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3181628011
적폐청산, 국회만 믿을 순 없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입력 : 2017.03.18 16:28:01
3월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제5회 청소노동자 행진 선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우리 사회 적폐의 상징들을 쓰레기통에 쓸어담고 있다. / 연합뉴스
·시급한 과제들 무엇이 있나, 비정규직 문제와 재벌 개혁 서둘러야
적폐청산. 이는 원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말이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박 전 대통령은 국가안전처 신설을 발표하는 국무회의에서 “과거부터 겹겹이 쌓여온 잘못된 적폐를 바로잡지 못하고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너무 한스럽다”며 적폐 청산을 외쳤다. 이제는 파면된 박 전 대통령과 그 일당들이 적폐 청산의 주된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촛불집회가 일어난 이후 시민들 사이에서는 박근혜 이후 대안을 궁금해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촛불집회 장소와 내용을 준비해 온 퇴진행동(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의 뜻에 따라 지난해 12월 15일 퇴진행동 내에 적폐청산 특별위원회(적폐특위)를 설치했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토론회를 거친 끝에 지난 1월 26일,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30가지로 요약한 개혁과제가 발표됐다. 퇴진행동은 우선 긴급현안으로 6가지를 꼽았다. 세월호 진상규명, 백남기 농민 특검 실시, 사드 배치 중단, 국정교과서 폐기, 노동개악 중단, 언론장악 금지 등이다. 나머지 24개 과제는 재벌개혁, 정치개혁, 불평등 개혁, 공안기구 개혁, 외교·안보 개혁, 위험사회 구조개혁이라는 6가지 범주로 묶여져 발표됐다. 이런 30가지 과제는 퇴진행동에 참여한 1500여개 시민단체가 수차례 머리를 맞댄 끝에 이끌어낸 최대공약수다.
■적폐청산 관련 법안 국회서 표류 중
박 전 대통령이 물러난 이후, 촛불집회도 휴식기를 갖게 됐다. 퇴진행동 활동가들도 촛불집회가 없는 주에는 원래 소속 단체로 돌아가 일을 봤다. 활동가들이 주되게 꼽는 적폐 청산 과제는 노동문제와 재벌개혁이다. 퇴진행동 대변인을 맡고 있는 남정수 민주노총 대변인은 비정규직 문제를 가장 시급한 적폐 청산 과제로 봤다. 남 대변인은 “노동적폐 중에 가장 큰 것이 엄청난 규모의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법이 잘못 만들어졌기 때문에 비정규직이 양산됐다.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는 의무적으로 정규직을 채용하도록 법에 명시해야 한다”며 “자본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노사관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노동 3권을 보장하는 관련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퇴진행동 언론팀에서 활동하는 이주용 사회변혁노동자당 정책국장은 재벌개혁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 삶이 바뀌는 적폐 청산이 돼야 한다”며 “야당으로 정권이 교체된다 하더라도 재벌체제가 유지된다면 노동자들의 일상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아직도 24살 청년노동자가 허리를 다쳐도 산업재해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토요일에 광장 민주주의를 누려도 일상에서 ‘내 삶이 바뀌는구나’를 느끼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적폐 청산이라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퇴진행동에서 일했던 활동가들은 다음 대선이 끝날 때까지 정치권에 개혁법안 통과를 압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미 국회는 1월, 2월 임시국회에서 적폐 청산 관련 법안을 거의 처리하지 않았다. 야당은 보수 2당(자유한국당, 바른정당)의 비협조를 문제삼는다. 1월 국회가 사실상 파행으로 끝난 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4당 간 합의가 없으면 (개혁입법 중에서) 통과시킬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며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개혁법안에 대해 입장을 정하지 않거나 반대 입장을 편다”고 말했다. 하지만 적폐 청산 입법 좌절의 책임을 온전히 보수정당에게만 물을 순 없다. 바른정당도 지지했던 개혁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것들도 있고, 이미 발의된 개혁입법안 중에서 제대로 국회 안에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들도 많다.
