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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이회창 돕던 연예인 씨 말렸다? 홍준표 거짓말의 흔적들
[하성태의 사이드뷰] 블랙리스트 물타기 하는 홍 지사의 막말을 반박하다
글 하성태(woodyh) 편집 김미선(iosono) 17.03.16 18:11 최종업데이트 17.03.16 18:17
▲ '천하대란 어떻게 풀 것인가' 주제로 강연하는 홍준표홍준표 경남도지사가 1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반도미래재단 주최로 열린 2017 대선주자 초청 특별대담에 참석해 '천하대란 어떻게 풀 것인가'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유성호
"블랙리스트를 말씀하셨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 5년 동안 문화계를 지배하던 황태자가 두 사람 있었죠. 그 사람들이 전부 군기 잡아서 그 당시 이회창 전 총재 도와주던 연예인들 방송 출연 5년을 못 했습니다. 자기들이 집권을 할 때는 우리를 도와주던 연예인들은 씨를 말려버렸어요.
그럼 그거를 가지고 처음에 항변을 '너희가 먼저 그렇게 하지 않았냐, 우리도 그렇게 한번 해봤다, 해봤는데 이게 무슨 죄냐' 이런 식으로 항변을 해야지 난 김기춘 전 비서실장처럼 머리 그리 좋은 사람이 왜 수갑 차고 들어가는지 이해가 안 되더라 이 말이에요."
블랙리스트 사태와 관련해 대다수 국민들은 "이해"가 가는데, 유독 이해를 못하시는 한 분이 있다. 자유한국당 '유력'(?) 대선주자이자 오는 18일 대선출마 선언을 앞두고 있는 홍준표 경남지사다. 그는 지난 1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반도미래재단 초청 특별 대담'에 참석, 예의 그 '막말'로 맹위를 떨쳤다. "우파 정부가 자기들에 반대하는 좌파 단체 리스트 만든 게 무슨 죄냐"고 주장하는 한편 구속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우회적으로 옹호하고 나섰다.
<중앙일보> 등 복수의 매체에 따르면, 그의 궤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또 "박근혜 정부는 우파정부다. 우파 정부에서 5년 집권을 하는데, 소위 반대되는 좌파 단체는 지원을 안 해도 된다"며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를 적극 옹호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중앙일보>는 "홍 지사는 논란을 예상한 듯 마지막에 "'제가 말이 좀 심했다'고 마무리했다"고 전했다.
따져 물어보자. "노무현 전 대통령 5년 동안 문화계를 지배하던 황태자" 두 사람은 노사모 출신 명계남·문성근 배우를 지칭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 두 배우가 정말 문화계를 지배했나. 더군다나 두 사람이 군기를 잡아서 "그 당시 이회창 전 총재 도와주던 연예인들"이 방송 출연을 5년간 못 했나.
그래서 정말 "자기들이 집권을 할 때는 우리를 도와주던 연예인들"이 씨가 말랐나. 무엇보다, 범정부 차원의 블랙리스트와 몇몇 연예인들의 출연 여부 논란이 동일 선상에서 비교할 만한 것으로 생각하는가. 이날 토론회에서 '스트롱맨' 운운한 것처럼 홍 지사는 스스로 블랙리스트를 또다시 만드는 '독재자'가 되고 싶은 건가.
홍준표 지사의 블랙리스트 관련 막말, 이게 비교가 되나
▲ 한나라당 연예인 자원봉사 유세단 발족지난 1997년 12월 5일, 한나라당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목화예식장 앞에서 연예인들로 구성된 자원봉사 유세단(단장 이정길)을 발족한 가운데 코미디언 김학래씨가 이회창 대통령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시 묻자. 홍 지사는 정말 이회창 전 총재를 도왔던 연예인들이 방송출연을 정지당했는지, "씨가 말랐다"는 표현을 쓸 만큼 업계에서 불이익을 당했는지 확인은 제대로 하셨나. 대통령을 꿈꾸시는 분이 벌써 이런 확인도 안 된 '막말'을 공식 석상에서 유포하셔도 되는 건가. 그래서 부러 확인해 봤다. 과연 이회창 전 총재를 도와줬던 연예인들이 누구였는지를.
