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19575

일본에서 더 유명한 한국인 '왕인박사'
[대마도, 우리 땅이 아니었네 ⑦] 왕인박사가 처음 닻을 내린 땅 와니우라
11.08.31 09:44 l 최종 업데이트 11.08.31 09:44 l 이상기(skrie)


▲  한국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와니우라와 우니지마 ⓒ 이상기

원통사를 떠난 우리는 39번 지방도를 따라 히다카츠로 간다. 이 길은 킨(琴)까지 바닷가를 따라 나 있어 경치가 좋다. 킨을 지나면 도로는 내륙으로 이어지는데, 이 길이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모미지가이도(もみじ街道)다. 그러나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아 녹음만이 울창하다. 단풍가도를 빠져 나오니 길은 다시 해안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슈시, 오마스, 하마구스를 거쳐 히다카츠항에 도착한다.

히다카츠는 가미쓰시마마치(上對馬町)의 중심도시로 상가와 음식점이 많은 편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와니우라(鰐浦)로 향한다. 와니우라에는 왕인박사 현창비가 있다. 비가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한다. 와니우라는 오우라(大浦)를 지나 한국전망대로 가다 잠깐 바다 쪽으로 가면 만날 수 있다. 왕인박사는 백제 사람으로 일본에 천자문과 논어 등 학문을 전파했다고,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나온다.


▲  왕인박사 현창비 ⓒ 이상기

왕인의 일본식 이름이 와니(和爾, 和珥)며, 와니우라의 옛 이름이 와니노츠(和珥津)다. 나루에 포구가 있는 것이니 진(津)이 나중에 포(浦)로 바뀐 것이다. 와니우라라는 지명은 왕인박사가 처음 기착한 포구라는 뜻으로 생겨났다고 한다. 가능한 주장이다. 현재 왕인은 일본에서 학문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특히 큐슈와 오사카에 그를 추모하는 신사와 궁이 많이 남아 있다. 

차에서 내려 왕인박사 현창비를 보는데, 비가 너무 쏟아져 오랫동안 머물 수가 없다. 현창비를 한 번 보고, 현창비를 해설한 오석을 한 번 보고 차로 돌아온다. 왕인박사는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더 유명한 사람이다. 2000년대 들어 그에 대한 추모사업과 탄생지 성역화 작업이 이루어졌다. 현재 전라도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 월출산 서쪽 자락에 왕인박사 유허지가 대대적으로 조성되어 있다.

부산과 거제도까지 보이는 한국전망대


▲  우니지마의 항공자위대 ⓒ 이상기

와니우라에서 산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한국전망대가 나온다. 한국전망대는 해안단구의 높은 지형에 지어진 팔각정으로 왼쪽에 와니우라, 앞에 우니지마(海栗島), 오른쪽에 토요(豊)가 보인다. 우니지마에는 현재 항공자위대가 위치하고 있어 섬 전체에 건물과 항공정찰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우니지마 너머로 부산이 보인다고 하는데, 비 때문에 볼 수가 없다. 전망대 안에 있는 사진으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전망대 안에는 한일교류사에 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이 지역의 자연과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사진도 걸려 있다. 그렇지만 이들 자료는 다른 곳에서도 수없이 본 것이라 우리들의 관심을 별로 끌지 못한다. 나도 밖으로 나와 팔각정 밖을 한 바퀴 돌며 주변에 보이는 경관을 감상한다. 이곳은 5월 이팝나무꽃이 필 때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하얀 이팝나무꽃이 와니우라 주변의 파란 바다와 어울려 멋진 풍경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이팝나무는 대륙계 식물로 한반도에서 넘어온 것이다.


▲  조선역관사 순난비 ⓒ 이상기

한국전망대에서 내려오면 조선역관사 순난비를 만나게 된다. 대마도주 소우 요시미치(宗義方)의 통치시기인 1703년 2월 5일 조선의 역관들이 대마도를 방문하게 되었다. 1703년이라면 아메노모리 호슈가 조선어를 배우기 위해 부산으로 온 해다. 그렇다면 아메노모리 호슈의 권유로 대마도에서 이루어지는 행사를 축하하기 위해 한천석을 정역(正譯), 박세량을 부역(副譯)으로 하는 108명의 조선인이 3척의 배에 나눠 타고 와니우라를 향했을 것이다. 

그런데 악천후를 만나 배가 좌초되었고, 배에 타고 있던 108명의 조선인과 항해를 담당하던 일본인 4명이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이때 죽은 사람들의 명단이 종가문서로 보관되고 있는 사료 중 <도해역관병종자성명(渡海譯官並從者姓名>이라는 소책자에 남아 있다. 이들을 추모하자는 의견이 모아졌고, 1991년 3월20일 한·일 공동으로 추모비를 세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 위치는 조난현장이 내려다보이는 한국전망대가 된 것이다.

대마도에서 가장 멋진 해수욕장 미우다


▲  미우다 해수욕장 ⓒ 이상기

전망대를 내려오니 비가 조금씩 그치기 시작한다. 이제 토노사키(殿崎) 안에 자리 잡은 대마도 최대의 해수욕장 미우다로 간다. 입구에 일본의 해안 100선에 뽑힌 미우다하마(三宇田浜)라는 표지석이 보인다. 바다 쪽으로 대마도에서 처음 보는 모래사장 해수욕장이 펼쳐진다. 대마도는 산이 바다로 바로 떨어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심이 깊고, 해안에 넓은 공간을 만나기 어렵다. 그나마 미우다 해수욕장과 모기(茂木) 해수욕장에서 모래사장을 볼 수 있다.

