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파괴 윤석열 감싸는 ‘법잘알’들의 끝없는 민심 배신
기자명 이중근 칼럼니스트 입력 2025.03.28 08:12  
 
검찰정권도 모자라 판사 출신들까지 내란수괴 尹 비호 앞장
‘워터게이트 몰락’ 닉슨과 법률가 참모들의 오류와 판박이  
 
지난 25일 판사 출신인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윤석열 파면'을 촉구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헌법재판소 피켕팅 현장 바로 앞에서 '탄핵 기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5일 판사 출신인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윤석열 파면'을 촉구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헌법재판소 피켕팅 현장 바로 앞에서 '탄핵 기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의 제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1974년 8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자진사임했지만, 그의 몰락은 이미 그 전에 배태되어 있었다. 닉슨은 1972년 재선을 위한 대선에서 역사상 유례가 드문 압승을 거뒀다. 무려 49개주에서 승리하며 득표율 60.7%를 올렸다. 그런데 그의 이런 압승은 그냥 이뤄진 게 아니었다. 훗날 낱낱이 밝혀졌듯 닉슨 캠프는 온갖 편법과 더러운 정치 공작을 자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그 한 사례였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불법을 주도한 것은 법률가 출신 참모들이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1969년부터 4년간 백악관 특별보좌관으로 닉슨을 보필한 찰스 콜슨(Charles W. Colson)이다. 그는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돼 감옥에 갔는데, 이전까지 그는 능력을 인정받는 정치인이었다. 콜슨은 “어머니나 할머니의 시체를 바꿔서라도 맡은 일은 끝까지 유능하게 해내는 사람(월스트리트저널)”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능력과 충성심이 대단했다. 하지만 그는 맹목적인 충성심으로 닉슨을 보좌하다 주군은 물론 자신의 인생에도 오점을 남겼다. (나중에 그는 종교인으로 변신해 죄수 선교 등에 앞장섰다.) 당시 닉슨 주변에는 이처럼 야심만만한 법률가들이 그득했다. 이들은 법에 관한한 자신들보다 잘 아는 사람이 없으며, 따라서 무슨 일이든 법망을 피해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닉슨 캠프의 무모함은 지금 봐도 법률가들이 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1968년 대선 때는 린든 존슨 행정부가 베트남전을 멈추려는 시도를 방해했다. 남베트남 정부를 향해 “우리가 나중에 더 좋은 조건으로 도와줄테니 지금은 협상에 나서지 말라”고 했다. 미군들이 매일같이 전사해나가는 상황에서 국가 안보를 갖고 장난을 쳤다니, 엄청난 반역 행위였다. 그리고 재선을 위한 대선전 때는 그런 내용이 담긴 증거를 없애려고 브루킹스 연구소에 침입하는 계획까지 세워놓았다. 닉슨 캠프를 이끌다 나중에 법무부장관을 맡은 존 미첼에서부터 백악관의 요직을 차지한 젊은 변호인들까지 이들은 주군을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혹자는 닉슨이 이렇게 무리수를 둔 이유를 1968년 민주당 휴버트 험프리 후보를 선거인단 투표에서 0.3% 차이로 간신히 이긴 데서 찾기도 한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0.73% 차이로 이긴 대선 결과에 스스로 발목이 잡혔다고 볼 수 있다. 대선이 끝나면 선거 과정은 잊고 대화와 타협으로 정국을 풀어나가는 게 마땅한데, 야당을 범죄 집단으로 간주하며 시종 대결 정치로 몰고갔다. 말로는 법치주의를 외치면서 알량한 법지식을 활용해 야당의 빈틈을 노렸다. 그러다 막판에 정치브로커 명태균과의 연관성이 곧 폭로될 지경에 이르자 계엄을 선포했다. 닉슨 역시 ‘법질서 회복’을 내걸고 선거전을 폈다. 1960년대 후반 사회 혼란상을 보면서 법과 규칙을 준수하는 것이 사회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법치주의는 특정한 사람이나 폭력이 아닌 법이라는 사회계약에 의해 통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은 자기 멋대로 정치를 하다 정권이 위기에 몰리자 불법적인 수단을 통해 친위 쿠데타를 시도했다. 법률가 출신 각료들도 이를 말리지 않았다. 판사 출신인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같은 부류는 “계엄 선포는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이라고 우기고 있다. 닉슨이 퇴임 3년 후 데이비드 프로스트와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한다면, 그것은 불법이 아니다(Well, when the president does it, that means that it is not illegal.)”라고 한 것과 유사하다. 
 
윤석열 정권은 처음부터 검찰공화국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검사 출신들을 대거 대통령실에 포진시키고 그들 논리대로 가다가 결국 망했다. 그래놓고도 일말의 반성이 없다. 계엄 후에도 여전히 '법잘알(법을 잘 아는 법조인)'들이 여권을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검찰 출신인 권성동 원내대표의 터무니없는 야당 비판을 듣노라면 여간 인내심이 필요한 게 아니다. 어쩌면 그렇게 하는 행동마다 ‘내로남불’과 자가당착, 적반하장인지 놀랍다. 그러더니 이제는 그나마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판사 출신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중진인 김기현, 나경원 등에 이어 한동훈 전 대표 측근에서 친윤으로 갈아탄 신인 장동혁의 극우적 발언들이 예사롭지 않다. 민주주의 체제의 최후 보루라는 법원과 헌법재판소를 아무렇지도 않게 공격하고 있다. 사안의 맥락이나 기초적인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는 그 험악한 언술들은 일일이 옮기고 싶지조차 않다. 보편적 인권 의식은 아예 내팽개친 채 얄팍한 법 지식을 토대로 윤석열을 옹호하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그들이 판사 출신이라는 사실이 끔찍하다. 
 
워터게이트 이후에도 끝까지 버틸 듯하던 닉슨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백악관 법률고문 존 딘이 닉슨을 배신하고 녹음 테이프를 공개한 지 3일만에 자진사퇴했다. 그 테이프에는 닉슨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워터게이트 침입은 국가 안보 문제이니 (CIA 국장에게 시켜) FBI는 이 문제에 끼어들지 못하게 하라”고 말하는 육성이 들어있었다. 그 녹음 역시 법률가 출신 보좌진의 묵인과 조언 속에 닉슨 자신이 지시해 이뤄진 것이었다. 닉슨은 온갖 법률지식과 권한을 동원해 테이프 공개를 막으려 했지만 연방대법원은 만장일치로 “대통령이라도 그건 안된다”고 결정했다. 50년 전 일이다. 이제 같은 결정이 한국에서 내려져야 할 차례다. 그게 순리이고 정의다. 법잘알들이 새겨야 할 결말이기도 하다. 
 
이중근은 경향신문에서 34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 2024년 퇴직한 뒤 뉴스버스 등에 칼럼 등을 기고하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정치(정당·외교안보·총리실·중앙선관위·청와대), 사회(경찰·검찰), 국제부를 거친 뒤 논설실장·논설주간으로 경향신문의 논평을 책임졌다. 국가의 정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수립되고 집행되는지를 관찰한 것을 소중한 경험으로 여긴다. 글의 무거움을 절감하며 정파적 보도를 지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하자’는 게 '신조'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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