'"1월 10일 오후 1시 30분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는 한나라당 '한사랑자원봉사단' 발대식이 열렸다. 한사랑자원봉사단은 팬클럽이 주축이 된 이회창 후보지지 조직으로서 젊은 연예인과 스포츠인도 약 25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날 참석한 연예인은 KBS 개그콘서트 팀과 탤런트 박철·김인문·한혜숙, 한나라당 강신성일 의원의 부인 엄앵란씨, 가수 조갑경·홍서범·이자연·이승철·신성우·변진섭·베이비복스 등이다.
스포츠인들로는 심권호·유남규·오경훈 등 금메달리스트들이 참석했다. 유남규씨는 한사랑자원봉사단 홍보위원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이날 분위기는 개그맨 심현섭씨를 중심으로 한 개그콘서트 팀이 주도했다. 참석한 개그콘서트 팀원은 김철호·김대희·강성범·이병진·황승환·이태식·박성호·김숙·김미진 등이다."
▲ 한사랑 봉사단 발대식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11월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직능특위 한사랑 봉사단 발대식에서 단장을 맡은 개그맨 심현섭(오른쪽), 탤런트 박철(왼쪽)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종호
16대 대선의 열기로 한창이던 2002년 11월 19일자 <오마이뉴스> "연예계, 이회창 대세론이 점령? 노무현 지지 연예인은 '소신파'" 기사 중 일부다. 이 중 이회창 후보 측이 젊은 층과의 소통을 위해 적극적으로 내세운 젊은 연예인은 개그맨 심현섭과 배우 박철이었다. 확인 결과, 복수의 매체 역시 "연예인홍보단'과 '한사랑자원봉사단'을 언급하며 천 명이 넘는 연예인들이 이회창 후보를 지지한다고 설명했다. 이 기사를 더 보자.
"당시 적극적 또는 소극적으로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고 있는 연예인 수는 약 1200여명에 이른다. 적어도 양적인 측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다. 한나라당에 몰리는 연예인들은 '연예인홍보단'과 '한사랑자원봉사단'으로 묶여서 관리되고 있다. 지난 6일 중견급 연예인을 중심으로 발족한 연예인홍보단에는 무려 100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날 발대식에는 방송인 이창명씨와 가수 현미·한명숙·김수희·문희옥·김혜영·최석준·박상민, 코메디언 배삼룡·구봉서·황기순, 탤런트 사미자·양택조·임채무·전원주씨 등이 참석했다. 또 너훈아(본명 김갑순)씨 등 이미테이션 가수들도 눈에 띄었고, 영화배우 출신 강신성일· 신영균 의원도 참석해 이들을 격려했다. 연예인홍보단은 탤런트 석현씨가 단장을 맡아 주도하고 있고, 가수 설운도씨와 코미디언 이용식씨 등 30여명이 부단장을 맡고 있다. 석현씨는 97년 대선부터 이 후보를 지지했다."
▲ 이회창 거리 유세개그맨 심현섭씨가 2002년 12월 1일 밤 부산의 한 쇼핑몰 앞에서 열린 거리유세에서 사회를 보며 '이회창'을 연호하고 있다.ⓒ 이종호
이렇게 많은 연예인의 명단을 보고도 "씨를 말려 버렸다"는 말이 나오는가. 앞서 15대 대선에서도 가수 김흥국씨와 탤런트 유동근씨를 비롯해 다수의 연예인이 이회창 후보를 도왔다. 원로배우 강신성일씨는 한나라당 당직자로 재직했고, 배우 이정길씨는 이회창 후보 연예인 자원봉사단장을 역임하며 활발한 유세활동을 펼쳤다. 특히 강신성일씨는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기도 했다. 이들 중 누가 불이익을 당했는가.
아마도 홍 지사가 언급한 "이회창 전 총재 도와주던 연예인들"은 16대 대선 직전까지 이회창 후보를 적극 지지했던 개그맨 심현섭씨나 SBS 라디오를 진행 중이던 배우 박철씨를 염두에 둔 발언일 수 있다. 하지만, 무려 15년 전 각 방송사 차원에서 벌어진 일을 블랙리스트와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군다나 심현섭씨나 박철씨의 출연 논란은 출연정지도 아니었고, 참여정부도 집권기가 아닌 2002년 12월 대선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심현섭씨는 당시 이회창 후보를 지지한 탓에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출연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후에 담당자 간 소통에서 발생한 오해였다는 게 밝혀져 사과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개그콘서트>를 나온 것에 대해서도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 문제였다고 2013년 기자간담회에서 직접 밝히기도 했다.
