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160978.html

 

원전 르네상스? 세계 원전산업은 이미 오래전 사양길
세계원자력산업현황보고서 2024
폐쇄원전이 신규원전보다 많아
공사 지연 등 경제성 문제에 발목
박기용 기자 수정 2024-10-04 09:17 등록 2024-10-04 05:01
 
2022년 10월1일(현지시각), 영국 남서부 서머싯주의 힝클리포인트 시(C) 원자력발전소 건설 현장 모습. 영국이 20여년 만에 새로 짓는 힝클리포인트 시 원전 1호기의 준공 시점은 애초 계획됐던 2027년에서 2030년으로 미뤄진 상태다. 힝클리포인트/AP 연합뉴스
2022년 10월1일(현지시각), 영국 남서부 서머싯주의 힝클리포인트 시(C) 원자력발전소 건설 현장 모습. 영국이 20여년 만에 새로 짓는 힝클리포인트 시 원전 1호기의 준공 시점은 애초 계획됐던 2027년에서 2030년으로 미뤄진 상태다. 힝클리포인트/AP 연합뉴스
 
최근 국내에서 ‘원자력발전 회귀국’으로 언급되는 스웨덴이 마지막으로 신규 원전을 가동한 건 1985년이다. 스웨덴은 2022년 국가 에너지 정책의 목표를 ‘100% 재생에너지’에서 ‘100% (원전을 포함한) 탈화석’으로 변경한 ‘티도협정’을 체결했지만, 40여년간 원전을 새로 지은 경험이 없다.
 
지금까지 7기의 원전을 폐쇄했고 6기를 가동 중일 뿐이다. 외려 원전의 전력생산 비중은 2004년 50.4%에서 2021년 30.8%까지 떨어졌다. 이 때문에 스웨덴 정부의 최근 ‘원전 회귀’를 두고 “스웨덴에 더 이상 자체 원전 산업이 없다는 사실을 무시한 것처럼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불과 11년 뒤인 “2035년까지 2.5GW 규모(원전 2기에 해당)로, 다시 2045년까지 10기를 짓겠다면서, 정확한 구성과 부지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스웨덴 정부가 임명한 기후정책위원회도 “신규 원전이 가장 빨리 전력 생산을 시작하는 시기는 2035년께”라며 “탄소중립에 필요한 시간의 절반이 이미 지났을 때”라고 짚었다. 스웨덴의 현 우파 연립정부의 ‘원전 회귀’ 정책이 현실적이지 않은데다, 탄소중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달 19일 공개된 ‘세계원자력산업현황보고서(WNISR) 2024’ 중 스웨덴 관련 부분이다. 보고서는 세계원자력협회(WNA)가 내는 ‘세계원전실적보고서’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세계원자로현황’과 함께, 전 세계 원전 현황을 정리한 주요 문건 중 하나로 꼽힌다. 내용이 방대하고 장기 시계열로 정리돼 산업 흐름을 보기에 적합하다.
 
국제 에너지·핵 정책 전문가인 마이클 슈나이더 등 유럽의 에너지·기후 전문가들이 독일 녹색당 계열 하인리히뵐재단·맥아더재단 등과 함께 해마다 발간한다. 보고서에 언급된 스웨덴 상황은 최근 유럽 일부 국가 중심의 ‘원전 회귀’ 흐름에 다분히 정치적 배경이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달 발간된 ‘세계원전산업현황보고서 2024’의 표지.
지난달 발간된 ‘세계원전산업현황보고서 2024’의 표지.
 
보고서를 보면, 옛 소련의 세계 최초 상업원전인 ‘오브닌스크’가 가동된 1954년 이후 올해 7월까지 전 세계에서 계획됐거나 건설됐던 원전이 807기에 이른다. 한데 이 가운데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된 사례가 11.5%인 93건이다. 충분히 검토·계획된 것도 10건 중 1건꼴로 무산된 것이다.
 
그러나 세계원자력협회 같은 기관은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원전의 미래 수요를 최대한 부풀린다. 예컨대 이 협회는 지난 8월 기준으로 전 세계 원전 현황을 ‘가동 중’(439기), ‘건설 중’(64기), ‘계획된’(88기) 등으로 집계했는데, ‘제안된’(proposed) 원전은 무려 344기로 집계했다.
 
협회 스스로도 ‘제안된’의 분류 기준을 “특정 프로그램 또는 부지 제안, 시기가 매우 불확실함”이라 설명할 정도인데, 최근의 ‘원전 회귀’ 전망은 이런 장밋빛 기대에 주로 기댄다. 국내 보수언론과 정부·여당도 이 불확실한 수치를 앞세워 “원전 르네상스”라 호도한다.
 
 
일례로 폴란드는 1980년대 원전 건설 계획을 세웠을 뿐 원전 운용 경험이 전혀 없지만, 협회에서 분류한 ‘제안된’ 원전이 무려 26기에 달한다. 세계 5위의 원전 보유국인 우리나라보다 많다. 보고서는, 폴란드 정부가 2008년부터 원전을 도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런 거품을 걷어내면, 세계 원전 산업은 이미 오래 전 사양길에 접어들었음이 확인된다. 보고서를 보면, 지난 7월1일 현재 전 세계 32개국에서 장기가동중단(Long-Term Outage) 원전을 제외한 총 408기 원자로가 가동 중인데, 이는 2023년보다 1기가 많을 뿐, 2002년보다 30기가 적고 1989년보다 10기가 적다.
 
