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panzercho.egloos.com/2767660
옥포해전
옥포해전
임진왜란 초기에 왜군의 기세에 눌려 전함을 버리고 수군 1만을 해산시킨 경상수군은 전라,충청 지방에 이르는 해로상의 요충인 옥포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고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그에 응하여 1592년 6월 13일(이하 날짜는 모두 양력) 새벽 이순신은 휘하의 판옥선24척, 협선15척, 포작선46척을 이끌고 여수를 출발하여 역사적인 제1차출전을 감행한다.
▼ 이순신장군의 1차 출전길 설명
이순신 함대는 남해도 남쪽 미조항을 끼고 돌아 소비포(경남 고성군 하일면 동화리)에서 1박한 후 다음날(14일) 당포(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후에 당포해전의 격전지)에 도착하여 한산도로부터 1척의 판옥선을 타고온 원균과 합류하였다. 뒤이어 옥포 만호 이운룡 등 9명의 경상우도 수군장들이 3척의 판옥선과 2척의 협선을 타고 합세해 왔다.
▼ 이순신장군의 1차 출정길 설명(동쪽에서 서쪽을 바라본 모습)
경상우도 수군과 연합한 이순신함대는 비진도와 용초도 근처를 지나 장사도, 가왕도, 병대도 근처를 경유하여 6월 15일에는 거제도 남단을 돌아 거제도 동쪽 해안의 송미포(松未浦)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여기서 송미포라 하면 그 동안 임란 해전사를 연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어느 곳을 두고 하는 말인지 궁금해했던 곳이다. 그런데 진해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장을 지낸 조성도 교수가 1990년에 송미포는 거제시 남부면 다대포의 옛 이름인 송변현의 송미포임을 해도와 함께 인증한 바 있다.
▼ 옥포해전지를 남쪽에서 북쪽을 바라본 모습
한편 송미포에서 1박한 다음날인 6월 16일 새벽에 이순신 함대는 우척후장 김완과 좌척후장 김인영을 선두로 가덕도 방면으로 북상했다. 척후장은 요즘 말로 하면 정찰대장 또는 수색대장이라고 보면 된다. 이날 낮 12시경 척후선이 옥포만에 약 30여 척으 왜선이 정박하고 있음을 발견하고는 신기전을 쏘아 올려 본대에 알려왔다. 신기전은 점화를 하면 자체 추진력으로 로켓처럼 날아가는 화살인데, 옥포해전에서는 신호탄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 옥포해전지를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본 모습
▼ 옥포해전지를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본 모습
▼ 옥포해전지를 동쪽에서 서쪽을 바라본 모습
이때 이순신 장군은 장졸들에게 "가벼이 움직이지 말라, 침착하게 태산같이 무게 있게 행동하라. " 고 지시한 상태였다. 첫번째 시작하는 전투에서 공포심과 전쟁경험 부족을 급복하고 전장에서 여유와 냉철함을 가질 수 있도록 한 말씀이다.
이순신함대는 항로를 바꾸어 옥포 포구 안으로 진입하여 왜군 선단을 공격해 들어갔다. 선봉장인 옥포 만호 이운룡이 돌격을 감행하자 전열을 감추지 못한 왜군은 해안선을 따라 탈출을 시도하였다. 이순신 함대에 맞선 왜군 선단은 옥포만 일대에 상륙하여 주변 지역을 약탈하던 중이었다. 왜군은 옥포만으로 돌입하는 이순신 함대를 발견하고 급히 승선하여 선봉 6척이 먼저 응전해 왔다. 조선 수군은 이들을 포위하면서 총통과 화살을 쏘았고, 일본 수군은 조초응로 응사했다.
조선 수군은 퇴로를 봉쇄하고 함포사격을 퍼부으며 해안선 쪽으로 밀어 부쳤다. 적들은 포위망을 뚫고 외양으로 탈출을 시도했으나 포위망에 갇혀 26척이 격침되었다. 이 전투에서 조선수군은 튼튼한 판옥선을 적선과 충돌시켜 파괴해버리는 당파전술(撞破戰術)을 사용하여 위력을 발휘했다. 이것이 임란 해전 최초의 승리를 거둔 옥포해전이다. 옥포해전에서 승리한 조선수군은 거제도 북단의 영등포(거제시 장목면 구영리)에서 1박하기 위해 이동했다.
이상>>> 이순신이 싸운 바다/새로운 사람들 간/ 이봉수(섬원주민) 저/에서 발췌
가장위에 있는 그래픽이 조선수군의 진격로이다. 여수에서 거제까지 거제에서 합포(마산)까지 합포에서 적진포까지 또 적진포에서 여수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 길이다. 지금 현대에서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것으로 생각이 드는데 임진왜란 당시에는 격군들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그리고 지금 현재 한국해군이 북한해군에게 서해안에서 참수리급 고속정으로 사용한 밀어내기식 충돌공격은 이순신장군이 사용한 당파전술이 전해져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옥포해전은 옥포만에 정박하고 있는 왜선을 독안에 든 쥐꼴로 만들고 공격한 것이 정답일 것입니다. 이후 합포해전,당항포해전,적진포해전 등도 마찬가지 방법을 사용했다고 봐야 겠습니다. 그 당시 왜군이 사용한 조총의 사정거리는 정확하게 나온 것은 없지만 보통 110미터 전후로 보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조선수군이 사용한 총포들은 보통 300미터 이상이라서 적 보다 더 많은 사정거리에서 쏘기때문에 아군에게는 피해가 없었던 이유도 될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사정거리가 유리하니 맘 놓고 왜적을 사냥(?)하지 않았을까 하네요. 현재에 와서도 적보다 먼저보고 긴 사정거리를 가지고 있다면 더 유리하겠죠.
조선수군 진출도는 이순신이 싸운 바다/새로운 사람들 간/ 이봉수(섬원주민) 저자의 내용을 가지고 재 구성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 그래픽은 내(조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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