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이 왜 저러는지 이젠 정말 모르겠다
[신필규의 아직도 적응 중]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끝나지 않는 문제적 행보
사회 신필규(mongsill) 25.03.10 06:51ㅣ최종 업데이트 25.03.10 06:51
 
근래에 칼럼 쓰는 사람들을 만나면 공통적으로 듣는 이야기가 있다. 늘 마감은 다가오는데 도무지 글감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건 나도 비슷한데 처음에는 내가 문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시대가 문제였다. 소위 말하는 '내란의 밤' 이후 탄핵 정국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상황이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고 있다는 게 대부분 사람들의 이야기다.
 
물론 다룰 사건이 아예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대부분의 일들이 내란과 탄핵 심판과 비교하면 크고 주목할만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글을 쓰기도 전에 주눅이 든다. 이 시국에 이런 이야기를 써도 되는 것인지.
 
한편으로 지금 정국이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고 해도 글 쓰는 이들이 필연적으로 소재 고갈에 직면하는 건 아니다. 내란 선동과 이어진 탄핵 심판은 어마어마한 사건이다. 책 한 권을 써도 충분할 정도다. 그리고 이 사건의 여파로 사람들이 움직이고 일들이 벌어진다.
 
사건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글감은 계속해서 나온다. 문제는 내란 선동의 시작부터 그 여파로 벌어진 일들이 모조리 수준 이하라는 것이다. 부정 선거 음모론에 계엄 옹호에 노골적인 중국 혐오 발언까지. 글의 모든 메시지가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것도 한두 번이지 지난해 12월 이래로 꾸준히 이런 글만 썼다고 생각해 보라.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의 문제적 행보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7일 서울 중구 인권위에서 열린 제5차 전원위원회를 시작하고 있다.연합뉴스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문제적 행보를 보이는 이들이 왜 그러는 것인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유를 알아야 행동을 이해하고 의도를 분석해서 비판을 하는 게 가능해진다. 그런데 요즘은 많은 경우 '저 사람이 왜 저러는지 이젠 정말 모르겠다'라는 생각만 든다. 최근에 내가 그런 생각을 하도록 만든 사람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이다.
 
안창호 위원장이 이끄는 인권위는 현재 문제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2월에는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관련 인권침해 방지 대책 권고 및 의견 표명'이라는 제목의 결정문을 발표했다. 처음에 제목만 듣고 계엄 사태에 휘말려 인권이 침해당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결정문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 결정문은 엉뚱하게도 탄핵 심판을 받는 윤석열의 방어권을 제대로 보장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물론 아무리 내란 수괴라도 공정한 재판은 보장받아야 한다. 문제는 인권위의 해당 결정문이 윤석열 측이 그간 일방적으로 반복해 온 주장을 근거로 썼으며 이 과정에서 계엄까지 옹호했다는 점이다.
 
해당 결정문에는 '대통령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는 고도의 정치적·군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통치행위에 속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는 문장이 담겼다. 죄도 아닌 일로 사람을 탄핵 심판대에 세웠으니 그건 인권침해라는 걸까. 도무지 의도를 알 수 없다. 또한 서울중앙지법에는 형사법의 대원칙인 불구속재판 원칙을 유념하라고 했다는데 비판의 가치도 없는 쓸모없는 소리다. 차라리 구속 영장이 발부되기 전에 윤석열에게 조사에 제대로 협조하라고 전화라도 하지 그랬나. 그게 '불구속재판 원칙'을 지키는 데 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에 "국민 50% 헌재 믿지 못한다" 서한까지...
 
이 결정문을 놓고 대통령 방어권 보장을 주장한다는 비판이 나오자 안창호 위원장은 "결정문을 제대로 읽어봤느냐"라며 맞섰다고 한다(관련 기사: "내란부역 인권위"... 인권위원장 "너무 앞서 간 선동", https://omn.kr/2ccj7). 이런 사실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저런 수준의 결정문이 세상에 돌아다닌다면 위원장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최근 안창호 위원장이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 간리) 승인소위원회에 윤석열을 옹호하고 헌법재판소를 비난하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헌법재판소가 공정하지 않은 심판을 하고 있고 일부 헌법재판관들의 과거 행적에 문제가 있으며 국민의 50%가 헌법재판소를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게 서한에 담긴 내용이라고 한다.
 
심지어 이 서한은 인권위가 독립성을 상실하고 권위주의 정부를 옹호한다는 비판에 대해 간리 측이 해명을 요구하자 보내진 것이었다. 말하자면 '정말로 권위주의 정부를 옹호합니까?'라고 물었더니 권위주의 정부를 옹호하는 답장을 보낸 셈이다. 정말 궁금할 지경이다. 사람을 웃기려고 그러는 건가?
 
"이러시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니에요"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2월 1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에서 열린 제2차 전원위원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사실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와 안창호 위원장의 행보를 비판하고 정작 이들이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인권위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내용으로 작성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글이 전혀 써지지 않았다. 자료조사를 위해 찾아 놓은 기사들도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나의 거대한 질문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안창호 위원장은 왜 희대의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윤석열을 옹호하고 헌법재판소를 비난할까.'
 
인권과 관련하여 별다른 경력이 없고, 문제적 발언과 행보로 자격조차 의심받은 자신을 인권위원장 자리에 앉혀준 것에 대한 충심의 표현일까. 물론 고마울 수는 있겠다. 하지만 충심이 내란 수괴를 향한다는 건 공직자가 아니라 일반인의 기준으로 봐도 문제이지 않나. 아니 하다못해 그렇게 해서 안 위원장이 얻는 것이라도 있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윤석열이 소위 말하는 '끈 떨어진 신세'라는 건 정치에 크게 관심이 없는 나 같은 사람도 안다. 윤석열은 정치인 출신 대통령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잘 다져온 측근 집단이나 자기 계파 같은 게 없는 사람이다. 오히려 '식구'라고 할 그룹들은 오랜 시간 몸담은 검찰 조직에 있을 텐데, 최근 검찰의 행보를 보면 조직 보위 앞에서 윤석열을 향한 충정이 빛이 바래는 모양새다. 한마디로 윤석열은 탄핵이 되면 다음이 없다. 그것으로 끝이다. 물론 내란 수괴에게 다음이 있다는 것도 이상한 말이긴 하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답은 안창호 위원장이 정말로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하나 얻을 것 없는 안 위원장의 고집이 말이 된다. 하지만 안창호 위원장은 2017년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를 비판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파면했던 인물이다. 그랬던 사람이 2025년에는 윤석열을 옹호하고 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8년이면 사람이 그렇게 변하는 게 가능한 시간일까? 다시금 머리에 질문이 많아지고 써야 할 다음 문장이 생각나지 않는다. 이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제는 정말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다.
 
"이러시는 데는 이유가 있으실 거 아니에요?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요?"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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