신 함대의 최초의 전투가 시작된것이다.

이 싸움의 결과 아군은 별 피해 없이 적선 26척을 격침하는 큰 전과를 올려 최초의 해전을 승리로 장식하였으며 조선 수군은 해전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되었다.

이어 합포(지금의 경남 마산시)와 적진포(지금의 경남 통영시 광도면)에서도 큰 전과를 올리게 된다.


2. 합포해전(1592.5.7)

옥포해전에서 승리를 거둔 직후 이순신의 연합함대는 북으로 약 40여킬로미터 떨어진 거제도 북단 영등포 앞바다로 나아가 이곳에서 밤을 지새기로 하고 군사들을 휴식시키려 하였다. 그런데 같은 날 오후 4시 무렵,
아군 척후선으로부터 왜선 5척(대선 4척, 소선 1척)이 주변을 지난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첩보를 입수한 조선 수군이 즉시 추격을 시작하자, 왜선은 약 15킬로미터를 필사적으로 도주해 웅천땅 합포에 이르렀다. 아군이 합포 앞바다까지 진격하자, 더 도망갈 곳이 없게 된 왜군은 배를 버린 채 육지로 올라가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조총을 쏘아 댔다. 그러나 전세는 이미 아군의 완벽한 승리로 굳어진 뒤였다.

방답 첨사이자 이순신 함대의 중위장 이순신, 모포 만호 김완언양 현감이자 이순신 함대의 수로향도 어영담 등이 적선 5척을 모두 불살라 격침시켰다.

이 해전에는 이순신이 이끄는 전라좌수영군만이 참전하였다.

옥포해전과 합포해전을 통해 일본 수군의 함선과 무기·장비를 어느 정도 파악한 조선 수군은 남포(지금의 경남 마산시 구산면 남포리)로 이동해 이곳에서 밤을 보냈다.

해전이 일어난 합포는 지금의 마산이 아니라 진해라는 설도 있다.


3. 적진포해전(1959.5.8)

옥포해전과 합포해전을 치르고 남포에서 진을 치고있던 연합함대는 이튿날인 5월 8일 이른 새벽에 또 다시 척후선으로부터 고리량(오리량(?), 지금의 경남 마산시 구산면 구복리 인근 바다)에 왜선이 정박해 있다는 보고를 받는다. 이순신은 주도면밀하게 수색을 하면서 이동했다. 수색이 끝날 즈음 고리량 서남방 6킬로미터 위치하고 있는 적진포(지금의 경남 통영시 광도면 적덕리)에 왜선 13척이 정박해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 왜선의 왜군들은 주변 마을을 습격하여 노략질을 하고 있었다. 이순신 함대가 접근하자 이들은 도망가기 시작했고, 이에 낙안군수 신호, 방답첨사 이순신, 녹도만호 정운 등의 장령들과 군사들은 도망가는 적을 무찌르고, 왜선 11척(대선 9척, 중선 2척)을 격침시켰다.

이 해전을 끝으로 이순신은 전라좌수영 본영이 있는 여수로 귀영하였다. 여수에서 이순신은 선조가 관서지방으로 피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분통해 했다.

이순신은 5월 23일 문산계 종2품 하계의 가선대부로 승서되었다.

옥포, 합포, 적진포의 세 해전은 이순신 함대가 처음으로 출전해 승리를 거둔 해전으로, 3회에 걸쳐 총 42척의 적선을 격침시키는 데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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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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