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_w.aspx?CNTN_CD=A0002326684
4분짜리 박근혜 기념사가 4년 만에 13분 '감동 기념사'로
[현장] 문재인 정부 준비 돋보인 37주년 5.18 기념식, 유족 "이제 좀 마음이 놓여"
17.05.18 16:02 l 최종 업데이트 17.05.18 16:02 l 글: 소중한(extremes88) 이주빈(clubnip) 사진: 남소연(newmoon) 편집: 장지혜(jjh9407)
▲ 박수받은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마친 후 자리로 향하고 있다. ⓒ 남소연
'81세의 아버지'는 굽은 허리에 양손을 포갠 채 묘역을 빠져나가던 참이었다. 37년 전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잃은 이귀복씨였다.
"국민학교(초등학교 전신) 1학년짜린디, (사망원인이) 에무십육(M16) 총상이라고 나옵디다. 이창현이, 내 아들 이창현이…. 내가 아들놈 찾을라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전국 안 가본 데가 없소. 저 욱에(위에) 파주 용미리 묘지까지 갔다 왔제. 글다가 5.18 끝나고 한참 뒤에, 여그 망월동에서 겨우 찾았소."
아버지는 기자를 만나기 적전에 끝난 5.18민주화운동(아래 5.18) 기념식을 떠올리며 "대통령까지 와블고, 와서도 참 좋은 말만 합디다"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인자 좀 설움이 풀릴라 하요. 지난 9년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내가 여기 매달려갖고 살았는디, 인자 좀 마음을 놔야 쓰겄소."
▲ 땅바닥이면 어때요 18일 오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광주 시민들이 땅바닥도 마다않고 의자 앞 자리에 앉아 있다. 이날 기념식은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했으나 신분증을 제시하면 일반 시민들도 모두 기념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 ⓒ 남소연
항의 쏟아졌던 지난해 기념식, 올해는 1시간 알차게 구성
9년 동안 추락한 위상을 되돌리려는 듯,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취임 9일 만에 맞은 5.18 기념식에 온 힘을 쏟은 모양새였다.
문 대통령의 강렬한 기념사에 참석자들은 박수로 화답했고, 대통령을 비롯한 모두가 손을 잡은 채 '임을위한행진곡'을 목청껏 불렀다. 문 대통령은 의전에 구애받지 않고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겼고, 눈물을 참지 못하던 유족을 껴안았다. 유족은 대통령 품에 안겨 맘껏 울었고, 객석에 있던 참석자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18일 오전 10시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진행된 제 37주년 5.18 기념식은 약 1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지난해 20여 분 만에 끝난 초라했던 기념식과는 완전히 달랐다.
지난해 기념식이 끝난 직후에는 "이게 무슨 기념식이야!", "박근혜는 어딨냐!" 등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반면 이날 참석자들은 묘역 참배를 위해 이동하는 문 대통령을 향해 박수를 보냈고, 휴대폰을 꺼내 대통령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도 했다. 일부에선 "대통령 잘 뽑았다!",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등의 환호성도 나왔다.
▲ 5.18 국립묘지 둘러보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후 희생자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새로 임명된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왼쪽에 보인다. ⓒ 남소연
5.18 당시 남편을 잃은 유정님(80)씨는 기념식 직후 <오마이뉴스>와 만나 "나 펑펑 울어브렀소"라며 안경에 맺힌 눈물을 닦아 냈다.
"맘이란 게 항상 그렇제라. 이자(잊어)브렀다가도 5월 돌아오면, 그때 당시 거시기 한 것이 생생허니 떠올르고…. 근디 오늘 같은 기념식을 본께 맘이 다 편안허요. 말 그대로 대통령이 새로 나온께, 진짜로 역사가 바뀔란가?"
문 대통령의 기념사도 극찬을 받았다. 그는 총 13분 동안 기념사를 낭독했고, 참석자들은 총 25번의 박수를 보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첫 해인 2015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5.18 기념식에 참석해 4분짜리 기념사를 읽었다. 문 대통령은 그보다 세 배 이상의 시간을 기념사 낭독을 위해 쓴 것이다.