김기춘, 박근혜와 꼭 닮은 홍준표의 현실 인식
▲ 탄핵 선고 하루 전 만난 인명진-홍준표홍준표 경남도지사가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를 방문해 인명진 비대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두 사람 뒤로 탄핵심판 선고를 하루 앞둔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다.ⓒ 남소연
홍 지사의 이 같은 발언은 블랙리스트 사건의 본질을 흐릴 뿐만 아니라 블랙리스트로 드러난 박근혜 정권의 헌법정신 파괴 행위에 대한 홍 지사의 몰이해를 드러내는 망언일 뿐이다. 홍 지사의 이러한 몰인식은 지난 2월 <주간조선>과 가진 인터뷰에서도 잘 드러난다.
"블랙리스트 한 가지만 얘기하자. 특검과 언론이 블랙리스트를 마치 민주화운동 시절 보안사가 리스트를 만들어 미행한 것과 다름없다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그건 말이 안 된다. 이 정부는 기본적으로 보수 정부다. 보수 정부에 협력하는 사람들한테 정책자금을 배분하겠다는 것을 어떻게 범죄로 몰아갈 수 있나. 노무현 정권 당시의 일을 벌써 잊었나. 그때 연예계에서만 M씨 등 친노 두 사람이 황제처럼 설치면서 이회창 도와주던 연예인들 방송 출연 금지까지 시키지 않았나."
사실 이러한 홍 지사의 인식은 박근혜씨와 김기춘 전 비서실장으로 대변되는 국정농단 세력들의 인식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보수 정부에 협력하는 사람들한테 정책자금을 배분하겠다는 것을 어떻게 범죄로 몰아갈 수 있나"라는 발언은 더없이 문제가 있다.
홍 지사의 발언은 법 절차에 맞게 공정하게 지원돼야 하는 정부 예산을 진보와 보수로 나누어 정부에 협력하는 단체나 개인에게 몰아줘도 무방하다는 뜻으로밖에 볼 수 없다. 홍 지사가 "머리 좋은 사람"이라고 두둔했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극우적 사고나 현실 인식과 하등 다를 게 없는 것이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박영수 특검의 공소장에 적시된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박근혜씨의 과거 발언 몇 가지와 비교해 보면 확연하다.
"2013. 8. 초순경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피고인 김기춘은, 2013. 8. 21.경 비서실장이 주재하고 대통령 수석비서관들이 참여하는 회의(이하 '실수비')에서 1OO 정무수석, DOO 교문수석 등 수석비서관들에게 '종북세력이 문화계를 15년간 장악했다, CJ와 현대백화점 등 재벌들도 줄을 서고 있다, 정권 초기에 사정을 서둘러야 한다, 이것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국정과제이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대통령은 2013. 9. 30.경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피고인 김기춘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에게 '국정지표가 문화융성인데 좌편향 문화예술계에 문제가 많다, 특히 롯데와 CJ 등 투자자가 협조를 하지 않아 문제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피고인 김기춘 비서실장은 2013. 12. 18.경 '실수비'에서 수석비서관들에게 '반국가적·반체제적 단체에 대한 영향력 없는 대책이 문제이다, 한편에는 지원을 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제재를 하고 있다, 문화계 권력을 좌파가 잡고 있다, <변호인>과 <천안함 프로젝트>가 그렇다, 교육계 원로들이 울분을 토하더라, 하나하나 잡아 나가자, 모두 함께 고민하고 분발하라'고 지시하였다."
"피고인 김기춘 비서실장은 이러한 인식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고자, 2013. 12. 20.경 '실수비'에서 수석비서관들에게 공직자는 자유민주주의 헌법가치를 수호해야 한다, 그런데 반정부·반국가적인 성향의 단체들이 좌파들의 온상이 되어서 종북세력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한 성향의 단체들에게 현 정부가 지원하는 실태를 전수조사하고, 그에 대한 조치를 마련하라'고 지시하였다."
