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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기던 주몽, 자라 도움으로 엄리수 건너 추격자 따돌려
역사의 숨결 어린 요동―고구려 유적 답사기행 <2>
데스크승인 2010.01.18   장광섭/중국문화전문기자, 윤재윤/요령조선문보기자



오녀산성 ( II )

▶오녀산에 얽힌 전설
 
오녀산은 다섯 자매가 횡포한 현령과 맞서 싸웠다는 현지의 전설이야기로, 지금의 이름을 가졌다고 한다. 《환인현 향토지(桓仁縣鄕土誌)》에 따르면 오녀산은 "오룡산(五龍山)", "오여산(五餘山)"이라고도 불렀으며, 원나라 시기에는 "오노산(五老山)"이라 불렸다. 《고려사·공민왕세가(高麗史·恭愍王世家)》에는 "우라산성(于羅山城)"이라는 기록이 나오고, 《조선 이조실록(朝鮮李朝實錄)》에는 "우라(兀喇)", "울라(蔚喇)", "욱라(郁羅)", "욱랑(郁郞)" 등으로 기록돼 있는데 그 중 가장 많이 나오는 명칭이 바로 "울라(蔚喇)"다.

오녀산은 현애절벽, 기암괴석, 동굴, 협곡, 운해송도(雲海松濤), 단풍잎과 들꽃, 산 정상의 맑은 물 등 60여 가지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풍경화를 이루어 찾는 이들을 매혹케 한다. 이렇듯 오녀산은 빼어난 경치로 인기를 끌지만, 고구려 산성으로 더 유명하다.

오녀산을 소개한 중국의 자료를 보면 오녀산에 얽힌 전설이 많이 쓰여 있다. 천제의 아들 해모수와 수신인 하백의 딸 유화의 인연, 부여왕 금화와 유화의 만남, 주몽의 난생(卵生)과 성장, 부여의 탈출과 건국과정 등 신기한 설화가 대부분 일치하는데, 조금씩 다른 것도 있다. 환인현 문화국의 《오녀산의 전설》 가운데 주몽의 부여 탈출 원인과 과정을 서술할 때 주몽이 부여에서 위태로움에 처해 있는 상황을 묘사한 뒤 이렇게 썼다.
 

호한송

이를 눈치 챈 주몽의 어머니 유화부인은 몰래 주몽을 불러 일렀다. "이 나라 사람들이 너를 해치려고 하니 빨리 손을 쓰는 것이 좋겠구나. 너의 재주와 계략이라면 어디를 간들 못살겠느냐. 어서 몸을 피해 후일을 도모하거라."

어머니와 눈물로 작별한 주몽은 오이, 마리, 협부 세 친구와 함께 서둘러 동부여 땅을 떠났다. 이들이 탈출한 것을 안 왕자는 병사를 이끌고 곧바로 말을 달려 추격해 왔다. 숨 가쁘게 말을 달리던 주몽 일행은 엄리수(淹利水)에 이르러 길이 막히고 말았다. 추적자들이 가까워 오건만 앞을 가로막은 강물을 건널 길은 묘연했다. 다급한 주몽은 강변에 꿇어앉으며 강물을 향해 외쳤다. "나는 천제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이다. 오늘 화를 피해 도망하는 길에 뒤따르는 자가 쫓아 닥치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는가?"

그러면서 주몽은 강 한복판으로 활을 쏘았다. 주몽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강물 속에서 한 늙은 자라가 수많은 자손들을 데리고 새까맣게 떠오르더니 순식간에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 주몽 일행이 그 다리를 달려 강을 건너자 자라들은 곧 물속으로 흩어져, 바로 들이닥친 추적자들은 강물을 보며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주몽 일행은 모둔곡 보술수라는 곳에 이르러 세 사람을 만났다. 그 중에 한 사람은 농사를 잘 짓는데 삼베옷을 입었고, 한 사람은 사냥을 잘 하는데 검은 옷을 입었으며, 한 사람은 고기를 잘 잡는데 무늬옷을 입었다. 주몽이 어떤 사람들이며 성과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자 삼베옷 입은 사람은 재사라 했고, 검은 옷 입은 사람은 무골이라 했으며, 무늬옷 입은 사람은 묵거라 하였다. 주몽은 이 세 사람에게 말했다.

"나는 천제의 아들로서 바야흐로 하늘의 큰 명을 받아 나라의 터전을 열려고 하는데 마침 세 현인을 만났으니 어찌 하늘의 하사가 아니겠는가? 자네들은 나를 따르겠는가?" 세 사람은 꼭 잘 따르겠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주몽은 재사에게는 극씨, 무골에게는 중실씨, 묵거에게는 소실씨라는 성을 내려주었고, 아울러 이들의 능력을 헤아려 각자에게 중요한 일을 맡겼다.

주몽 일행은 졸본천에 이르러 그곳은 땅이 기름지고 산하가 험하고 견고함을 보고 도읍지로 정하려 하였다. 하지만 궁궐을 지을 겨를이 없어 비류수 근처에 초막을 지어 거처로 삼았다. … 졸본부여국의 왕 연타발은 아들이 없었는데 주몽을 보고는 범상치 않은 사람인 것을 알고 그의 딸 소서노를 아내로 삼게 하였다. 오래지 않아 연타발이 죽자 주몽은 그 왕위를 이었다. … 주몽은 즉위한 후 국호를 고구려라 부르고 홍승골성을 도읍으로 설정하였다.
 
고구려 역사에 관한 중국자료에는 고구려 시조 주몽이 나라를 세운 훈공과 그의 출중한 재능, 영민함과 용맹함에 대하여서도 찬양을 아끼지 않았다. 원방출판사(遠方出版社)에서 펴낸 《고구려사화(황빈·유후생 저서)》는 "사서에서 기록해온 주몽이 비류국을 정복하는 전설이 그의 영민하고 용맹함을 가장 잘 말해주고 있다"고 아래와 같이 서술하였다.
 


주몽은 비류수 가운데로 채소 잎이 떠내려 오는 것을 보고 상류에 사람이 있는 것을 알게 되자, 사냥하며 찾아가서 비류국(沸流國)에 이르렀다. 그 나라 왕 송양(松讓)이 나와 보고는 말하였다. "과인(寡人)이 바다의 구석에 치우쳐 있어서 일찍이 군자를 보지 못하였는데 오늘 서로 만나니 다행이 아닌가? 그러나 그대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겠다."

주몽은 대답하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로서 모처에 와서 도읍하였다"고 하였다.

송양이 말하였다. "우리는 여러 대에 걸쳐서 왕 노릇을 하였다. 땅이 좁아서 두 왕을 용납하기에 부족하다. 그대는 도읍한 지 얼마 되지 않으니 나의 부하가 되는 것이 어떠한가?"
 
주몽은 그 말을 듣고 분하게 여겨, 그와 서로 활을 쏘아 재능을 겨루었는데, 송양이 당해내지 못하였다. … 이듬해 6월, 주몽과 여러 번 겨루다가 연전연패한 송양왕은 주몽을 찾아와 항복하면서 그때부터 충성을 다하였다. 비류국 송양왕이 주몽의 신하로 된 소문이 퍼지자 인근의 작은 나라는 저항도 별로 하지 않고 항복하였다. 이리하여 주몽은 짧은 시간에 이렇게 작은 나라들을 통합할 수 있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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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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