박관현·표정두·조성만·박래전, 그리고 세월호와 촛불혁명
▲ 5.18 기념사 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남소연
특히 문 대통령이 자신의 공약이었던 '5.18 정신의 헌법전문 수록'을 재차 약속할 때, 객석에선 가장 큰 박수가 쏟아졌다. 그는 이날 방명록에 "가슴에 새겨온 역사, 헌법에 새겨 계승하겠습니다"라고 적기도 했다.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담겠다는 저의 공약도 지키겠습니다. 광주정신을 헌법으로 계승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 시대를 열겠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은 비로소 온 국민이 기억하고 배우는 자랑스러운 역사로 자리매김 될 것입니다.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아 개헌을 완료할 수 있도록 이 자리를 빌어서 국회의 협력과 국민여러분의 동의를 정중히 요청 드립니다."
5.18 당시 총상으로 척추를 다친 이세영씨는 "5.18 문제 해결의 5대 원칙 가운데 첫 번째가 정신계승이고, 그것에서 가장 중요한 게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넣는 것이다"라며 "가히 감동적이었다. 오늘 기념사에서 평생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다 들었다"라고 강조했다. 이씨는 이날 문 대통령의 기념사에 매우 감격한 듯,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을 이어갔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저렇게 기분 좋은 과격한 발언을 한 대통령은 없었다. 심지어 김영삼, 김대중, 심지어 노무현 전 대통령도 문 대통령만큼 이렇게 기분 좋은 과격한 발언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 문재인 대통령 기념사에 '쫑긋'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는 동안 시민들이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 남소연
문 대통령의 기념사에는 1980년 5월 18일 뿐만 아니라, 이후 5.18 진상규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이름도 꼼꼼히 담겼다(관련기사 : 5.18 열사 이름 외친 문 대통령... "큰 감동, 위로받았다").
"1982년 광주교도소에서 광주진상규명을 위해 40일 간의 단식으로 옥사한 스물아홉 살, 전남대생 박관현. 1987년 '광주사태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노동자 표정두. 1988년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외치며 명동성당 교육관 4층에서 투신 사망한 스물네 살, 서울대생 조성만. 1988년 '광주는 살아있다' 외치며 숭실대 학생회관 옥상에서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숭실대생 박래전. (중략) 저는 오월의 영령들과 함께 이들의 희생과 헌신을 헛되이 하지 않고 더 이상 서러운 죽음과 고난이 없는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기념식 직후 만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박관현, 표정두, 조성만, 박래전의 이름을 거론할 때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라며 울먹였다. 김덕진 천주교 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은 페이스북에 "이런 적이 있었나. 이게 뭐라고 또 목이 메이나. 왜 겨우 이런 일이 눈물이 나나. 우리는 그 동안 어떤 세상을 살았길래 이렇게 울어야 하나"라고 적었다.
▲ 오월어머니 품에 안긴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자, 오월어머니가 문 대통령을 껴안고 있다. ⓒ 남소연
문 대통령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지난 겨울의 촛불혁명도 빼놓지 않고 거론했다.
"2년 전, 진도 팽목항에 5.18의 엄마가 4.16의 엄마에게 보낸 펼침막이 있었습니다.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짓밟은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국가를 통렬히 꾸짖는 외침이었습니다. 다시는 그런 원통함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사람의 존엄함을 하늘처럼 존중하겠습니다. 저는 그것이 국가의 존재가치라고 믿습니다."
"오월 광주의 시민들이 나눈 '주먹밥과 헌혈'이야말로 우리의 자존의 역사입니다. 민주주의의 참 모습입니다. 목숨이 오가는 극한 상황에서도 절제력을 잃지 않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광주정신은 그대로 촛불광장에서 부활했습니다. 촛불은 5.18민주화운동의 정신 위에서 국민주권시대를 열었습니다. 국민이 대한민국의 주인임을 선언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뜻을 받드는 정부가 될 것임을 광주 영령들 앞에 천명합니다."