발전량으로도 정점은 2006년(2660TWh)이었다. 2012년 이후 반등 흐름이 있지만 거의 중국 덕으로, 중국을 제외하면 전 세계 원전 발전량은 1990년대 중반 수준으로 돌아간다. 전체 발전량 중 원전 비중도 수십 년간 지속해서 줄고 있다.
 
1996년 17.5%에서 지난해 9.1%로 떨어졌다. 원전 비중이 준 건 재생에너지 때문으로, 정작 세계 원전 발전량을 지탱한 중국도 원전보다 재생에너지를 더 폭발적으로 늘려왔다. 지난해 중국 전체 발전설비의 절반이 재생에너지(1472GW)인 반면, 원전은 2% 수준인 57GW에 그쳤다.
 
슬로바키아 보후니체에서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의 모습. 우리나라는 체코를 시작으로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여러 국가들에 ‘원전 수출’을 기대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슬로바키아 보후니체에서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의 모습. 우리나라는 체코를 시작으로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여러 국가들에 ‘원전 수출’을 기대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런 흐름은 새로 가동되는 원전과 수명을 다해 폐쇄되는 원전 개수의 비교로도 확인된다. 세계 원전 산업은 크게 두 번의 전성기를 맞는데, 26기의 원전이 새로 가동된 1974년과, 33기씩이 가동된 1984년과 1985년이다. 신규 원전은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이후 급속히 줄어 1990년 처음 신규 원전 수(11기)가 페쇄 원전 수(12기)보다 적어져 2003년 이후 꾸준히 순감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최근에도 이어진다. 2004~2023년 20년 동안 신규 원전이 102기였던 반면, 폐쇄 원전은 104기였다. 게다가 신규 원전 가운데 49기가 중국 것이라, 중국을 제외하면 이 기간 세계적으로 51기의 원전이 순감했다.
 
지난 5년(2019~2023년)만 놓고 봐도 신규 원전은 27기였지만, 폐쇄 원전은 39기로 12기가 순감했다. 한국이 2009년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이후 15년 동안 수출 실적이 없었던 것은 이런 상황 때문이었다.
 
국내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세계의 신규 원전 시장은 사실상 러시아가 장악하고 있다. 지난 7월1일 기준 세계적으로 건설 중인 원전이 59기인데, 이 가운데 20기를 중국, 인도, 튀르키예 등지에서 러시아가 짓고 있다.
 
나머지 39기 가운데 37기는 각국이 자국 기술로 짓는 원전이며(이중 23기가 중국), 남은 2기를 프랑스가 영국에 짓고 있다. 요컨데 세계 원전 산업은 전성기였던 1970~1980년대 이후 꾸준히 사양길이고, 그나마도 러시아가 장악하고 있다.
 
게다가 원전에는 심각한 공사 지연 사례들이 허다하다. 지난해 결국 브라질 정부가 포기하고 만 앙그라 3호기가 대표적이다. 1984년에 시작된 건설 프로젝트가 30년째 이어오다 지난해 4월 다시 중단됐다. 독일 지멘스가 설계했는데,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사고 이후 지멘스가 원전 사업을 철수하면서 프랑스 전력공사(EDF)로 넘어갔다. 이후 브라질 정부 재원만으론 감당이 안 돼 국제 민자투자를 유치하는 등의 방법으로 2027년 준공할 계획이었다.
 
‘세계원전산업현황보고서 2024’는 이 프로젝트를 사실상 중단된 것으로 간주한다. 이런 사례는 앙그라 3호기만이 아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건설 중인 59기의 원전 중 40%인 23기의 공기가 지연됐고 이중 7기는 그 기간이 10년을 넘어간다. 일본의 시마네 3호기와 프랑스 플라망빌 3호기는 각각 2006년, 2007년에 공사가 시작됐고, 슬로바키아 모흐비체 4호기는 1987년에 시작됐다.
 
이란 부셰르 2호기의 건설은 무려 1976년에 시작됐다가 40년 동안 중단된 뒤 2019년에야 재개됐다. 지난해 5월 상업운전에 들어간 핀란드의 ‘유럽 최대’ 올킬루오토 3호기도 건설이 시작된 건 18년 전인 2005년이었다. 한 번 중대사고가 발생하면 국가 차원에서도 감당할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원전은 중대사고가 날 때마다 안전 규제가 늘면서 공사기간과 비용이 늘어난다. 원전 산업 쇠락의 핵심에는 이런 고질적인 경제성 문제가 있다.
 
이처럼 보고서에서 드러난 현실을 종합하면, 지난해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에서 채택됐던 ‘2050년까지 원전용량 3배 확대’ 선언이 비현실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 선언엔 한국을 비롯, 미국·영국·프랑스 등 22개국이 서명했는데, 한국만 놓고 봐도 2020년 현재 23.25GW인 용량을 2050년까지 3배로 늘리려면 1.4GW급 원전을 해마다 1개 이상씩 늘려야하기 때문이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최근 원전 신규 물량의 60%를 중국이 짓고 있는데, 이 중국조차도 지난 5년 동안 1년에 1기씩밖에 준공하지 못했다. 현재 일부 국가들이 내놓고 있는 원전 증설 계획은 그야말로 희망 수준이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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