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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반 굽잇길 올라 주몽을 만나다
역사의 숨결 어린 요동―고구려 유적 답사기행(3)
데스크승인 2010.01.25  장광섭/중국문화전문기자, 윤재윤/요령조선문보기자

오녀산성(Ⅲ)

▶주몽의 자취와 숨결

우리가 오녀산성을 방문했을 때는 지난해 11월 초, 날씨가 추워서인지 산성을 찾는 관광객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오녀산 아래 광장의 널따란 주차장은 텅 빈 채 관리인마저 없었다. 하긴 유적지 탐방을 하지 않고 경치를 보려고 한다면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쓸쓸한 이 계절에 누가 이곳을 찾아오랴. 더군다나 이 추운 날씨에. 그래서 우리는 차로 드라이브 하며 평소에 관광객 승용차의 진입을 통제하는 산 비탈길을 구비구비 에돌아 산중턱에 있는 오녀산풍경구 정문 앞까지 거침없이 올라갈 수 있었다.

풍경구 정문(서쪽 문)이 바로 오녀산 정상에 있는 오녀산성의 주요 출입구인 서문으로 올라가는 입구이다. 이 입구 옆에는 소형 주차장이 있고, 그 앞쪽으로 매표소가 있다. 주차장에는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오녀산풍경구 관리처의 전용버스 20대가 나무토막을 앞뒤로 받쳐놓은 채로 줄지어 서 있었다. 이 버스들은 한 겨울 동안 이곳에서 겨울잠을 잘 것이라고 했다.

천년의 세월을 버텨온 오녀산성 성벽.

주차장 옆 건물에서 한 사람이 나와서 이 추운 날에 무슨 구경거리가 있어 올라가려 하느냐고 묻는 것이다. 양보림(楊寶林·57)이라고 하는 이 사내는 오녀산성관리처에서 지정한 산성 전문 관리인이라고 했는데, 부인과 함께 이곳에 거주하면서 산성을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산성을 잘 관리하기 위하여 그는 하루에 두 번씩 오녀산을 오른다고 했다. 우리의 신분을 확인한 양씨는 자진하여 안내하겠다고 나섰다. 추운 날씨에 고마운 일이다.

풍경구 정문 입구에서 산 위의 산성 서문까지 인공으로 만든 999개의 돌계단이 가파른 경사를 이루며 산 위로 곧게 이어져 있다. 몇 해 전 오녀산성을 개방하면서 축조한 것이라고 했다. 그 전에는 산 위에 텔레비전 송신탑이 있었고 이를 위해 산성까지 케이블카를 설치하였는데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송신탑과 케이블카가 모두 철거되었다. 대신 곧게 난 계단과 그 양쪽으로 경사도를 낮춘 열여덟 굽이길, 즉 18반(十八盤)이 놓여 있다. 그중 999계단을 쌓은 화강석은 이웃 현 관전(寬甸)에서 실어왔고, 18반 굽잇길을 쌓은 청석은 심양(瀋陽)지역 법고(法庫)현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양보림씨는 설명한다. 우리는 2천여 년 전에 고구려 사람들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이 가파른 계단을 힘겹게 오르며 아득한 옛날, 주몽의 자취와 숨결을 더듬어 보노라니 부하들이 경호하며 이곳을 오르내리던 주몽의 늠름한 풍채가 안겨오는 듯싶다.

999개의 계단을 오르면 산 정상은 나무숲에 어우러진 평탄한 곳인데 여기가 바로 오녀산성이다. 맨 처음 산성 서문이 시야에 들어온다. 오녀산 주봉 서쪽 골짜기 위에 위치하고 있는 서문은 성안 쪽으로 움푹 들어간 옹문인데 양쪽에는 바위벼랑까지 석벽이 쌓여 있다.


▶유리왕의 애틋한 사랑이야기

서문에 들어서 산성 위 관광코스를 따라 남쪽으로 조금 가면 왕궁 터를 만난다. 뒤쪽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이고 양지바른 평지에 반듯이 자리 잡은 이 고구려왕궁터에는 덩실하게 세워졌던 궁실은 언젠가 사라져 보이지 않고, 건물의 기초와 7개의 기둥 받침돌만 남아있다. 여기에서 주몽, 아니 또 그의 아들 유리왕도 장군들과 함께 쳐들어오는 적들을 물리칠 대책을 세웠을 것이고, 문무 대신들을 호령하여 웅심을 펼쳐 나갔을 것이다. 아득한 옛일을 상상해 보는 순간, 문득 여기에 얽힌 고구려 2대왕 유리왕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떠오른다.

오녀산 위의 왕궁터.

유리왕은 비류국 송양왕의 딸을 왕비로 맞아 들였는데, 송씨는 매우 유순하고 아리따운 여자였다고 한다. 송씨는 불행하게도 유리왕의 곁을 너무나 일찍 떠나갔다. 후에 유리왕은 골천 사람의 딸 화희를 계실로 맞아들이나 전 왕비에 대한 그리움으로 사무쳤다고 한다. 어느 날 사냥길에 왕비 송씨를 흡사하게 닮은 치희라는 한인 처녀를 만나 후궁으로 데려와 총애를 했는데 이로 인해 치희는 화희의 질투를 심히 받았다고 한다. 두 여자가 한 임금을 섬기게 되니 질투의 싸움이 끊이지 않자 유리왕은 동궁과 서궁에 두 여자를 갈라놓았다.

한번은 유리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7일간이나 돌아오지 않았는데 이틈에 두 여자의 질투싸움이 벌어져 화희가 치희를 몹시 모욕하였다고 한다. 치희는 화가 나 참다못해 친정집으로 떠나갔다. 유리왕이 많은 사냥감을 들고 돌아와 보니 사랑하던 치희가 보이지 않는지라 말을 달려 곧바로 치희의 뒤를 쫓아 치희를 갖은 방법으로 달랬으나 그녀는 영영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유리왕은 하는 수 없이 쓸쓸히 궁으로 돌아온다. 그때 마침 화창한 봄날이라 신록이 물든 버들가지 사이에 황금빛을 반짝이는 꾀꼬리들이 짝을 지어 날고 있었다. 유리왕은 미물인 새들도 저렇게 쌍쌍이 다정하게 노니는데 나만 외로이 돌아가게 되니 정말 안타깝구나 하며 애달픈 심정을 읊조렸다.

“꾀꼬리 오락가락 / 암수 서로 노니는데, / 외로워라 이 내 몸은 / 뉘와 함께 돌아가랴!”

보아하니 만민을 다스리고 강산을 호령하는 국왕도 집안일과 사랑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중국의 학자들은 기원전 17년에 유리왕이 읊은 이 몇 구절의 ‘황조가(黃鳥歌)’가 역사상 환인·본계 지역에 맨 처음 나타난 시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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