2015년부터 5.18 기념식을 찾은 세월호 유족 김연실(고 정차웅군 어머니)씨는 "전과는 많이 다르더라. 대통령 한 명 바뀌었을 뿐인데 너무 많은 게 바뀌어 굳었던 마음이 많이 풀리는 것 같다"라며 "특히 문 대통령이 5.18 기념사를 통해 직접 우리의 이야기를 꺼내줘서 '지난 3년의 시간이 헛되진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1만여 명 함께 부른 임을위한행진곡
▲ 눈물 훔치는 문재인 대통령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5.18 당시 생후 3일 만에 아버지를 잃은 김소형씨의 사연을 들으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 오월 가족 위로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5·18 당시 희생된 김재평씨의 딸 김소형씨에게 다가가 위로하고 있다. ⓒ 남소연
이날 문 대통령은 여러 차례 의자를 떠나며 의전에 구애받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 2013년 5.18 기념식에서 당시 강운태 광주시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불쑥 태극기를 건네 논란이 된 적이 있을 만큼, 대통령의 움직임은 하나하나 경호실 계획에 맞춰져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헌화 및 분향, 기념사 낭독, 폐식 후 묘역 참배 등 총 세 차례 자리를 떠나도록 예정돼 있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경과보고를 마치고 내려온 김후식 5.18부상자회장을 향해 걸어 나가 인사를 청했다.
특히 기념공연에 참여한 유족 김소형(1980년 5월 18일에 태어나 사흘 만에 아버지 사망)씨가 퇴장하며 눈물을 멈추지 못하자, 문 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김씨를 향해 걸어 나갔다. 이어 문 대통령은 눈물을 흘리는 김씨를 껴안으며 위로했다(관련기사 : 5.18 유족 '사부곡'에 문 대통령도 울었다).
▲ 그냥 지나칠 수 있나요, 발걸음 돌린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후 희생자 묘역을 둘러본 뒤 나오다, 기다리던 시민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 남소연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의전에 구애받지 않은 모습에) 나도 놀랐다. 솔직히 조마조마했다"라며 문 대통령과 경호실 사이의 뒷이야기를 전했다.
"문 대통령이 오늘 점심을 광주에서 5월단체 관계자들과 먹었다. 그 자리에서 문 대통령이 주영훈 경호실장에게 미안했는지 '실장님, 오늘 경호하느라 많이 힘들었나. 그래도 시민 분들은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라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주 실장은 '대통령과 국민들이 염려하지 않도록 안전 경호를 충분히 하고 있다. 오늘도 그렇게 했다'라고 답했다."
▲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에 입 다문 정우택 문재인 대통령(왼쪽 다섯째), 정세균 국회의장,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 등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한편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권한대행(오른쪽 둘째)은 입을 다물고 있다. 행사를 마친 뒤 정 대표는 ‘5·18 민주 영령에 대한 추념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사항’이라며 노래를 부르지 않은 이유를 밝혔다.ⓒ 공동취재사진
이날 기념식은 임을위한행진곡 제창으로 마무리됐다. 가수 전인권씨가 상록수를 부르고 난 뒤, 참석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 목소리로 임을위한행진곡을 불렀다. 특히 이날 기념식이 시민 개방형으로 열린 덕분에, 현장을 찾은 1만 여 명의 목소리가 묘역을 메울 수 있었다. 국가보훈처는 신분 확인만 되면 누구나 이날 기념식에 참석하도록 조치했다.
5.18 당시 구속됐던 강아무개(53)씨는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우리에게 5.18을 기억하지 말라며 온갖 수모를 주고 탄압했다"라며 "하지만 문 대통령은 취임하자 전격적으로 임을위한행진곡 제창을 지시했다. 특히 오늘 기념식을 시민 모두가 참여할 수 있게 해 의미가 깊었다. 감동적인 날이다"라고 말했다.
