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중국인 99명 체포' 가짜뉴스 이렇게 만들어졌다
기자명 애틀랜타=이상연 기자 입력 2025.01.21 18:04
애틀랜타 거주했던 기자가 '美 소식통' 인용 허위정보 제조
농섞인 기사 댓글→극우 유튜버→황교안 거쳐 기사로 '둔갑'
'尹 구세주는 트럼프' 망상에 집착...尹 지지자 무분별 퍼나르기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 이유로 주장하는 '부정선거'와 관련, 인터넷 매체 스카이데일리가 보도한 '선거연수원 체포 중국인 99명 주일미군기지 압송' 기사가 가짜뉴스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있다.
이 매체는 지난 16일 단독기사라며 '사안에 정통한 미군 소식통' 또는 '최근 미국령 사이판에서 기자와 접촉한 미 정보 소식통'이라는 출처를 근거로 "12.3 비상계엄 당일 계엄군이 미군과 공동 작전으로 선거연수원을 급습해 중국 국적자 99명의 신병을 확보해 이들을 미군에 인계했다"고 전했다.
매체는 이어 "체포된 중국인 간첩들은 모두 평택항을 거쳐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로 이송돼 미군의 심문과정에서 선거 개입 혐의를 자백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선포 직후 계엄군이 경기 과천시 중앙선관위 청사로 몰려가고 있다.(사진=SBS뉴스캡처)
◇ 선관위, 해당 매체·기자 고발...주한미군도 "완전 날조"
이처럼 근거가 불충분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황당한 기사는 뜻밖에도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극우 유튜버들이 앞다퉈 이 기사를 사실처럼 전했고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 측 배진한 변호사가 지난 18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변론에서 이 기사를 언급하며 "부정선거가 자행되고 있어 계엄 선포가 불가피했다"고 주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부정선거 관련 주장이나 기사에 일일히 대응하지 않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20일 스카이데일리와 함께 해당 기사를 작성한 H기자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명예훼손·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서울경찰철에 고발했다. 선관위는 "피고발인은 선관위 취재 등을 통한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 절차 없이 ‘정통한 미국 소식통’ 등의 말을 인용해 구체적인 내용으로 허위 사실을 보도하고 유튜브에 유포했다”고 지적했다.
주한미군도 같은 날 소셜미디어에 발표한 성명을 통해 "한미 군 당국이 작년 12월 3일 수원 소재 선거관리연수원에서 중국인 간첩들을 체포해 오키나와 주일미군기지로 압송했다는 인터넷 매체의 보도는 '완전히 거짓'"이라고 공식 확인했다. 주한미군사령부는 "한국 언론에서 보도된 내용은 전적으로 거짓이다. 공공의 신뢰를 해칠 수 있는 잘못된 정보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책임 있는 보도와 사실 확인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 기사에 달린 댓글이 도화선...유튜버-정치인이 확대 재생산
사건의 시작은 지난달 24일 시사주간지 '시사IN'이 보도한 '12.3, 선관위 연수원서 실무자-민간인 90여명 감금 정황'이라는 기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해당 기사는 수원 선거연수원 주차장에 계엄군과 경찰이 주둔했다는 내용을 담은 것이었는데 '그 민간인이라는게 중국인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기사 댓글이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아 최상단에 게재됐다.
다음날인 25일 구독자 150만명에 이르는 유튜브 채널인 '신인균 국방 TV'는 해당 기사를 인용하며 "감금된 사람들이 중국인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고 전했다. 스카이데일리는 같은 날 칼럼을 통해 "수원 선관위 연수원의 중국인 해커부대 90명이 누구인지 윤석열 대통령이 밝힐 것"이라고 주장했고, 황교안 전 총리가 다음날인 26일 한 매체에 '선관위 연수원 90명이 중국인 해커라고?'라는 기고를 게재했다.
선관위는 지난 1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계엄 당시 선거연수원에 있던 96명은 승진자 과정에 있던 선관위 공무원 88명과 외부 강사 8명 등 96명 이었고 계엄군이 청사에 진입하지도 않았다"며 이같은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선관위는 국회에서 선거연수원 CCTV를 공개해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스카이데일리는 지난 16일 기사를 통해 96명이 아닌 99명이 계엄군에 체포됐고 이들이 모두 중국인 간첩이라는 보도를 내보냈다.
선관위의 경기 수원시 건거연수원에서 체포된 중국인 99면이 주일미군기지로 압송됐다는 가짜뉴스. (사진=스카이테일리 캡처)
◇ "트럼프가 윤석열 구한다" 신념이 '미국 소식통'과 결합
스카이데일리의 해당 기사를 작성한 H기자는 미국 애틀랜타와 워싱턴DC의 한인신문에서 기자로 일하다 민경욱 전 의원의 '부정선거' 주장에 동조해 관련 기사를 보도해왔다. H기자는 "트럼프 당선인이 조지아주 공화당 연방 하원의원에 출마했던 유진철 특사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내 선거연수원에서 검거된 중국인 간첩들에 대한 미국 측의 심문 결과를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H기자는 부정선거 주장 외에도 지난해 10월에는 광주광역시와 5.18기념재단에 의해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위반' 혐의로 권영해 전 안기부장과 함께 고발당했다. 광주시와 기념재단은 "H기자는 ‘5·18 기획기사’를 통해 5·18민주화운동의 허위 내용을 유포해 고발, 수사받는 중임에도 권영해의 발언과 인터뷰를 기사화했다"고 밝혔다.