안타깝다, 스트롱맨 홍준표
▲'문화·예술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수사를 하고 있는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로 조사를 받기 위해 재소환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지난 15일 열린 2차 공판준비기일에 출석,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혐의에 관해 "진보를 배제하라고 한 것이 아니고 균형을 유지하라고 한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고 한다. 특검의 공소 사실과 확연히 갈라지는 주장이다. 결론적으로, 홍준표 지사의 이번 발언은 이러한 김 전 비서실장의 주장의 다른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안타깝다. 유신 시절부터 박근혜씨를 주군으로 모셔온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그렇다 쳐도, 청렴한 검사 출신으로 정치계에 입문한 홍 지사가 어쩌다 김 전 실장의 이념 노선을 따라가려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이념은 둘째 치고, 법조인 출신이라면 일반 국민보다 현행법은 물론 헌법 정신은 좀 더 깨우치고 있어야 하지 않나. 아무리 '친박'과 '보수'의 표가 아쉽다 한들, 문화예술계 전반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블랙리스트 사건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막말을 늘어놔서야 되겠는가.
우파·보수 정부의 재집권을 자신이 이루겠다 부르짖고 있는 홍준표 지사. 자유한국당 유력 후보로 부각 중인 홍 지사가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 경청해야 할 법문을 찾아 봤다. 다름 아닌, 역사적인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 중 인상적인 두 보충의견 중에서다.
"정치세력간의 이전투구는 이념대립과 지역주의를 부추기고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국가기관의 인적 구성이나 국가정책의 결정이 투명한 절차를 통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사적·당파적 이익에 따라 자의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김이수, 이진성 재판관의 보충의견 중에서)
"일찍이 플라톤은 50대에 저술한 <국가>에서 "통치하는 것이 쟁취의 대상이 되면, 이는 동족간의 내란으로 비화하여 당사자들은 물론 다른 시민들마저 파멸시킨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플라톤의 경고는 우리가 권력구조의 개혁을 논의하는데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안창호 재판관의 보충의견 중에서)
노무현이 이회창 돕던 연예인 씨 말렸다? 홍준표 거짓말의 흔적들
[하성태의 사이드뷰] 블랙리스트 물타기 하는 홍 지사의 막말을 반박하다
글 하성태(woodyh) 편집 김미선(iosono) 17.03.16 18:11 최종업데이트 17.03.16 18:17
▲ '천하대란 어떻게 풀 것인가' 주제로 강연하는 홍준표홍준표 경남도지사가 1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반도미래재단 주최로 열린 2017 대선주자 초청 특별대담에 참석해 '천하대란 어떻게 풀 것인가'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유성호
"블랙리스트를 말씀하셨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 5년 동안 문화계를 지배하던 황태자가 두 사람 있었죠. 그 사람들이 전부 군기 잡아서 그 당시 이회창 전 총재 도와주던 연예인들 방송 출연 5년을 못 했습니다. 자기들이 집권을 할 때는 우리를 도와주던 연예인들은 씨를 말려버렸어요.
그럼 그거를 가지고 처음에 항변을 '너희가 먼저 그렇게 하지 않았냐, 우리도 그렇게 한번 해봤다, 해봤는데 이게 무슨 죄냐' 이런 식으로 항변을 해야지 난 김기춘 전 비서실장처럼 머리 그리 좋은 사람이 왜 수갑 차고 들어가는지 이해가 안 되더라 이 말이에요."
블랙리스트 사태와 관련해 대다수 국민들은 "이해"가 가는데, 유독 이해를 못하시는 한 분이 있다. 자유한국당 '유력'(?) 대선주자이자 오는 18일 대선출마 선언을 앞두고 있는 홍준표 경남지사다. 그는 지난 1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반도미래재단 초청 특별 대담'에 참석, 예의 그 '막말'로 맹위를 떨쳤다. "우파 정부가 자기들에 반대하는 좌파 단체 리스트 만든 게 무슨 죄냐"고 주장하는 한편 구속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우회적으로 옹호하고 나섰다.
