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04525

오사카 히라카타시에 있는 왕인 박사 무덤
일본 간사이 지역을 찾아서19 - 붕어빵 왕인공원
09.04.07 09:18 l 최종 업데이트 09.04.07 09:18 l 박현국(aoyama6156)


▲  왕인 무덤 ⓒ 박현국

마침 이돈삼 기자님이 쓰신 '벚꽃 아래서 왕인 박사와 데이트를'(2009 년 4월 4일)이라는 오마이뉴스 기사 잘 보았습니다. 저는 이틀 전 이곳 일본에서 왕인 박사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는 곳에 다녀왔습니다.
왕인 박사의 무덤이 있다는 왕인공원에 갔습니다. 저희는 처음 왕인공원 안에서 여기저기 뒤져가면서 왕인 무덤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어디에도 왕인의 무덤은 없었습니다. 왕인 무덤은 왕인공원에서 동북쪽으로 500미터쯤 떨어진 마을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왕인 무덤을 가게 된 경위와 느낌 소감을 간단히 적어보고자 합니다.  

4월 2일 입학식으로 바쁘게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잠깐 연구실에 들렀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히로시마 대학에 근무하시는 윤 교수님이 갑자기 전화를 하셔서 한반도 역사와 관련된 교토 시내 진자(神社)를 몇 군데 다녀 보고 싶은데 시간이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마침 시간이 있어서 괜찮다고 하고 다음 날 4월 3일 교토 역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  왕인 무덤 앞에 지은 백제문 ⓒ 박현국

4월 3일 아침 윤 교수님을 만나 히라노진자(平野神社), 니조조(二条城), 후시미 이나리 진자(伏見稲荷神社), 고쇼(御所) 등을 답사했습니다. 윤 교수님께서 이제 오사카에 있다는 왕인 박사 무덤을 가보고 싶은데 시간이 없으면 오늘밤 자고 내일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조사해 오신 자료를 보니 왕인 박사의 무덤은 오사카 시내가 아니고 오사카후(大阪府) 히라카타시(枚方市)라는 곳이었습니다. 

히라카타시는 오사카시의 중심에서 동북쪽 끝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사카시보다는 교토후(京都府)와 이웃하고 있습니다. 지도상으로 확인해본 결과 전차로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당장 지금 한번 자동차로 가보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편의점에서 오사카부 지도를 사서 확인하면서 찾아갔습니다. 

이돈삼 선생님이 이미 말씀하신 것처럼 왕인 박사는 백제 사람으로 서기 286년 무렵 32세의 젊은 나이에 일본 오우진텐노(応神天皇)의 초청으로 논어와 천자문을 품고 일본으로 건너가 그들에게 논어와 천자문을 전해주고 일본에 아스카 문화를 꽃피게 하신 분입니다. 왕인에 대한 기록은 일본 역사책인 고사기(古事記)나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  왕인 무덤 찾아 가는 길 ⓒ 박현국

천자문 덕분에 문자가 없던 당시 일본 사람들은 비로소 사람다운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공자의 논어는 비록 중국의 책이지만 인 사상을 중심으로 사람됨의 기본을 가르치는 책입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은 문자를 통하여 문화를 전수, 학습, 전승시키는 것이고 사람됨의 근본을 아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문자는 간단하고 쉬운 것이 좋지만, 사정상 문자가 있는지, 없는지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문명과 야만을 구분 짓는 척도가 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왕인 박사가 일본에 끼친 영향은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합니다. 

한반도는 중국 대륙과 강을 사이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비록 먼 길을 가야하지만 비교적 중국과 쉽고 간단하게 접촉하고 교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바다로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직접 배를 타고 가서 만나거나 전해주지 않으면 교류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험난한 뱃길을 이용하여 천자문과 논어를 전해주는 일은 목숨을 건 일이었습니다. 그 험한 길을 각오하고 왕인 박사는 전라남도 영암 포구를 떠나 일본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일본 역사 기록에 나오는 왕인 박사가 천자문과 논어를 전했다고 하는 기록의 사실성을 떠나서 왕인 박사는 천자문과 논어에 능통하여 당시 일본 왕실의 초청을 받았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 것입니다. 