경실련(경제정의실천연합)이 2월 1일 제시한 18가지 개혁입법안을 보면 국회가 적폐 청산 입법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경실련의 18가지 개혁입법안은 개혁과제가 아니라 이미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라는 점에서 훨씬 구체성이 있다. 그러나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설치 법안 외 17가지 개혁법안들은 아직도 국회에 계류돼 있다. 세월호법을 제외한 17개 개혁법안의 경우 전 분야에 걸쳐져 있다. 정치·선거제도와 관련해서는 선거연령을 18세로 하향하고,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자는 안 등이 포함돼 있다. 선거연령 하향 법안의 경우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에서 당 지도부 간의 우선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하지 않았다. 결선투표제의 경우 법안 개정이 아니라 개헌이 필요하다는 논란 때문에 국회 안에서는 논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에 관한 법률안은 바른정당 소속의 권성동 법사위원장의 반대로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2월 임시국회 전만 해도 바른정당 내에 선거연령 하향이나 공수처 설치에 긍정적인 의원들이 많았으나 실제 법안 통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2월 22일 서울 종로구 경실련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대선주자들에게 전경련 해체에 관한 공개질의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저임금법 개정안 논의도 지지부진
가장 많은 개혁입법 과제로 제시된 것은 경제민주화와 관련한 법이다. 이미 지난해부터 여러 의원들이 기존에 형성된 재벌대기업의 순환출자 해소, 기업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법인세 인상 등의 내용을 담은 여러 법률안을 발의했다. 경제민주화 관련해서는 야당에서도 보수정당 탓만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징벌적 배상법은 지난해 더불어민주당의 박영선, 금태섭 의원 등이 발의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국회 전문위원도 “악의적인 가해자를 응징한다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이후 논의조차 진행되지 않고 있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기존 순환출자 해소 관련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9월 발의된 이 법안은 4개월 가까이 묵혀 있다가 올해 1월 11일에 겨우 상임위에 상정된 이후 특별한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재벌기업의 시내 면세점 특혜를 개선하는 법안이나 최저임금법 개정안 역시 법안 발의만 되어 있고 논의 진행이 지지부진하다.
경실련의 김삼수 정치사법팀장은 “국회도 국정농단 사태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국회에서 늘 변화를 외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하는데 개혁입법 처리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국회가 대선체제로 전환은 되었지만 지금 시스템에서도 충분히 적폐 청산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데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국회의원 스스로가 이해관계에 매몰되기보다는 국민을 생각하는 관점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적폐 청산 노력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이미 시민사회에서 요구해온 적폐 청산과 비슷한 과제를 야당에서도 각각 제기한 바 있다. 이미 올해 1월 더불어민주당은 ‘4대 개혁 및 민생 개혁을 위한 21가지 중점 추진법안’을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제시한 4대 개혁은 정치개혁, 재벌개혁, 검찰개혁, 언론개혁이다. 여기에 민생개혁까지 5가지 개혁과제 안에 다양한 개혁법안이 올라와 있다.
비슷한 시기 국민의당에서도 ‘5대 분야 11개 개혁과제’를 제시했다. 국민의당이 생각한 5대 분야는 재벌개혁, 검찰개혁, 언론개혁, 정치개혁, 사회개혁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두 당이 생각한 적폐 청산의 틀은 비슷했다. 퇴진행동이나 경실련이 제시한 적폐 청산 과제와도 흐름을 같이하는 내용이다.
정의당은 아예 당내에 적폐청산 특별위원회(위원장 추혜선)를 꾸렸다. 1월 6일 발표된 정의당 적폐특위의 7가지 과제는 퇴진행동의 ‘6가지 시급한 과제’와 거의 비슷하다. 다만 최우선 과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부정축재한 재산을 환수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겠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이다. 정의당 한창민 대변인은 “저희는 바른정당까지 4개 야당이 적폐 청산 개혁입법을 늦어도 2월 임시국회에는 통과시켜야 한다고 요구를 했다. 보수정당에서 반대하는 것도 있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미온적인 태도 때문에 추진을 제대로 하지 못해 답답하다”며 “대선이 눈앞에 있다고 적폐 청산 입법을 늦출 게 아니라 지금이 골든타임이라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국회가 촛불민심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적폐청산, 국회만 믿을 순 없다
■정치권 재벌개혁 의지 있기는 한가
한편, 시민사회에서 주장한 ‘적폐 청산’과는 거리가 있지만 바른정당에서도 몇 가지 개혁과제를 제시한 바 있다. 바른정당은 창당 초기부터 국회의원 소환제, 육아휴직 3년, 취업 시 학력차별 금지, 알바보호법 등 4개 법안을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야권과 시민사회가 말하는 보수정권 9년의 적폐와는 다른 느낌의 개혁안이다. 대신 바른정당은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해 “청산해야 할 적폐는 패권주의인데 몸소 편가르기를 하면서 패권적 정치를 한다”고 공격하거나, 개헌을 가장 큰 적폐 청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시민사회가 적폐 청산을 외치는 것과 별개로 대선주자들은 적폐 청산, 국민통합, 개헌 논의로 복잡하다. 여러 언론은 대체로 민주당의 문재인·이재명 후보를 적폐 청산을 중시하는 쪽으로, 민주당 안희정·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국민 통합을 중시하는 편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 안희정 후보나 국민의당 손학규 후보는 개헌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국민의당·바른정당·자유한국당 지도부는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에 합의하기도 했다.
