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4066
고흥 [高興]
집필자 노중국
생몰년 미상. 백제시대의 학자.
출생에 관해서는 알 수 없다. 다만, 고씨라는 중국계 성씨를 가진 것으로 미루어 백제에 귀화한 중국인으로 보는 견해도 있고, 토착인으로서 한화(漢化)하여 고씨(高氏)를 칭하게 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백제의 박사(博士)로서 『서기(書記)』를 편찬하였는데, 『삼국사기』에는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백제는 개국 이래 아직 문자로써 사실을 기록함이 없더니, 이에 이르러 박사 고흥을 얻어 비로소 『서기』를 가지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고흥이 편찬한 『서기』는 백제 최초의 역사서였다고 할 수 있다. 고흥이 『서기』를 편찬한 시기는 근초고왕 때였다. 이때 백제는 왕위계승이 초고왕계(肖古王系) 중심으로 안정되고, 또 남북으로의 정복적인 팽창활동을 전개하여 영역의 확대와 왕권의 확립을 보아 중앙집권적 통치체제가 완비된 시기였다.
따라서, 이와 같은 시대적 상황과 분위기 속에서 고흥이 편찬한 『서기』는 왕권을 합리화하고 왕실의 계보를 문자로 기록하고 이를 신성화하며, 또 백제에 복속된 여러 부족의 신화와 전설을 왕실중심으로 통합·정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우리 역사(歷史)를 어떻게 볼 것인가』(이기백 외, 삼성미술문화재단, 1976)
「고대국가(古代國家)의 역사인식(歷史認識)」(이기동, 『한국사론(韓國史論)』 6, 국사편찬위원회, 1979)
고흥 [高興]
집필자 노중국
생몰년 미상. 백제시대의 학자.
출생에 관해서는 알 수 없다. 다만, 고씨라는 중국계 성씨를 가진 것으로 미루어 백제에 귀화한 중국인으로 보는 견해도 있고, 토착인으로서 한화(漢化)하여 고씨(高氏)를 칭하게 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백제의 박사(博士)로서 『서기(書記)』를 편찬하였는데, 『삼국사기』에는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백제는 개국 이래 아직 문자로써 사실을 기록함이 없더니, 이에 이르러 박사 고흥을 얻어 비로소 『서기』를 가지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고흥이 편찬한 『서기』는 백제 최초의 역사서였다고 할 수 있다. 고흥이 『서기』를 편찬한 시기는 근초고왕 때였다. 이때 백제는 왕위계승이 초고왕계(肖古王系) 중심으로 안정되고, 또 남북으로의 정복적인 팽창활동을 전개하여 영역의 확대와 왕권의 확립을 보아 중앙집권적 통치체제가 완비된 시기였다.
따라서, 이와 같은 시대적 상황과 분위기 속에서 고흥이 편찬한 『서기』는 왕권을 합리화하고 왕실의 계보를 문자로 기록하고 이를 신성화하며, 또 백제에 복속된 여러 부족의 신화와 전설을 왕실중심으로 통합·정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우리 역사(歷史)를 어떻게 볼 것인가』(이기백 외, 삼성미술문화재단, 1976)
「고대국가(古代國家)의 역사인식(歷史認識)」(이기동, 『한국사론(韓國史論)』 6, 국사편찬위원회,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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