▲ 교복 입은 학생들도... 18일 오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생애 처음 5.18 기념식을 찾았다는 강진고등학교 3학년 박홍은·이연경·위보배·이수연양은 "아직도 포털사이트에서 5.18을 쳐보면 폭동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걸 보면서 무척 안타까웠다"라며 "이번에 대통령이 바뀌었으니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된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해줬으면 한다"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세월호든 5.18이든 모두 다 진실을 낱낱이 밝혀졌으면 한다"라며 "그래서 이제 좀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안 싸웠으면 좋겠다. 또 잘못한 사람들이 모두 죗값을 치렀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
4분짜리 박근혜 기념사가 4년 만에 13분 '감동 기념사'로
[현장] 문재인 정부 준비 돋보인 37주년 5.18 기념식, 유족 "이제 좀 마음이 놓여"
17.05.18 16:02 l 최종 업데이트 17.05.18 16:02 l 글: 소중한(extremes88) 이주빈(clubnip) 사진: 남소연(newmoon) 편집: 장지혜(jjh9407)
▲ 박수받은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마친 후 자리로 향하고 있다. ⓒ 남소연
'81세의 아버지'는 굽은 허리에 양손을 포갠 채 묘역을 빠져나가던 참이었다. 37년 전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잃은 이귀복씨였다.
"국민학교(초등학교 전신) 1학년짜린디, (사망원인이) 에무십육(M16) 총상이라고 나옵디다. 이창현이, 내 아들 이창현이…. 내가 아들놈 찾을라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전국 안 가본 데가 없소. 저 욱에(위에) 파주 용미리 묘지까지 갔다 왔제. 글다가 5.18 끝나고 한참 뒤에, 여그 망월동에서 겨우 찾았소."
아버지는 기자를 만나기 적전에 끝난 5.18민주화운동(아래 5.18) 기념식을 떠올리며 "대통령까지 와블고, 와서도 참 좋은 말만 합디다"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인자 좀 설움이 풀릴라 하요. 지난 9년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내가 여기 매달려갖고 살았는디, 인자 좀 마음을 놔야 쓰겄소."
▲ 땅바닥이면 어때요 18일 오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광주 시민들이 땅바닥도 마다않고 의자 앞 자리에 앉아 있다. 이날 기념식은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했으나 신분증을 제시하면 일반 시민들도 모두 기념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 ⓒ 남소연
항의 쏟아졌던 지난해 기념식, 올해는 1시간 알차게 구성
9년 동안 추락한 위상을 되돌리려는 듯,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취임 9일 만에 맞은 5.18 기념식에 온 힘을 쏟은 모양새였다.
문 대통령의 강렬한 기념사에 참석자들은 박수로 화답했고, 대통령을 비롯한 모두가 손을 잡은 채 '임을위한행진곡'을 목청껏 불렀다. 문 대통령은 의전에 구애받지 않고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겼고, 눈물을 참지 못하던 유족을 껴안았다. 유족은 대통령 품에 안겨 맘껏 울었고, 객석에 있던 참석자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18일 오전 10시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진행된 제 37주년 5.18 기념식은 약 1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지난해 20여 분 만에 끝난 초라했던 기념식과는 완전히 달랐다.
지난해 기념식이 끝난 직후에는 "이게 무슨 기념식이야!", "박근혜는 어딨냐!" 등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반면 이날 참석자들은 묘역 참배를 위해 이동하는 문 대통령을 향해 박수를 보냈고, 휴대폰을 꺼내 대통령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도 했다. 일부에선 "대통령 잘 뽑았다!",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등의 환호성도 나왔다.
▲ 5.18 국립묘지 둘러보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후 희생자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새로 임명된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왼쪽에 보인다. ⓒ 남소연
5.18 당시 남편을 잃은 유정님(80)씨는 기념식 직후 <오마이뉴스>와 만나 "나 펑펑 울어브렀소"라며 안경에 맺힌 눈물을 닦아 냈다.
"맘이란 게 항상 그렇제라. 이자(잊어)브렀다가도 5월 돌아오면, 그때 당시 거시기 한 것이 생생허니 떠올르고…. 근디 오늘 같은 기념식을 본께 맘이 다 편안허요. 말 그대로 대통령이 새로 나온께, 진짜로 역사가 바뀔란가?"
문 대통령의 기념사도 극찬을 받았다. 그는 총 13분 동안 기념사를 낭독했고, 참석자들은 총 25번의 박수를 보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첫 해인 2015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5.18 기념식에 참석해 4분짜리 기념사를 읽었다. 문 대통령은 그보다 세 배 이상의 시간을 기념사 낭독을 위해 쓴 것이다.