미우다 해수욕장은 모래사장뿐 아니라 주변 경관과 해수욕장의 바위가 어우러져 정말 멋진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그렇지만 에메랄드빛이라는 물이 흐린 날씨 때문에 조금 선명하지 않아 유감이다. 그동안 바닷물에 손발 한 번 담가보지 못한 회원들이 신발을 벗는다. 그리고 바위 가까운 곳으로 들어가 모래와 바위의 촉감을 즐긴다. 물이 무릎까지 시원하게 차오른다.


▲  바다쪽에서 바라본 모래사장과 숲 ⓒ 이상기

마침 썰물 때인지라 해변의 바위들이 대부분 드러나 있다. 그 바위 위로는 해송이 자라고 있어 고고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바위에는 또한 갯가에 자라는 풀들이 붙어 있고, 물이 닿는 곳에는 패류들의 껍질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해수욕장 옆으로는 방가로 같은 것이 지어져 있는데, 야영하는 사람들을 위한 숙소라고 한다. 또 해수욕장 옆 숲에는 전망대가 있어 해수욕장 전체를 조망할 수도 있다.

부산땅으로 돌아가는 항구 히다카츠항


▲  히다카츠항 ⓒ 이상기

미우다 해수욕장에서 마지막 남은 시간을 보낸 회원들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버스를 탄다. 우리들의 다음 목적지 히다카츠항까지는 버스로 15분 정도 걸린다. 히다카츠항은 국제선 터미널이 있는 대마도의 두 개 항구 중 하나다. 하나는 우리가 대마도로 들어올 때 이용했던 이즈하라항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 우리가 부산으로 출항할 히다카츠항이다.

그렇지만 히다카츠항은 이즈하라항에 비해 규모가 작다. 히다카츠를 중심으로 한 가미쓰시마마치에는 4600명 정도의 주민만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면소재지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그러므로 히다카츠 사람들의 생업에 한국 관광객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큰 편이다. 지난 번 일본 동북지방의 대지진으로 한국관광객이 일본을 찾지 않게 되었고, 아무 관련도 없는 대마도에까지 관광객이 끊겨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  히다카츠 ⓒ 이상기

그나마 6월부터 국제여객선 운항이 재개되어 대마도에 숨통이 트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가는 곳마다 대마도 사람들이 우리를 더 친절하게 대하는 것 같다. 히다카츠항에 도착하니 오후 2시 30분이다. 우리가 타고 갈 배는 3시에 출항한다. 시간이 30분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출국수속은 아주 간단하다. 여권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여권에 출국도장을 찍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

이제 우리는 배를 향해서 간다. 배는 우리가 타고 왔던 씨 플라워호다. 잠시 표를 가지고 있는지 점검한다. 배로 가는 길에 나는 히다카츠항의 자연풍경을 다시 한 번 살펴본다. 히다카츠, 한적하고 조그만 어항이다. 그런데 한쪽으로 해상보안청 소속의 순시선도 보인다. 그러고 보니 이곳이 해상보안청의 작은 지부가 있을 법하다.


▲  금석성 누문 너머로 보이는 유명산 ⓒ 이상기

이제 나는 배에 오른다. 이 배를 타는 사람들은 모두 한국 사람들이다. 우리처럼 문화유산을 보러 온 사람들도 있지만, 등산을 하러 온 사람과 낚시를 하러 온 사람들도 꽤나 많다. 특히 등산을 하러 온 산악회 팀이 여럿 보인다. 나는 그들에게 어느 산을 등산했는지 물어 본다. 그러자 유명산(有明山)이라고 대답한다. 이즈하라 근교에 있는 558.3m의 산으로, 대마도 사람들이 아리아케야마라고 부른다. 특히 유명산과 백악(白嶽)은 대마도의 문화와 관련이 깊어 꼭 한 번 올라야 할 산이다.

배에 오르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다. 내 자리를 찾아 앉으니 한국의 TV가 나온다. 벌써부터 우리나라라는 느낌이 든다. 배에는 빈자리가 하나도 없다. 대마도 뱃길이 열리고부터 매번 이렇게 만석이라고 한다. 이제 1시간 50분 후면 부산항에 도착한다. 또 히다카츠항은 대마도 북동쪽 끝에 있기 때문에 출항하면 바로 바다로 나가 육지를 볼 수가 없다. 그래서 경치를 감상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  히다카츠항의 씨 플라워호 ⓒ 이상기

나는 지금까지 2박3일간 해온 여행을 돌이켜 본다. 생각보다 알찬 여행이었다. 처음 민박을 한다고 해서 조금 걱정을 했고, 가이드에 대한 걱정도 했던 게 사실이다. 가이드인 김나영씨의 경우, 전문성은 조금 떨어지지만 나름대로 성심성의껏 안내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예를 들어 우리가 대마도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 있는 원통사를 가고자 했을 때 흔쾌히 응해 준 것도 고마운 일이다. 

문화유산 답사라는 이름으로 떠나는 여행은 늘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주어진 시간에 최대한 많은 것을 보려고 하지만, 시간이 항상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계획보다 많은 것을 보았다. 또 개인적으로도 자유 시간을 이용, 두세 군데 문화유산을 더 볼 수 있었다. 대마도의 문화유산을 보고 나니 이곳이 마치 우리 땅인 것처럼 느껴졌다. 정말 언어만 뺀다면 자연과 문화가 우리와 다를 게 없다. 그렇지만 현재 대마도는 나가사키현에 속한 일본 땅이 분명하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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