<중앙일보> 등 복수의 매체에 따르면, 그의 궤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또 "박근혜 정부는 우파정부다. 우파 정부에서 5년 집권을 하는데, 소위 반대되는 좌파 단체는 지원을 안 해도 된다"며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를 적극 옹호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중앙일보>는 "홍 지사는 논란을 예상한 듯 마지막에 "'제가 말이 좀 심했다'고 마무리했다"고 전했다.
따져 물어보자. "노무현 전 대통령 5년 동안 문화계를 지배하던 황태자" 두 사람은 노사모 출신 명계남·문성근 배우를 지칭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 두 배우가 정말 문화계를 지배했나. 더군다나 두 사람이 군기를 잡아서 "그 당시 이회창 전 총재 도와주던 연예인들"이 방송 출연을 5년간 못 했나.
그래서 정말 "자기들이 집권을 할 때는 우리를 도와주던 연예인들"이 씨가 말랐나. 무엇보다, 범정부 차원의 블랙리스트와 몇몇 연예인들의 출연 여부 논란이 동일 선상에서 비교할 만한 것으로 생각하는가. 이날 토론회에서 '스트롱맨' 운운한 것처럼 홍 지사는 스스로 블랙리스트를 또다시 만드는 '독재자'가 되고 싶은 건가.
홍준표 지사의 블랙리스트 관련 막말, 이게 비교가 되나
▲ 한나라당 연예인 자원봉사 유세단 발족지난 1997년 12월 5일, 한나라당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목화예식장 앞에서 연예인들로 구성된 자원봉사 유세단(단장 이정길)을 발족한 가운데 코미디언 김학래씨가 이회창 대통령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시 묻자. 홍 지사는 정말 이회창 전 총재를 도왔던 연예인들이 방송출연을 정지당했는지, "씨가 말랐다"는 표현을 쓸 만큼 업계에서 불이익을 당했는지 확인은 제대로 하셨나. 대통령을 꿈꾸시는 분이 벌써 이런 확인도 안 된 '막말'을 공식 석상에서 유포하셔도 되는 건가. 그래서 부러 확인해 봤다. 과연 이회창 전 총재를 도와줬던 연예인들이 누구였는지를.
'"1월 10일 오후 1시 30분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는 한나라당 '한사랑자원봉사단' 발대식이 열렸다. 한사랑자원봉사단은 팬클럽이 주축이 된 이회창 후보지지 조직으로서 젊은 연예인과 스포츠인도 약 25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날 참석한 연예인은 KBS 개그콘서트 팀과 탤런트 박철·김인문·한혜숙, 한나라당 강신성일 의원의 부인 엄앵란씨, 가수 조갑경·홍서범·이자연·이승철·신성우·변진섭·베이비복스 등이다.
스포츠인들로는 심권호·유남규·오경훈 등 금메달리스트들이 참석했다. 유남규씨는 한사랑자원봉사단 홍보위원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이날 분위기는 개그맨 심현섭씨를 중심으로 한 개그콘서트 팀이 주도했다. 참석한 개그콘서트 팀원은 김철호·김대희·강성범·이병진·황승환·이태식·박성호·김숙·김미진 등이다."
▲ 한사랑 봉사단 발대식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11월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직능특위 한사랑 봉사단 발대식에서 단장을 맡은 개그맨 심현섭(오른쪽), 탤런트 박철(왼쪽)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종호
16대 대선의 열기로 한창이던 2002년 11월 19일자 <오마이뉴스> "연예계, 이회창 대세론이 점령? 노무현 지지 연예인은 '소신파'" 기사 중 일부다. 이 중 이회창 후보 측이 젊은 층과의 소통을 위해 적극적으로 내세운 젊은 연예인은 개그맨 심현섭과 배우 박철이었다. 확인 결과, 복수의 매체 역시 "연예인홍보단'과 '한사랑자원봉사단'을 언급하며 천 명이 넘는 연예인들이 이회창 후보를 지지한다고 설명했다. 이 기사를 더 보자.