박관현·표정두·조성만·박래전, 그리고 세월호와 촛불혁명
▲ 5.18 기념사 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남소연
특히 문 대통령이 자신의 공약이었던 '5.18 정신의 헌법전문 수록'을 재차 약속할 때, 객석에선 가장 큰 박수가 쏟아졌다. 그는 이날 방명록에 "가슴에 새겨온 역사, 헌법에 새겨 계승하겠습니다"라고 적기도 했다.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담겠다는 저의 공약도 지키겠습니다. 광주정신을 헌법으로 계승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 시대를 열겠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은 비로소 온 국민이 기억하고 배우는 자랑스러운 역사로 자리매김 될 것입니다.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아 개헌을 완료할 수 있도록 이 자리를 빌어서 국회의 협력과 국민여러분의 동의를 정중히 요청 드립니다."
5.18 당시 총상으로 척추를 다친 이세영씨는 "5.18 문제 해결의 5대 원칙 가운데 첫 번째가 정신계승이고, 그것에서 가장 중요한 게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넣는 것이다"라며 "가히 감동적이었다. 오늘 기념사에서 평생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다 들었다"라고 강조했다. 이씨는 이날 문 대통령의 기념사에 매우 감격한 듯,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을 이어갔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저렇게 기분 좋은 과격한 발언을 한 대통령은 없었다. 심지어 김영삼, 김대중, 심지어 노무현 전 대통령도 문 대통령만큼 이렇게 기분 좋은 과격한 발언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 문재인 대통령 기념사에 '쫑긋'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는 동안 시민들이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 남소연
문 대통령의 기념사에는 1980년 5월 18일 뿐만 아니라, 이후 5.18 진상규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이름도 꼼꼼히 담겼다(관련기사 : 5.18 열사 이름 외친 문 대통령... "큰 감동, 위로받았다").
"1982년 광주교도소에서 광주진상규명을 위해 40일 간의 단식으로 옥사한 스물아홉 살, 전남대생 박관현. 1987년 '광주사태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노동자 표정두. 1988년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외치며 명동성당 교육관 4층에서 투신 사망한 스물네 살, 서울대생 조성만. 1988년 '광주는 살아있다' 외치며 숭실대 학생회관 옥상에서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숭실대생 박래전. (중략) 저는 오월의 영령들과 함께 이들의 희생과 헌신을 헛되이 하지 않고 더 이상 서러운 죽음과 고난이 없는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기념식 직후 만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박관현, 표정두, 조성만, 박래전의 이름을 거론할 때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라며 울먹였다. 김덕진 천주교 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은 페이스북에 "이런 적이 있었나. 이게 뭐라고 또 목이 메이나. 왜 겨우 이런 일이 눈물이 나나. 우리는 그 동안 어떤 세상을 살았길래 이렇게 울어야 하나"라고 적었다.
▲ 오월어머니 품에 안긴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자, 오월어머니가 문 대통령을 껴안고 있다. ⓒ 남소연
문 대통령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지난 겨울의 촛불혁명도 빼놓지 않고 거론했다.
"2년 전, 진도 팽목항에 5.18의 엄마가 4.16의 엄마에게 보낸 펼침막이 있었습니다.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짓밟은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국가를 통렬히 꾸짖는 외침이었습니다. 다시는 그런 원통함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사람의 존엄함을 하늘처럼 존중하겠습니다. 저는 그것이 국가의 존재가치라고 믿습니다."
"오월 광주의 시민들이 나눈 '주먹밥과 헌혈'이야말로 우리의 자존의 역사입니다. 민주주의의 참 모습입니다. 목숨이 오가는 극한 상황에서도 절제력을 잃지 않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광주정신은 그대로 촛불광장에서 부활했습니다. 촛불은 5.18민주화운동의 정신 위에서 국민주권시대를 열었습니다. 국민이 대한민국의 주인임을 선언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뜻을 받드는 정부가 될 것임을 광주 영령들 앞에 천명합니다."