시민사회 활동가들은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적폐 청산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삼수 팀장은 “이런 상황에서 대선을 치른다고 해서 적폐가 저절로 해소된다는 보장은 없다. 지금도 개혁입법을 외면하고 처리하지 않고 있는데 또다시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팽배해질 것이고, 이런 불만은 다음번 선거에서 표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용 정책국장은 현재 정치권의 모습으로 봤을 때 재벌개혁에 대한 의지 자체가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최근 민주당의 양향자 최고위원이 삼성 백혈병 유가족들을 ‘귀족노조’라고 한 데 이어 삼성에서 직업병 문제 은폐를 위해 만든 보상위원회에 참여한 김호기 연세대 교수가 문재인 캠프에 들어갔다. 우연한 사건이 잇따라 난 것이 아니라 재벌, 노동문제를 바라보고 있는 민주당의 시각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정치권에서 재벌개혁을 거론하면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만 언급하고 있지만, 현대차 정몽구 회장 등 다른 재벌기업도 미르·K스포츠 재단에 많은 돈을 냈다. 현대차는 KD코퍼레이션 특혜와 관련해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과 문자도 주고받았다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적폐청산, 국회만 믿을 순 없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입력 : 2017.03.18 16:28:01
3월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제5회 청소노동자 행진 선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우리 사회 적폐의 상징들을 쓰레기통에 쓸어담고 있다. / 연합뉴스
·시급한 과제들 무엇이 있나, 비정규직 문제와 재벌 개혁 서둘러야
적폐청산. 이는 원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말이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박 전 대통령은 국가안전처 신설을 발표하는 국무회의에서 “과거부터 겹겹이 쌓여온 잘못된 적폐를 바로잡지 못하고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너무 한스럽다”며 적폐 청산을 외쳤다. 이제는 파면된 박 전 대통령과 그 일당들이 적폐 청산의 주된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촛불집회가 일어난 이후 시민들 사이에서는 박근혜 이후 대안을 궁금해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촛불집회 장소와 내용을 준비해 온 퇴진행동(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의 뜻에 따라 지난해 12월 15일 퇴진행동 내에 적폐청산 특별위원회(적폐특위)를 설치했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토론회를 거친 끝에 지난 1월 26일,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30가지로 요약한 개혁과제가 발표됐다. 퇴진행동은 우선 긴급현안으로 6가지를 꼽았다. 세월호 진상규명, 백남기 농민 특검 실시, 사드 배치 중단, 국정교과서 폐기, 노동개악 중단, 언론장악 금지 등이다. 나머지 24개 과제는 재벌개혁, 정치개혁, 불평등 개혁, 공안기구 개혁, 외교·안보 개혁, 위험사회 구조개혁이라는 6가지 범주로 묶여져 발표됐다. 이런 30가지 과제는 퇴진행동에 참여한 1500여개 시민단체가 수차례 머리를 맞댄 끝에 이끌어낸 최대공약수다.
