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yi-sunsin.com/02battle/04_01_02.jsp
그러나 밀물이 밀려들고 기회를 포착한 이순신은 전선을 돌려 거북함으로 하여금 왜적선 속으로 돌진하게 하여 천자·지자·현자·황자 등 각종 총통을 발사하도록 하고, 뒤따라 다른 전선들도 공격하도록 했다. 이순신을 뒤따른 여러 전선들도 일시에 12척의 왜선을 향하여 모여들면서 장전 및 편전, 화전을 쏘고, 천자·지자총통에 대장군전·장군전·철환 등을 넣고 발사했다.
이순신 함대의 집중 포화 공격을 받은 왜적들은 계속 항전을 해보았으나, 결국은 바다 속으로 거꾸러지는 자와 도주하는 자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더욱이 언덕 밑을 수비하는 병사들도 높은 언덕으로 기어오르면서 다시는 대응할 생각을 못하였다.
여기에 정박하고 있는 왜선은 우리 판옥선만한 것이 9척, 중소선(中小船)이 12척, 모두 21척이었다. 그런데 이 중에서 가장 큰 배에는 누각을 세워 배의 높이가 30자나 40자쯤 되었으며, 이 배는 왜적 대장의 지휘선인 듯 했다. 그리고 이 대장선 주위에는 붉은 비단으로 된 휘장을 두르고, 사방에 누른 글씨를 썼으며 앞면에는 붉은 일산(日傘)을 세우고, 그 안에 구루지마 쓰지라는 지휘관이 있었다.
새벽에는 왜병들은 남겨 둔 전선에 함께 타고서 나오고 있었다. 이때 전부장 이순신(李純信)이 잠복해 있던 군사들과 함께 이들을 공격하였다. 이러한 기습을 견디지 못한 왜병들은 바닷속으로 뛰어들었으며, 24살 정도로 보이는 적장과 왜병 8명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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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출전
주요현황
전투개요
상황도(사천, 당포, 당항포, 율포해전)
제 1차 출전에서 모두 승리를 거둔 조선 수군들은 사기가 충천했고, 다음 출전을 위해 군사들을 휴식시키며 전선과 무기를 정비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수군의 남해해전 승전보는 조선조정과 백성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성을 버리고 달아났던 수령들은 제자리로 돌아왔으며, 곳곳에서는 의병들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순신은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6월 3일 여수 앞바다에서 합세하여 출동하기로 했다. 그런데 27일 원균으로부터 급보가 왔다. 적선 10여 척이 이미 사천(四川) 땅 곤양(昆陽)으로 쳐들어와 여러 고을이 분탕질당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순신은 이 급보를 받고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다급하게마나 휘하 장병들만 이끌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순신은 여수 본영은 군관 윤사공이 지키게 하고, 조방장 정걸에게는 판옥선 1척을 주어 흥양현을 지키도록 했다. 그리고 우수영 이억기의 함대는 뒤따라오게 하고, 전선 23척을 이끌고 본영을 출항하여 두 번째로 영남 앞바다를 향해 전진했다. 제 2차 때엔 출정 때에는 거북함을 처음으로 거느리고 나갔다. 이순신은 원균과 만나기로 약속한 노량에 이르자, 원균은 하동(河東) 선창에서 전선 3척을 이끌고 나왔다.
멀지 않은 곳에서 왜선 1척이 곤양(昆陽)에서 사천방면으로 향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 왜선은 그들 함대의 전초 경계를 위한 척후선인 것 같이 보였다. 적선을 보자마자 전부장 이순신(李純信)과 남해 현령 기효근 등이 뒤쫓아 적선을 붙잡아 불태워버렸다.
사천해안에는 12척의 누각대선이 줄을 지어 있었다. 선창에는 400명이 넘는 왜적들이 진을 치고 아군을 향해 조총을 쏘아댔다. 좁은 해안에서 왜적들을 이기기 어렵다고 판단한 이순신은 왜적들을 바다로 유인하기로 했고 뱃머리를 돌려 후퇴하기 시작했다.
사천해안에는 12척의 누각대선이 줄을 지어 있었다. 선창에는 400명이 넘는 왜적들이 진을 치고 아군을 향해 조총을 쏘아댔다. 좁은 해안에서 왜적들을 이기기 어렵다고 판단한 이순신은 왜적들을 바다로 유인하기로 했고 뱃머리를 돌려 후퇴하기 시작했다.
조선수군의 함대가 후퇴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던 왜적들은 뒤따라 기세를 올리면서 진지에서 내려와 그들의 배에 오르고 있었다. 왜적들은 산 위에서 언덕 위에서 배위에서 서로 호응해가며 총탄을 퍼붓고 있었다.