"당시 적극적 또는 소극적으로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고 있는 연예인 수는 약 1200여명에 이른다. 적어도 양적인 측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다. 한나라당에 몰리는 연예인들은 '연예인홍보단'과 '한사랑자원봉사단'으로 묶여서 관리되고 있다. 지난 6일 중견급 연예인을 중심으로 발족한 연예인홍보단에는 무려 100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날 발대식에는 방송인 이창명씨와 가수 현미·한명숙·김수희·문희옥·김혜영·최석준·박상민, 코메디언 배삼룡·구봉서·황기순, 탤런트 사미자·양택조·임채무·전원주씨 등이 참석했다. 또 너훈아(본명 김갑순)씨 등 이미테이션 가수들도 눈에 띄었고, 영화배우 출신 강신성일· 신영균 의원도 참석해 이들을 격려했다. 연예인홍보단은 탤런트 석현씨가 단장을 맡아 주도하고 있고, 가수 설운도씨와 코미디언 이용식씨 등 30여명이 부단장을 맡고 있다. 석현씨는 97년 대선부터 이 후보를 지지했다."
▲ 이회창 거리 유세개그맨 심현섭씨가 2002년 12월 1일 밤 부산의 한 쇼핑몰 앞에서 열린 거리유세에서 사회를 보며 '이회창'을 연호하고 있다.ⓒ 이종호
이렇게 많은 연예인의 명단을 보고도 "씨를 말려 버렸다"는 말이 나오는가. 앞서 15대 대선에서도 가수 김흥국씨와 탤런트 유동근씨를 비롯해 다수의 연예인이 이회창 후보를 도왔다. 원로배우 강신성일씨는 한나라당 당직자로 재직했고, 배우 이정길씨는 이회창 후보 연예인 자원봉사단장을 역임하며 활발한 유세활동을 펼쳤다. 특히 강신성일씨는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기도 했다. 이들 중 누가 불이익을 당했는가.
아마도 홍 지사가 언급한 "이회창 전 총재 도와주던 연예인들"은 16대 대선 직전까지 이회창 후보를 적극 지지했던 개그맨 심현섭씨나 SBS 라디오를 진행 중이던 배우 박철씨를 염두에 둔 발언일 수 있다. 하지만, 무려 15년 전 각 방송사 차원에서 벌어진 일을 블랙리스트와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군다나 심현섭씨나 박철씨의 출연 논란은 출연정지도 아니었고, 참여정부도 집권기가 아닌 2002년 12월 대선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심현섭씨는 당시 이회창 후보를 지지한 탓에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출연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후에 담당자 간 소통에서 발생한 오해였다는 게 밝혀져 사과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개그콘서트>를 나온 것에 대해서도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 문제였다고 2013년 기자간담회에서 직접 밝히기도 했다.
김기춘, 박근혜와 꼭 닮은 홍준표의 현실 인식
▲ 탄핵 선고 하루 전 만난 인명진-홍준표홍준표 경남도지사가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를 방문해 인명진 비대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두 사람 뒤로 탄핵심판 선고를 하루 앞둔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다.ⓒ 남소연
홍 지사의 이 같은 발언은 블랙리스트 사건의 본질을 흐릴 뿐만 아니라 블랙리스트로 드러난 박근혜 정권의 헌법정신 파괴 행위에 대한 홍 지사의 몰이해를 드러내는 망언일 뿐이다. 홍 지사의 이러한 몰인식은 지난 2월 <주간조선>과 가진 인터뷰에서도 잘 드러난다.
"블랙리스트 한 가지만 얘기하자. 특검과 언론이 블랙리스트를 마치 민주화운동 시절 보안사가 리스트를 만들어 미행한 것과 다름없다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그건 말이 안 된다. 이 정부는 기본적으로 보수 정부다. 보수 정부에 협력하는 사람들한테 정책자금을 배분하겠다는 것을 어떻게 범죄로 몰아갈 수 있나. 노무현 정권 당시의 일을 벌써 잊었나. 그때 연예계에서만 M씨 등 친노 두 사람이 황제처럼 설치면서 이회창 도와주던 연예인들 방송 출연 금지까지 시키지 않았나."
사실 이러한 홍 지사의 인식은 박근혜씨와 김기춘 전 비서실장으로 대변되는 국정농단 세력들의 인식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보수 정부에 협력하는 사람들한테 정책자금을 배분하겠다는 것을 어떻게 범죄로 몰아갈 수 있나"라는 발언은 더없이 문제가 있다.