■적폐청산 관련 법안 국회서 표류 중
박 전 대통령이 물러난 이후, 촛불집회도 휴식기를 갖게 됐다. 퇴진행동 활동가들도 촛불집회가 없는 주에는 원래 소속 단체로 돌아가 일을 봤다. 활동가들이 주되게 꼽는 적폐 청산 과제는 노동문제와 재벌개혁이다. 퇴진행동 대변인을 맡고 있는 남정수 민주노총 대변인은 비정규직 문제를 가장 시급한 적폐 청산 과제로 봤다. 남 대변인은 “노동적폐 중에 가장 큰 것이 엄청난 규모의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법이 잘못 만들어졌기 때문에 비정규직이 양산됐다.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는 의무적으로 정규직을 채용하도록 법에 명시해야 한다”며 “자본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노사관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노동 3권을 보장하는 관련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퇴진행동 언론팀에서 활동하는 이주용 사회변혁노동자당 정책국장은 재벌개혁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 삶이 바뀌는 적폐 청산이 돼야 한다”며 “야당으로 정권이 교체된다 하더라도 재벌체제가 유지된다면 노동자들의 일상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아직도 24살 청년노동자가 허리를 다쳐도 산업재해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토요일에 광장 민주주의를 누려도 일상에서 ‘내 삶이 바뀌는구나’를 느끼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적폐 청산이라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퇴진행동에서 일했던 활동가들은 다음 대선이 끝날 때까지 정치권에 개혁법안 통과를 압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미 국회는 1월, 2월 임시국회에서 적폐 청산 관련 법안을 거의 처리하지 않았다. 야당은 보수 2당(자유한국당, 바른정당)의 비협조를 문제삼는다. 1월 국회가 사실상 파행으로 끝난 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4당 간 합의가 없으면 (개혁입법 중에서) 통과시킬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며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개혁법안에 대해 입장을 정하지 않거나 반대 입장을 편다”고 말했다. 하지만 적폐 청산 입법 좌절의 책임을 온전히 보수정당에게만 물을 순 없다. 바른정당도 지지했던 개혁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것들도 있고, 이미 발의된 개혁입법안 중에서 제대로 국회 안에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들도 많다.
경실련(경제정의실천연합)이 2월 1일 제시한 18가지 개혁입법안을 보면 국회가 적폐 청산 입법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경실련의 18가지 개혁입법안은 개혁과제가 아니라 이미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라는 점에서 훨씬 구체성이 있다. 그러나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설치 법안 외 17가지 개혁법안들은 아직도 국회에 계류돼 있다. 세월호법을 제외한 17개 개혁법안의 경우 전 분야에 걸쳐져 있다. 정치·선거제도와 관련해서는 선거연령을 18세로 하향하고,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자는 안 등이 포함돼 있다. 선거연령 하향 법안의 경우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에서 당 지도부 간의 우선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하지 않았다. 결선투표제의 경우 법안 개정이 아니라 개헌이 필요하다는 논란 때문에 국회 안에서는 논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에 관한 법률안은 바른정당 소속의 권성동 법사위원장의 반대로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2월 임시국회 전만 해도 바른정당 내에 선거연령 하향이나 공수처 설치에 긍정적인 의원들이 많았으나 실제 법안 통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2월 22일 서울 종로구 경실련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대선주자들에게 전경련 해체에 관한 공개질의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저임금법 개정안 논의도 지지부진
가장 많은 개혁입법 과제로 제시된 것은 경제민주화와 관련한 법이다. 이미 지난해부터 여러 의원들이 기존에 형성된 재벌대기업의 순환출자 해소, 기업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법인세 인상 등의 내용을 담은 여러 법률안을 발의했다. 경제민주화 관련해서는 야당에서도 보수정당 탓만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징벌적 배상법은 지난해 더불어민주당의 박영선, 금태섭 의원 등이 발의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국회 전문위원도 “악의적인 가해자를 응징한다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이후 논의조차 진행되지 않고 있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기존 순환출자 해소 관련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9월 발의된 이 법안은 4개월 가까이 묵혀 있다가 올해 1월 11일에 겨우 상임위에 상정된 이후 특별한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재벌기업의 시내 면세점 특혜를 개선하는 법안이나 최저임금법 개정안 역시 법안 발의만 되어 있고 논의 진행이 지지부진하다.
경실련의 김삼수 정치사법팀장은 “국회도 국정농단 사태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국회에서 늘 변화를 외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하는데 개혁입법 처리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국회가 대선체제로 전환은 되었지만 지금 시스템에서도 충분히 적폐 청산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데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국회의원 스스로가 이해관계에 매몰되기보다는 국민을 생각하는 관점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적폐 청산 노력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이미 시민사회에서 요구해온 적폐 청산과 비슷한 과제를 야당에서도 각각 제기한 바 있다. 이미 올해 1월 더불어민주당은 ‘4대 개혁 및 민생 개혁을 위한 21가지 중점 추진법안’을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제시한 4대 개혁은 정치개혁, 재벌개혁, 검찰개혁, 언론개혁이다. 여기에 민생개혁까지 5가지 개혁과제 안에 다양한 개혁법안이 올라와 있다.
