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media.daum.net/culture/art/newsview?newsid=20060510155313560
성의 안팎 양면은 석재를 연결시켜 쌓았고 그 내부는 돌과 흙을 다져 넣었으며 성 둘레에는 너비 4m, 깊이 1m의 해자(垓子. 성을 보호하기 위해 성 주위에 만든 못)도 만들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길이는 서쪽 성벽이 180m, 북쪽 성벽이 220m이고, 북쪽에서는 성문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남쪽에는 너비 6m의 성문이 있다. 동쪽과 남쪽 벽은 무너지고 없는 상태였다. 성 안에서는 2개의 건물 터가 발견됐으나 성과 건물터의 관계는 분명치 않은 상태라고 조사.연구팀은 말했다.
北ㆍ中접경 압록강변서 고구려 고분 2천여기 발견
연합뉴스 | 입력 2006.05.10 15:53 (베이징=연합뉴스) 이돈관 특파원
중국 바이산시 윈펑댐 수몰지역...성터도 드러나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을 마주보고 있는 중국 지린(吉林)성 바이산(白山)시 관내의 윈펑(雲峰)댐 수몰지역에서 고구려 때 것으로 보이는 고분 2천기 이상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이 지역에서는 또 수십년간 수몰돼 있다가 시설 보수를 위해 댐 수위를 낮춤에 따라 모습을 드러낸 고대 성(城)터 한 곳도 중국 문화재 조사.연구팀에 의해 발견됐으나 연구팀은 이 성터가 고구려나 발해 시기의 성과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신화통신은 중국 지린(吉林)성 장백산문화연구회 장푸여우(張福有) 회장과 지안시박물관 직원인 쑨런제(孫仁傑).츠융(遲勇) 등은 최근 윈펑댐의 수위가 낮아진 기회를 이용, 1개월간 예정으로 동(東)압록강 연안에 대한 조사에 나서 이들 고분군과 성터를 발견했다고 9일 보도했다.
◇ 고구려 고분 발견
이들이 고분군을 발견한 곳은 지린성 지안(輯安)시 칭스(靑石)진에 윈펑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됐던 압록강 동쪽 지대. 행정구역상으로는 바이산시 바다오장(八道江)구 싼다오거우(三道溝)진 일대다.
이들이 고분군을 발견한 곳은 지린성 지안(輯安)시 칭스(靑石)진에 윈펑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됐던 압록강 동쪽 지대. 행정구역상으로는 바이산시 바다오장(八道江)구 싼다오거우(三道溝)진 일대다.
량민(良民), 추피(秋皮) 등 8곳의 고구려시대(B.C.37-A.D.668) 고분군에서 확인된 고분 수는 무려 2천360기에 이른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밝혀지지 않아 단순하게 비교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지안(輯安)시 지역에서 발견된 고분의 수가 6천여기인 점과 비교할 때 그 수는 엄청난 규모라 할 수 있다.
신화통신은 이번에 발견된 고분이 "1세기에서 5세기까지 존재했던 고구려 왕조 때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이번 발견이 중국 동북지방의 소수민족사 연구에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통신은 그러나 량민과 추피 외에 나머지 6개 고분군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으며 구체적인 발견 과정, 고분의 형태.특징.크기, 현재의 상태, 유물 출토 여부 등에도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량민, 추피, 스후(石湖), 화피(樺皮) 등의 고분군에서는 윈펑댐 공사가 최종단계에 들어서 그 상류 지역이 수몰되기 직전이었던 지난 1964년 5월에도 지린성박물관 문화재발굴팀에 의해 모두 205기의 고분이 발견됐었다. 그러나 급하게 진행되는 댐공사로 인해 당시에는 발견된 고분 모두를 발굴하지 못하고 비교적 보존상태가 좋고 특징 있는 적석묘, 방단적석묘, 계단적석묘, 봉토석실묘, 볻토동실묘 등 30여기만 발굴했었다.
