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주민들 콧속에서 녹조 독소 검출… 국민 건강 우려 확산
최승호 2025년 02월 03일 17시 25분
낙동강 주민들 콧속에서 녹조 독소 검출… 국민 건강 우려 확산
낙동강 인근 주민들의 콧속에서 남세균(녹조) 독소인 마이크로시스틴(Microcystin)이 검출됐다. 낙동강 등 주요 녹조 발생 지역 약 2km 이내에서 거주하거나 활동한 9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비강 검사에서 검사 대상의 47%인 46명에게서 독소가 검출된 것이다. 검사는 지난해 8월부터 9월 초까지 진행됐으며 분석에 수개월에 걸렸다.
환경부는 그동안 녹조 독소가 공기를 통해 인체에 유입될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부정해 왔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 구체적인 검사 결과가 나오면서, 4대강 사업 이후 심화된 녹조 문제가 환경 문제를 넘어 국민 건강과 안전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환경부의 책임론도 제기될 전망이다. 낙동강네트워크,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들은 2월 3일 기자회견에서 정부와 정치권에 대책을 요구했다.
사람 콧 속 녹조 독소 검출 결과 발표 기자회견 2025.2.3 환경운동연합
다양한 직업군에 독소 검출… “상시 노출 상태 가능성 커”
독소가 검출된 직업군은 어업(11명 중 5명 검출), 농축산업(28명 중 14명 검출), 환경단체 활동가(9명 중 6명 검출), 생태해설강사 등 다양했다. 사무직, 자영업자, 주부 등도 포함되었으며, 강 주변을 자주 산책하는 퇴직자들에게서도 독소가 검출되었다.
이번 연구를 이끈 이승준 부경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미생물 전공)는 “녹조가 발생한 지역에서 거주하는 분들은 상시 노출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며 “본인의 의도와 관계없이 녹조가 발생할 때마다 독소가 호흡기를 통해 유입될 수 있기 때문에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검출된 독소 농도, 미국 CDC 조사보다 최대 4배 이상 높아
검출된 독소의 농도도 상당히 높았다. 부산의 한 어부에게서는 21.61ng/swab(하나의 면봉에서 21.61나노그램 검출)이 검출됐는데, 이는 2010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캘리포니아에서 수상 레크레이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검출된 최대치(5ng)보다 4.3배 높은 수치다. 검출된 46명 중 7명이 5ng 이상을 기록했다.
또한, 마이크로시스틴 300여 종 중 가장 독성이 강한 MC-LR이 34명(73.9%)에게서 검출되었으며, 두 가지 이상의 독소가 검출된 경우도 12명(26%)에 달했다. 이는 복합 독성의 위험성을 시사하며, 독소의 상호 작용으로 인해 독성이 더욱 강해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2024.8월-9월 초 낙동강 주민들에 대한 비강 검사가 진행됐다.
독소 검출 주민들, 건강 이상 증상도 확인
이 연구에서 비강검사를 담당한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검사 결과 독소가 검출된 40명을 대상으로 건강 이상 증상을 조사했다. 그 결과, 재채기(23명), 콧물(18명), 코막힘(15명), 후각 이상 등 호흡기 관련 증상이 다수 보고되었다. 또한, 눈 가려움증 및 눈물 분비(21명), 두통(11명), 피부 따가움(10명) 등 호흡기와는 별개인 다양한 증상도 확인됐다. 김 교수는 “녹조 독소가 호흡기를 통해 체내로 유입되면서 급성 염증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며 “알레르기 비염이나 기관지 천식이 발생하거나 기존 질환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녹조 독소 검출자들은 다양한 급성 증상을 호소했다.
녹조 독소의 장기적인 위험성
마이크로시스틴은 대표적으로 간독성과 생식독성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지영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오하이오주에서 실시된 연구에서 원수(정수 처리 전의 물)에 녹조가 포함된 경우 간암 발생률이 20%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또 녹조가 발생된 원수에 더 가까이 살수록 유의하게 간암 발생률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중국 연구진 역시 “난징의대 불임센터를 찾은 1715명의 정자를 분석한 결과, 마이크로시스틴이 평균 0.16㎍/L 검출됐으며, 독소 농도가 높을수록 정자의 수와 운동성이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미국 마이애미 의대의 자이 그레이스 교수는 “녹조 에어로졸을 처음 흡입할 때는 별다른 증상을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장기간 노출되면 10~20년 후에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이런 점에서 녹조 독소는 ‘조용한 살인자’라 불릴 만하다”고 경고했다.
임희자 낙동강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3일 기자회견에서 “우리 동네에 유치원 다니는 꼬맹이가 있고, 얼마 전에 아기가 새로 태어났는데, 불안해서 어떻게 이런 곳에서 아이를 키우겠느냐”고 호소했다.
김완섭 환경부 장관이 국정감사(2024.10.8)에서 '우리 조사에서는 녹조 독소가 없었다'고 답변하는 장면
김완섭 환경부 장관, “우리 조사에서는 안 나왔다”만 주장
그러나 환경부는 녹조 독소가 공기 중에 전파되거나 인체에 유입될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환경단체와 연구자들이 낙동강 주민의 비강에서 남세균 독성을 유발할 수 있는 유전자가 검출되었다고 발표했음에도, 환경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김완섭 환경부 장관은 2024년 10월 8일 국정감사에서 “유전자가 검출된 것이지 독소가 검출된 것은 아니다”라며, 환경부 자체 조사에서는 독소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환경 단체들은 “환경부와 수자원공사의 조사는 녹조 발생이 거의 없는 시기에 이뤄졌으며, 조사의 투명성이 부족하다”며 조사 방법과 시기를 문제 삼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환경부 산하 수자원공사는 영주댐 인근 주민 12명을 대상으로 비강 내 녹조 독소 조사를 실시한 뒤 ‘독소는 검출되지 않았다’고 결론냈지만, 조사일(11월 26일)은 녹조 발생이 거의 없었던 시기였다.
환경단체들은 2월 3일 기자회견을 열고 “녹조 독소의 환경 및 인체 노출이 이미 세계적으로 증명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독 한국의 환경부만이 이를 부정하고 있다”며 강력히 비판했다.
환경단체 “차기 정부가 ‘녹조 사회재난 해소를 위한 국민위원회’ 구성해야”
석면, 반도체백혈병, 가습기살균제 등의 피해 문제에 대한 공론화에 큰 역할을 한 바 있는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명예교수는 “위험은 그것을 의심해야 보이지, 없다고 생각하면 보이지 않는다”며 환경부의 접근방식에 대해 지적했다. 백 교수는 “독성 물질에 의한 환경영향 평가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노출 경로를 확인하는 일’인데, 이번 조사를 통해 노출 경로에 대한 논란은 많이 해결되지 않나 생각한다”면서 “환경부가 이 문제를 폭넓게 논의할 수 있는 논의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단체들은 국회가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하면서 차기 정부가 대통령 직속으로 ‘녹조 사회재난 해소를 위한 국민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제작진
디자인 이도현
웹출판 허현재
편집 박서영
CG 정동우
촬영기자 오준식 정형민 김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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