한국 사람의 입장에서 왕인은 자신의 생명을 무릅쓰고 일본에 천자문과 논어를 힘겹게 전해준 인물입니다. 일본 사람들에게 한자를 통해 언어생활이 가능하게 했고, 인간다운 인 사상을 실천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왕인의 그러한 업적을 역사 기록 이외의 현실 속에서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  백제왕신사 ⓒ 박현국

왕인 공원 안에는 주물민속자료관이나 여러 운동시설, 공원건립 기념탑이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데 어느 곳에도 왕인에 대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마치 붕어빵에 붕어는 전혀 들어있지 않고 형태만 붕어 비슷하게 만든 것과 아주 똑같습니다. 왕인 무덤은 공원에서 동북쪽으로 500 미터 정도 떨어진 마을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찾아가기도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왕인 묘는 오사카후가 1938년 사적으로 지정하고, 1988년 사적 지정 50 주년을 기념하여 한일친선문화협회가 무덤 앞에 재단, 향로, 꽃병을 봉헌하였습니다. 2006년 한일문화협회 창립 30주년을 기념하여 오사카후의 허가를 받아 왕인 묘 앞에 백제 문을 건립하여 오사카 부 교육위원회에 기증하였습니다. 이 백제문을 건립하는데 사용된 나무, 기와, 건축가 등은 거의 모두 한국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직접 가져오거나 와서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한일친선문화협회와 전라남도 영암군은 왕인 박사를 기억하고 그를 기리기 위해서 많은 노력과 정성과 돈을 들여서 왕인 박사 무덤을 장식하고 백제문을 지어서 오사카부에 기증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마을 가운데 있어서 자동차 한 대 세워둘 곳이 없습니다. 앞길은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입니다. 

영암에서는 왕인 박사를 기리기 위해서 영암왕인축제(2009.4.4~4.7)를 열면서 왕인에 대한 귀한 뜻을 새기고 있습니다. 정작 일본에서는 왕인에 대해서 전혀 말이 없습니다. 그저 조용할 따름입니다. 돈을 빌려준 사람은 자신이 능력이 있어서 돈을 빌려 주었다고 자랑하지만 돈을 빌려 받은 사람은 부끄러워 내세우지도 못하고 얼굴을 들지 못하나 봅니다. 

일본에서 고대 문화는 한반도를 통하여 한반도에 살던 사람에게서 받아들였지만 자신들은 서구 근대화에 성공하여 한반도를 식민지로 지배하여 한반도를 근대화시켰다는 일본 사람의 자만심의 산물일지도 모릅니다. 

한국 사람들은 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외국에서 한국 것이라고 하면 좋아하고 자신의 분신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정작 일본 사람들은 그것들이 개인 자신의 이익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따져보는 것 같습니다. 전라남도 영암군의 왕인문화축제를 깎아내리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돈삼 기자님의 기사(벚꽃 아래서 왕인박사와 데이트를)에 의하면 이 축제에서 일본 전통문화체험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서로 가까운 나라로서 사이좋게 지내는 것은 중요하고 필요한 일입니다. 왕인 박사의 뜻을 기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다만 일본에서는 조용하고, 마을 안에 조그맣게 여기고 있는 듯한 인상입니다. 영암왕인문화축제에서 일본 문화 체험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일본 사람들도 많이 와서 같이 즐겼으면 합니다.  

왕인박사무덤 부근에 있는 307번 도로 부근에서 서쪽 JR 히라카타 역을 향해 버스를 타고 가다가 JR 히라카타 역 조금 못 미친 곳에 백제왕신사(百濟王神社, 구다라오우진자)와 백제사터가 있습니다. 백제왕신사는 백제의 아좌태자(阿佐太子)와 그의 자손들이 대대로 살던 곳이라는 설과 그 분들을 제사지내던 곳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아좌태자는 백제 제27대 위덕왕(威德王)의 아들로서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의하면 서기 597년(위덕왕 44) 일본에 가서 쇼토쿠타이시(聖德太子, 성덕태자)의 스승이 되었고, 그의 초상화를 그렸다고 합니다

왕인무덤 가는 법 

오사카역에서 JR오사카간조센소토마와리(大阪環状線外回り) 덴토지행(天王寺行)을 타고 가다가 세 번째 역인 교바시역(京橋)에서 JR가타초센 카이소쿠(片町線快速) 도시샤마에행(同志社前行)으로 갈아타고 가다가 여섯 번째 역인 나가오(長尾)역에서 내려 1 킬로 미터쯤 걸어가면 됩니다.    

참고문헌, 
야후코리아 백과사전

덧붙이는 글 | 박현국 기자는 일본 류코쿠(Ryukoku, 龍谷)대학 국제문화학부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