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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평 이순신 이야기 - 해설 난중일기 ①] 연재를 시작하며...
홍준철 기자승인 2015.07.06 10:46 호수 110522면
- 4년간 난중일기 번역 결과물을 독자 여러분께…
- <(친필)난중일기>와 <이충무공전서> 합쳐 시간순으로 해설
세상에는 수많은 일기가 있다. 그중 420여 년 전에 이순신이 쓴 <난중일기> 만큼 큰 울림과 깊은 감동을 주는 일기는 거의 없다. 1592년 1월 1일부터 1598년 11월 17일까지 7년간의 기록이다. 11월 17일은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 이틀 전이다. 칼날과 총탄이 난무하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자신의 소명을 다하고, 백성과 군사를 살렸고, 불패의 기적을 이룬 한 고독한 리더의 눈물과 핏물로 쓴 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국보 제76호로 지정했고, 유네스코에서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했다. 그러나 <난중일기>를 실제로 다 읽은 사람들은 많지 않다. 본래 한문으로 씌었고, 또 그 시대의 언어와 행동을 기록한 것으로 간결한 문체가 읽고 이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4년 전부터 <난중일기>의 한문 원본을 읽고 사색하며, 일기 속 이순신의 마음을 배우고자 노력해왔다. 본래 한문 전문가가 아니었기에, 또 역사학 전공자도 아니었기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지난한 과정을 밟아가며 공부해왔다. 이제 그 결과물을, 우리 시대의 곳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작은 이순신으로 살고 있는 평범한 독자 여러분께 드리고자 한다.
이 연재는 이순신 자신의 일기와 편지, 메모, 보고서 등을 시간 순으로 정리해 번역문 전체 혹은 요약문을 올린 뒤, 기록의 맥락과 전후 사정, 그 시대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이야기를 곁들여 이순신의 진면목을 찾아가는 이순신 탐험이 될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기존의 많은 번역본을 참조했다. 선배 학자들이신 故 노산 이은상 선생, 故 홍기문 선생, 故 박혜일 선생, 이석호 선생, 박기봉 선생, 고정일 선생, 임기봉 선생, 최두환 선생, 김경수 선생, 노승석 박사의 번역본들이 그것이다. 이 공간을 빌어 그 분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또한 한국고전번역원의 한국고전종합DB, 국사편찬위원회의 조선왕조실록은 필자에게 한밤중 등불과 같은 존재가 돼 주었다.
<난중일기>와 <이충무공전서>의 차이
많은 사람들이 가끔씩 묻는다. <난중일기>와 <이충무공전서>가 어떻게 다른 것이냐고. 이순신 자신이 직접 손으로 매일 매일 쓴 <친필 난중일기>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짜 <난중일기>이다. <이충무공전서>는 1795년, 이순신을 존경했던 정조 임금에 의해 <난중일기>와 이순신의 보고서, 편지글, 기타 각종 이순신과 관련된 기록을 집대성해 14권 8책으로 간행된 일종의 종합판이다.
본래 이순신 자신은 <난중일기>라고 자신의 일기를 명명하지 않았다. 그는 매년 한 권의 공책을 만들어 표지에 제목을 <일기>라고 표기했거나, 혹은 해당 연도의 간지(干支)를 표기해놓아 그것이 어느 해의 일기인지 알 수 있게 했다. 그래서 친필 일기책의 표지에 기록된 제목은 각기 다르다. ‘갑오(甲午, 1594년)’ 혹은 ‘무술(戊戌, 1598년)’ 같은 경우이다.
그러면 <난중일기>란 명칭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이충무공전서>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당시 <이충무공전서>의 편찬자들이 권5에서 권8에 이순신의 친필 일기를 편집해 넣으면서 일기 전체를 <난중일기>라고 명명했다.
그런데 현재 현충사에 소장된 <(친필) 난중일기>와 <이충무공전서>속의 <난중일기>와는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친필본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이충무공전서>에는 친필본에 존재하지 않는 일기가 나온다는 점이다. <이충무공전서>가 없었다면, 친필본만으로는 전혀 알 수 없는 일기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1595년 일기는 친필본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충무공전서>에는 들어 있다. 그 이야기는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할 당시까지는 존재했지만, 편찬 이후 어떤 이유에서인지 일기가 사라졌다는 것을 말해 준다. 어쩌면 지금도 우리 땅 어디에 그것이 존재하면서, 자신을 다시 세상에 드러내 보여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분들 중에서, 댁에 소장된 고서 뭉치가 있다면 그것을 한번 자세히 살펴보시길 당부드린다.
기존 번역본들과 필자의 해설 방식
현재 시중에 번역된 <난중일기>들은 그래서 크고 작은 차이가 있다. 어느 번역본은 <이충무공전서> 속의 편집된 <난중일기>를 번역한 것이고, 어느 번역본은 <(친필) 난중일기> 그 자체를 번역한 것이고, 어느 번역본은 <(친필) 난중일기>와 <이충무공전서>속의 <난중일기>를 합쳐 번역한 것이다. 또 <(친필) 난중일기>도 일기 자체만 번역해 일기 속에 들어있는 각종 메모를 제외한 경우와 그 전체를 번역한 경우로 나뉘기도 한다.
필자는 <(친필)난중일기> 전체와 <이충무공전서>에만 들어있는 부분을 모두 합쳐 시간순으로 해설할 예정이다. 친필본 전체라는 것은 일기는 물론 각종 메모 글까지를 포함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때때로 일기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가 쓴 각종 보고서도 관련 날짜 전후에 배치해 일기에서는 전혀 알 수 없었던 이순신의 상황, 그의 행동과 생각을 전할 예정이다. 다음은 이순신의 1593년의 일기장 맨 앞에 쓴 메모이다.
“기록할 생각이 있었으나, 바다와 육지에서 바빴고, 또한 쉴 틈도 없었다. 잊고 생각지 않은 지 오래였다. 이제부터 이어간다.”
이순신이 다시 붓을 잡고 일기를 쓰려는 그 자세로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이순신의 일기를 따라, 그를 만나고, 그와 함께 기뻐하고, 그와 함께 울고, 그를 닮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도록 독자들의 질책을 부탁드린다.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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