유진철 후보는 미 동남부한인회연합회장을 지낸 한인 인사로 애틀랜타에 거주하고 있으며 H기자는 애틀랜타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유 후보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 후보와 인터뷰한 애틀랜타의 N 유튜브 채널은 단독 보도라며 "유 후보가 지난 7일 한국을 방문했을 때 윤 대통령과 만나 중국인 간첩의 심문정보를 전했다"고 주장했지만 근거는 유 후보가 아닌 "익명을 요구한 인사"라고 밝혀 의구심을 낳았다.
하지만 유 후보는 한국을 다녀온 뒤인 지난 16일 애틀랜타한인회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에 참석해 연설했지만 중국인 간첩에 대한 설명 대신 "윤 대통령의 체포는 트럼프와 미국에 대한 도전"이라고만 말했다. 유 후보는 "한국의 정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는 아니었으며 윤 대통령이나 한국의 정치인들을 만나지 않았다"면서 "중국인 간첩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애틀랜타의 N 채널은 유 후보를 인터뷰한 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식을 마친 후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강력한 증거가 본격적으로 공개될 것"이라며 "(트럼프의 증거 제시로) 대한민국 국회는 부정선거에 의해 국민들로부터 강력한 해산 요구에 직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서 제기되는 '트럼프 개입을 통한 윤석열 회생' 주장을 부정선거와 연결시킨 것이다.
H기자도 취재의 근거로 '사안에 정통한 미군 소식통'을 들며 미 국방부 소속인 DIA(국방정보국)가 마치 취임도 하지 않은 트럼프의 명령을 받아 독자적인 작전을 수행하는 조직처럼 묘사하고 있다. 또한 기사를 통해 미국 공화당 인사인 유진철 특사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본격적인 '윤석열 구하기' 작전이 실시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허위 정보를 쏟아내고 있다.
◇ 거짓이 거짓을 재생산...중국 간첩단 미국 이송 주장까지
스카이데일리는 선관위의 형사 고발이 이뤄진 뒤 후속 기사를 통해 "12.3 계엄 당시 연수원 관련한 선관위의 주장은 맞다"면서도 "하지만 연수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선관위 소유의 건물 2개동이 있고 이 건물의 용도는 외국인 공동주택"이라는 후속 보도를 내보냈다.
매체는 "스카이데일리가 보도한 중국인 99명은 어디서 체포된 것일까요? 스카이데일리가 확인한 외국인공동주택은 출입문이 잠겨져 있었다"라며 선거연수원이 아닌 별도의 건물에서 중국인 간첩의 체포가 이뤄진 것 처럼 말을 바꿨다.
하지만 이 건물은 코로나19가 확산되던 지난 2020년 3월 수원시가 무증상 해외 입국자의 임시생활시설로 활용했기 때문에 이같은 오해를 부른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4월 열린 제21대 총선 당시에도 극우 유튜버들과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은 "중국인들이 선관위 연수원에 머무르며 한국 총선에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건물에는 중국이 아닌 유럽과 미국에서 입국한 사람들만이 수용됐기 때문에 이 마저도 '가짜뉴스'로 드러났다.
또한 H기자는 주한 미군이 '완전 거짓'이라는 입장을 낸 날 '중국 부정선거 간첩단 일부 본토 압송'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이라고 출처조차 밝히지 않은 채 "붙잡힌 중국인 간첩 혐의자들 중 주범으로 체포 대상에 오른 일부가 항공편을 통해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거쳐 미국 본토로 보내져 심문이 이뤄졌다"고 황당무계한 보도를 했다.
선관위는 이와 관련 "스카이데일리와 해당 기자의 행위는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 및 올바른 기사 제공의 기본적 책무를 저버렸다"면서 "이에 동조하는 유튜버들의 퍼나르기를 통해 선관위 직원이 중국인 간첩이라는 오명을 입었고, 선관위가 부정선거에 일조하고 있다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줬다"고 강조했다.
선관위는 "해당 보도들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며 향후에도 악의적인 의도로 허위사실을 보도하거나 유포한 행위에 대해서도 강력히 대응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이상연은 1994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특별취재부 사회부 경제부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으며 2005년 미국 조지아대학교(UGA)에서 저널리즘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애틀랜타와 미주 한인 사회를 커버하는 아메리카K 미디어 그룹을 설립해 현재 대표 기자로 재직 중이며, 뉴스버스 객원특파원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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