◇ 성터 발견
이들 고분군에서 남쪽으로 약 20㎞ 떨어진 수몰지역에서 발견됐다. 신화통신은 '지린서 한(漢)대 고성(古城) 수면 위로 드러나'라는 제목으로 이 사실을 전했다.
이들 고분군에서 남쪽으로 약 20㎞ 떨어진 수몰지역에서 발견됐다. 신화통신은 '지린서 한(漢)대 고성(古城) 수면 위로 드러나'라는 제목으로 이 사실을 전했다.
장 회장은 "성벽의 구조와 축성 스타일 등으로 보아 고구려나 발해, 요나라.금나라 때의 성과는 구별된다. 한나라(B.C.202-A.D.220) 때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러나 "발굴을 더 해 보기 전에는 확정할 수 없다"고 신화통신에 밝혔다.
성터는 싼다오거우진의 동압록강 오른쪽 기슭, 해발 280m 되는 지대에 자리잡고 있으며 발견될 당시 1m 두께의 진흙에 덮여 있었다. 수면 위로 드러난 후 진흙을 벗겨낸 일부 성벽의 모양으로 보아 이 성은 전체적으로 직사각형 모양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는 1.5m, 너비는 4m 가량이다.
성의 안팎 양면은 석재를 연결시켜 쌓았고 그 내부는 돌과 흙을 다져 넣었으며 성 둘레에는 너비 4m, 깊이 1m의 해자(垓子. 성을 보호하기 위해 성 주위에 만든 못)도 만들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길이는 서쪽 성벽이 180m, 북쪽 성벽이 220m이고, 북쪽에서는 성문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남쪽에는 너비 6m의 성문이 있다. 동쪽과 남쪽 벽은 무너지고 없는 상태였다. 성 안에서는 2개의 건물 터가 발견됐으나 성과 건물터의 관계는 분명치 않은 상태라고 조사.연구팀은 말했다.
조사.연구팀은 또 성터 북쪽에서 4세기 전후의 것으로 보이는 10여기의 적석묘도 발견했다. 그 가운데 제1호묘로 명명된 묘는 직사각형이고, 크기는 둘레 8m, 높이 2m로 석재를 사용해 2개 단계로 만들어져 있다. 이들은 성터 안에 있는 묘의 연대 분석을 통해 성이 먼저 축성되고 그 다음에 성 뒷쪽에 묘를 쓴 것이라고 말했다.
◇ 윈펑댐
지안시 칭스진에 있는 이 댐은 1958년 12월에 착공해 1967년 9월에 준공됐다. 고구려의 옛 도읍지 지안시 인민정부 수재지에서는 약 45㎞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지안시 칭스진에 있는 이 댐은 1958년 12월에 착공해 1967년 9월에 준공됐다. 고구려의 옛 도읍지 지안시 인민정부 수재지에서는 약 45㎞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댐에서 북쪽(상류쪽)으로 3.5㎞ 가량 떨어진 곳에 량민 고분군 등이 있고 그로부터 20㎞ 더 윗쪽에 이번에 발견된 성터가 있다. 이들 고분군과 성터는 댐 건설로 수몰됐다가 댐 수위가 낮아짐에 따라 42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윈펑댐의 수위는 윈펑 수력발전소 보수 때문에 현재 41.13m로 낮아졌으나 이보다 낮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고분과 성터는 아직도 수심 30m 아래에 잠겨있는 상태다.
윈펑댐 수력발전소는 40만㎾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원래는 북한과 중국이 함께 운영하며 전기를 반씩 나눠가졌으나 지금은 중국이 이 발전소를 관리하고 북한은 수풍댐 끝에 있는 노호 수력발전소를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댐의 정상 수위는 해발 281.75m, 최대 용량은 38억9천500만㎥, 면적은 102.5㎢, 총 길이는 89㎞로 북한이 백두산에서 벌채한 원목은 이 수로를 통해 뗏목으로 윈펑댐까지 운송된다.
d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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