홍 지사의 발언은 법 절차에 맞게 공정하게 지원돼야 하는 정부 예산을 진보와 보수로 나누어 정부에 협력하는 단체나 개인에게 몰아줘도 무방하다는 뜻으로밖에 볼 수 없다. 홍 지사가 "머리 좋은 사람"이라고 두둔했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극우적 사고나 현실 인식과 하등 다를 게 없는 것이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박영수 특검의 공소장에 적시된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박근혜씨의 과거 발언 몇 가지와 비교해 보면 확연하다.
"2013. 8. 초순경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피고인 김기춘은, 2013. 8. 21.경 비서실장이 주재하고 대통령 수석비서관들이 참여하는 회의(이하 '실수비')에서 1OO 정무수석, DOO 교문수석 등 수석비서관들에게 '종북세력이 문화계를 15년간 장악했다, CJ와 현대백화점 등 재벌들도 줄을 서고 있다, 정권 초기에 사정을 서둘러야 한다, 이것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국정과제이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대통령은 2013. 9. 30.경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피고인 김기춘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에게 '국정지표가 문화융성인데 좌편향 문화예술계에 문제가 많다, 특히 롯데와 CJ 등 투자자가 협조를 하지 않아 문제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피고인 김기춘 비서실장은 2013. 12. 18.경 '실수비'에서 수석비서관들에게 '반국가적·반체제적 단체에 대한 영향력 없는 대책이 문제이다, 한편에는 지원을 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제재를 하고 있다, 문화계 권력을 좌파가 잡고 있다, <변호인>과 <천안함 프로젝트>가 그렇다, 교육계 원로들이 울분을 토하더라, 하나하나 잡아 나가자, 모두 함께 고민하고 분발하라'고 지시하였다."
"피고인 김기춘 비서실장은 이러한 인식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고자, 2013. 12. 20.경 '실수비'에서 수석비서관들에게 공직자는 자유민주주의 헌법가치를 수호해야 한다, 그런데 반정부·반국가적인 성향의 단체들이 좌파들의 온상이 되어서 종북세력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한 성향의 단체들에게 현 정부가 지원하는 실태를 전수조사하고, 그에 대한 조치를 마련하라'고 지시하였다."
안타깝다, 스트롱맨 홍준표
▲'문화·예술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수사를 하고 있는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로 조사를 받기 위해 재소환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지난 15일 열린 2차 공판준비기일에 출석,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혐의에 관해 "진보를 배제하라고 한 것이 아니고 균형을 유지하라고 한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고 한다. 특검의 공소 사실과 확연히 갈라지는 주장이다. 결론적으로, 홍준표 지사의 이번 발언은 이러한 김 전 비서실장의 주장의 다른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안타깝다. 유신 시절부터 박근혜씨를 주군으로 모셔온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그렇다 쳐도, 청렴한 검사 출신으로 정치계에 입문한 홍 지사가 어쩌다 김 전 실장의 이념 노선을 따라가려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이념은 둘째 치고, 법조인 출신이라면 일반 국민보다 현행법은 물론 헌법 정신은 좀 더 깨우치고 있어야 하지 않나. 아무리 '친박'과 '보수'의 표가 아쉽다 한들, 문화예술계 전반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블랙리스트 사건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막말을 늘어놔서야 되겠는가.
우파·보수 정부의 재집권을 자신이 이루겠다 부르짖고 있는 홍준표 지사. 자유한국당 유력 후보로 부각 중인 홍 지사가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 경청해야 할 법문을 찾아 봤다. 다름 아닌, 역사적인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 중 인상적인 두 보충의견 중에서다.
"정치세력간의 이전투구는 이념대립과 지역주의를 부추기고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국가기관의 인적 구성이나 국가정책의 결정이 투명한 절차를 통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사적·당파적 이익에 따라 자의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김이수, 이진성 재판관의 보충의견 중에서)
"일찍이 플라톤은 50대에 저술한 <국가>에서 "통치하는 것이 쟁취의 대상이 되면, 이는 동족간의 내란으로 비화하여 당사자들은 물론 다른 시민들마저 파멸시킨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플라톤의 경고는 우리가 권력구조의 개혁을 논의하는데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안창호 재판관의 보충의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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