비슷한 시기 국민의당에서도 ‘5대 분야 11개 개혁과제’를 제시했다. 국민의당이 생각한 5대 분야는 재벌개혁, 검찰개혁, 언론개혁, 정치개혁, 사회개혁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두 당이 생각한 적폐 청산의 틀은 비슷했다. 퇴진행동이나 경실련이 제시한 적폐 청산 과제와도 흐름을 같이하는 내용이다.
정의당은 아예 당내에 적폐청산 특별위원회(위원장 추혜선)를 꾸렸다. 1월 6일 발표된 정의당 적폐특위의 7가지 과제는 퇴진행동의 ‘6가지 시급한 과제’와 거의 비슷하다. 다만 최우선 과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부정축재한 재산을 환수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겠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이다. 정의당 한창민 대변인은 “저희는 바른정당까지 4개 야당이 적폐 청산 개혁입법을 늦어도 2월 임시국회에는 통과시켜야 한다고 요구를 했다. 보수정당에서 반대하는 것도 있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미온적인 태도 때문에 추진을 제대로 하지 못해 답답하다”며 “대선이 눈앞에 있다고 적폐 청산 입법을 늦출 게 아니라 지금이 골든타임이라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국회가 촛불민심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적폐청산, 국회만 믿을 순 없다
■정치권 재벌개혁 의지 있기는 한가
한편, 시민사회에서 주장한 ‘적폐 청산’과는 거리가 있지만 바른정당에서도 몇 가지 개혁과제를 제시한 바 있다. 바른정당은 창당 초기부터 국회의원 소환제, 육아휴직 3년, 취업 시 학력차별 금지, 알바보호법 등 4개 법안을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야권과 시민사회가 말하는 보수정권 9년의 적폐와는 다른 느낌의 개혁안이다. 대신 바른정당은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해 “청산해야 할 적폐는 패권주의인데 몸소 편가르기를 하면서 패권적 정치를 한다”고 공격하거나, 개헌을 가장 큰 적폐 청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시민사회가 적폐 청산을 외치는 것과 별개로 대선주자들은 적폐 청산, 국민통합, 개헌 논의로 복잡하다. 여러 언론은 대체로 민주당의 문재인·이재명 후보를 적폐 청산을 중시하는 쪽으로, 민주당 안희정·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국민 통합을 중시하는 편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 안희정 후보나 국민의당 손학규 후보는 개헌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국민의당·바른정당·자유한국당 지도부는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에 합의하기도 했다.
시민사회 활동가들은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적폐 청산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삼수 팀장은 “이런 상황에서 대선을 치른다고 해서 적폐가 저절로 해소된다는 보장은 없다. 지금도 개혁입법을 외면하고 처리하지 않고 있는데 또다시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팽배해질 것이고, 이런 불만은 다음번 선거에서 표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용 정책국장은 현재 정치권의 모습으로 봤을 때 재벌개혁에 대한 의지 자체가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최근 민주당의 양향자 최고위원이 삼성 백혈병 유가족들을 ‘귀족노조’라고 한 데 이어 삼성에서 직업병 문제 은폐를 위해 만든 보상위원회에 참여한 김호기 연세대 교수가 문재인 캠프에 들어갔다. 우연한 사건이 잇따라 난 것이 아니라 재벌, 노동문제를 바라보고 있는 민주당의 시각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정치권에서 재벌개혁을 거론하면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만 언급하고 있지만, 현대차 정몽구 회장 등 다른 재벌기업도 미르·K스포츠 재단에 많은 돈을 냈다. 현대차는 KD코퍼레이션 특혜와 관련해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과 문자도 주고받았다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시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린이보호구역인데" 시위대에 나체소동까지..삼성동 주민들 화났다 - 이데일리 (0) | 2017.03.21 |
---|---|
'독재는 짧고 예술은 영원하다' 예술로 박근혜에 항거한 광화문캠핑촌 해단식 -경향 (0) | 2017.03.21 |
60대 이상 절반가량 '탄핵 반대'.."삶과 朴 정권 동일시" - SBS (0) | 2017.03.21 |
SNS 울린 '한 달에 4번 재판받는 대학생'.. 박원순도 응답했다 - 국민 (0) | 2017.03.21 |
3월21일(화) 오전8시반 서초 검찰청 앞 박근혜 구속 집회 (0) | 2017.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