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47167
홍국영이 효의황후를 죽이려고 한 까닭은?
[사극으로 역사읽기] 화병을 앓다가 죽은 홍국영
08.03.03 08:19 l 최종 업데이트 08.03.03 08:19 l 김종성(qqqkim2000)
▲ MBC 드라마 <이산> 제48회 예고편. ⓒ MBC
공동의 적이 사라지면 동지도 적이 될 수 있다. 특히 충심 없는 동지와 함께 고지를 점령했다면, 그 이후에는 동지의 칼을 받고 죽을 수도 있다. 충성심 없는 부하를 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홍국영의 충성심은 어떠했을까? 홍국영은 과연 믿을 만한 사람이었을까? 홍국영은 즉위 이후에도 오랫동안 함께 갈 만한 사람이었을까? 정조 임금에 대한 그의 충성심은 순도 몇 퍼센트였을까?
결론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홍국영의 충성심은 그 순도가 매우 낮은 것이었다고 평가해도 될 것이다. 왜냐하면, 홍국영은 정조 임금에 대한 내적 존경심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을 장기간 옆에 두면 정조 임금의 치세에도 장애가 될 것이 뻔했다. 정조가 즉위 4년 만에 그를 내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홍국영은 과연 믿을 만한 사람이었을까?
홍국영이 정조에 대한 내적 존경심이 매우 약했다는 점은 몇 가지 근거로부터 쉽게 도출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근거는, 그가 정조의 탕평정치를 무시하고 자신의 세도정치를 열려고 한 점이다. 그런데 이 점은 이전 기사에서 이미 여러 차례 논의되었으므로, 이 글에서는 이것을 제외한 또 다른 근거 두 가지만 다루기로 한다.
첫째, 홍국영은 자기 주군인 정조와 ‘가장 가까운 존재’를 없애려 했다. 주군과 가장 가까운 존재 즉 주군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존재를 없애려 했다면, 정조에 대한 홍국영의 마음이 그렇게 진실하지는 않았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정조와 가장 가까운 존재란 누구를 가리키는 걸까? 그는 바로 정조의 부인인 효의황후(고종 때 추존)다. 한 개인에게 있어서 부모나 자식이 가장 가까운 존재가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촌수로 보나 신체적·심리적 접근도로 보나 배우자가 가장 가까운 존재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 홍국영의 표적이 되는 효의황후(고종 때 추존). <이산> 제48회 예고편. ⓒ MBC
홍국영은 자기 주군과 가장 가까운 존재인 효의황후를 독살하려 했다. 누이동생인 원빈 홍씨가 후궁이 된 지 1년 만인 1779년에 사망한 것이 효의황후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측에 기초해서 자기 나름대로는 복수를 시도한 것이다. 자신이 평소 효의황후를 견제했고 또 효의황후와 원빈 홍씨가 라이벌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누이동생의 죽음을 효의황후 탓으로 돌렸던 것이다.
이처럼 홍국영은 자기 세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욕심에서 정조의 부인인 효의황후를 없애려고 시도했다. 자신의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주군과 가장 가까운 존재를 없애려 한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이 마음속으로부터 정조 임금에게 충성을 다했으리라고 생각하기는 힘들 것이다. 직장 상사의 부인이나 가족을 남몰래 괴롭히는 부하 직원이 직장 상사에 대해 진심이 있을 리 없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둘째, 홍국영은 정조에게 죄를 지은 뒤에 ‘원통’해서 죽었다. 주군의 부인을 없애려 한 것은 사실상 주군을 없애려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정조는 그를 죽이지 않고 가산만 몰수한 채 내쫓는 데에 그쳤다. 이 정도면 정조가 홍국영에게 은혜를 베풀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홍국영은 진심으로 뉘우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진심으로 뉘우쳤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거나 아니면 조용히 반성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홍국영은 진심으로 뉘우치지 않았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 홍국영, 정조 앞에서 고개는 숙였지만 ……. <이산> 제48회 예고편. ⓒ MBC
홍국영, 화병을 앓다가 죽다
정조에게 내침을 당한 뒤에 홍국영은 화병을 앓다가 1년 만인 1781년에 사망했다. 만약 그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면 화병을 앓았을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잘못을 뉘우치는 사람은 심리적으로 가라앉기 마련인데, 화병을 앓았다는 것은 그렇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을 쫓아낸 정조를 원망하지 않았다면, 화병을 앓다가 죽었을 가능성도 현저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이는 홍국영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죽음 대신 은혜를 베푼 정조의 처분에 대해서도 별로 고마워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는 자신을 내친 주군이 그저 원망스러웠을 뿐이다. ‘내가 없었다면 등극도 못했을 사람이 나를 버리다니!’ 그런 독심을 품지 않았다면 화병을 앓았을 가능성이 현격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홍국영의 심리 저변에서는 정조가 ‘별로 대수롭지 않은 존재’였던 것이다. 주군과 신하의 관계이니까 겉으로는 충성하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정조 임금을 그렇게 존경하지 않았던 것이다.
홍국영이 그처럼 ‘강한 자신감’을 품을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이와 관련하여 그의 가문 배경이나 수려한 외모 또는 탁월한 언변 혹은 좋은 머리 등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홍국영은 정조 임금과 가장 가까운 존재인 효의황후를 죽이려 했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정조 임금에게 내침을 당한 뒤에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도리어 원통한 마음에 화병을 앓다가 죽었다. 그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그저 분하기만 했던 것이다.
이는 정조 임금에 대한 그의 충성심이 그렇게 순결하지는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의 충성심은 순도가 거의 바닥에 근접한 것이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정조 즉위 이후의 상황을 본격적으로 다루게 될 <이산>의 이후 방영분에서 홍국영의 ‘변심’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홍국영이 자기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 정조의 후궁으로 들어앉힌 원빈 홍씨의 행보도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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