2015년부터 5.18 기념식을 찾은 세월호 유족 김연실(고 정차웅군 어머니)씨는 "전과는 많이 다르더라. 대통령 한 명 바뀌었을 뿐인데 너무 많은 게 바뀌어 굳었던 마음이 많이 풀리는 것 같다"라며 "특히 문 대통령이 5.18 기념사를 통해 직접 우리의 이야기를 꺼내줘서 '지난 3년의 시간이 헛되진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1만여 명 함께 부른 임을위한행진곡
▲ 눈물 훔치는 문재인 대통령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5.18 당시 생후 3일 만에 아버지를 잃은 김소형씨의 사연을 들으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 오월 가족 위로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5·18 당시 희생된 김재평씨의 딸 김소형씨에게 다가가 위로하고 있다. ⓒ 남소연
이날 문 대통령은 여러 차례 의자를 떠나며 의전에 구애받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 2013년 5.18 기념식에서 당시 강운태 광주시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불쑥 태극기를 건네 논란이 된 적이 있을 만큼, 대통령의 움직임은 하나하나 경호실 계획에 맞춰져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헌화 및 분향, 기념사 낭독, 폐식 후 묘역 참배 등 총 세 차례 자리를 떠나도록 예정돼 있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경과보고를 마치고 내려온 김후식 5.18부상자회장을 향해 걸어 나가 인사를 청했다.
특히 기념공연에 참여한 유족 김소형(1980년 5월 18일에 태어나 사흘 만에 아버지 사망)씨가 퇴장하며 눈물을 멈추지 못하자, 문 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김씨를 향해 걸어 나갔다. 이어 문 대통령은 눈물을 흘리는 김씨를 껴안으며 위로했다(관련기사 : 5.18 유족 '사부곡'에 문 대통령도 울었다).
▲ 그냥 지나칠 수 있나요, 발걸음 돌린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후 희생자 묘역을 둘러본 뒤 나오다, 기다리던 시민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 남소연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의전에 구애받지 않은 모습에) 나도 놀랐다. 솔직히 조마조마했다"라며 문 대통령과 경호실 사이의 뒷이야기를 전했다.
"문 대통령이 오늘 점심을 광주에서 5월단체 관계자들과 먹었다. 그 자리에서 문 대통령이 주영훈 경호실장에게 미안했는지 '실장님, 오늘 경호하느라 많이 힘들었나. 그래도 시민 분들은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라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주 실장은 '대통령과 국민들이 염려하지 않도록 안전 경호를 충분히 하고 있다. 오늘도 그렇게 했다'라고 답했다."
▲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에 입 다문 정우택 문재인 대통령(왼쪽 다섯째), 정세균 국회의장,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 등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한편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권한대행(오른쪽 둘째)은 입을 다물고 있다. 행사를 마친 뒤 정 대표는 ‘5·18 민주 영령에 대한 추념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사항’이라며 노래를 부르지 않은 이유를 밝혔다.ⓒ 공동취재사진
이날 기념식은 임을위한행진곡 제창으로 마무리됐다. 가수 전인권씨가 상록수를 부르고 난 뒤, 참석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 목소리로 임을위한행진곡을 불렀다. 특히 이날 기념식이 시민 개방형으로 열린 덕분에, 현장을 찾은 1만 여 명의 목소리가 묘역을 메울 수 있었다. 국가보훈처는 신분 확인만 되면 누구나 이날 기념식에 참석하도록 조치했다.
5.18 당시 구속됐던 강아무개(53)씨는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우리에게 5.18을 기억하지 말라며 온갖 수모를 주고 탄압했다"라며 "하지만 문 대통령은 취임하자 전격적으로 임을위한행진곡 제창을 지시했다. 특히 오늘 기념식을 시민 모두가 참여할 수 있게 해 의미가 깊었다. 감동적인 날이다"라고 말했다.
▲ 교복 입은 학생들도... 18일 오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생애 처음 5.18 기념식을 찾았다는 강진고등학교 3학년 박홍은·이연경·위보배·이수연양은 "아직도 포털사이트에서 5.18을 쳐보면 폭동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걸 보면서 무척 안타까웠다"라며 "이번에 대통령이 바뀌었으니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된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해줬으면 한다"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세월호든 5.18이든 모두 다 진실을 낱낱이 밝혀졌으면 한다"라며 "그래서 이제 좀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안 싸웠으면 좋겠다. 또 잘못한 사람들이 모두 죗값을 치렀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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