그러나 밀물이 밀려들고 기회를 포착한 이순신은 전선을 돌려 거북함으로 하여금 왜적선 속으로 돌진하게 하여 천자·지자·현자·황자 등 각종 총통을 발사하도록 하고, 뒤따라 다른 전선들도 공격하도록 했다. 이순신을 뒤따른 여러 전선들도 일시에 12척의 왜선을 향하여 모여들면서 장전 및 편전, 화전을 쏘고, 천자·지자총통에 대장군전·장군전·철환 등을 넣고 발사했다.
이순신 함대의 집중 포화 공격을 받은 왜적들은 계속 항전을 해보았으나, 결국은 바다 속으로 거꾸러지는 자와 도주하는 자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더욱이 언덕 밑을 수비하는 병사들도 높은 언덕으로 기어오르면서 다시는 대응할 생각을 못하였다.
사천해전도 - 제승당
이날의 교전은 너무나 치열했기 때문에 아군의 피해도 많았다. 나대용과 이설(李渫)이 화살을 맞아 부상을 당했으며, 이순신도 처음으로 왼편 어깨에 총탄을 맞아 관통상을 입었다. 이순신은 피가 발뒤꿈치까지 흘러내렸지만, 끝까지 활을 놓지 않고 독전하다가 싸움이 끝난 뒤에 칼끝으로 살을 쪼개고 철환을 파내었는데 그 깊이가 수 촌 이나 되었으며, 모든 장령은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고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순신은 교전 중 부하들의 사기를 염려하여 자신의 고통을 참았던 것이었다.
사천해전에서 승리를 거둔 이순신의 함대는 6월 1일 사량도로 진을 옮겨 병사들을 쉬게 했다. 6월 2일 8시경, 휴식 중이던 이순신 함대는 왜선이 당포에 정박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곧바로 함대를 지휘하여 당포로 향해 나갔다.
이순신은 당포에 도착하여 적들을 살펴보니 해안에 머무르고 있는 왜병들은 무려 300여 명에 이르렀으며, 그 중의 약 반수는 성내에서 노략질과 민가를 불사르는 만행을 자행하고 있었으며, 나머지 반은 성밖의 험준한 곳에다 진을 치고 우리 선단을 향해서 조총 쏘았다.
여기에 정박하고 있는 왜선은 우리 판옥선만한 것이 9척, 중소선(中小船)이 12척, 모두 21척이었다. 그런데 이 중에서 가장 큰 배에는 누각을 세워 배의 높이가 30자나 40자쯤 되었으며, 이 배는 왜적 대장의 지휘선인 듯 했다. 그리고 이 대장선 주위에는 붉은 비단으로 된 휘장을 두르고, 사방에 누른 글씨를 썼으며 앞면에는 붉은 일산(日傘)을 세우고, 그 안에 구루지마 쓰지라는 지휘관이 있었다.
거북함은 누각 대선 밑으로 접근하면서 용 아가리에서 현자철환을 치쏘면서, 천자총통과 대장군전(大將軍箭), 장군전(將軍箭) 발사하여 대장선을 깨뜨리기 시작하였고, 뒤따른 여러 전선들도 철환과 편전(片箭), 그리고 승자총통(勝字銃筒) 등을 쉴 사이 없이 발사하여 거북함의 활동을 도왔다.
배 위에는 사람 한 명 없이 용머리를 치켜들고 달려드는 이 거북함은 총환을 맞으면서도 천연스럽게 돌진하기만 했다. 실로 거북함은 해상의 괴물이었고, 그 앞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배도 이길 수 없는 무적함(無敵艦)이었다.
배 위에는 사람 한 명 없이 용머리를 치켜들고 달려드는 이 거북함은 총환을 맞으면서도 천연스럽게 돌진하기만 했다. 실로 거북함은 해상의 괴물이었고, 그 앞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배도 이길 수 없는 무적함(無敵艦)이었다.
당포전경 이렇게 접전하는 동안, 왜적들은 사기를 잃기 시작했고 싸움을 지휘하던 왜장 구루시마는 중위장 권준이 쏜 화살을 맞고 쓰러졌다. 우척후장 김완과 군관 진무성은 화살을 맞고 떨어지는 적장수의 목을 베었다. 이때부터 왜병들은 일시에 흩어지면서 가까운 육지로 도망치기 시작하였으며, 또한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이순신의 함대는 일제히 맹격을 가하여 왜선 21척을 모두 불태우고 깨뜨렸다. 당포해전이었다.
6월 4일 아침, 이순신은 전 함대를 거느리고, 또 다시 전일의 해전지인 당포 앞 바다로 나아가 척후선으로 하여금 왜선을 수색하도록 명하였다. 그때 전라 우수가 이억기가 전선 25척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사천과 당포해전으로 지쳐있던 군사들에게 지원군은 더할 나위없는 반가움이었다. 군사들은 모두 기뻐하였으며 사기는 크게 앙양되었다. 이순신은 이억기와 원균과 함께 전선 51척으로 합동함대를 편성하고 앞날의 작전을 위해서 새로운 계획을 논의했고 전 함대를 착량(鑿梁)으로 이동하여 밤을 지냈다.
다음 날인 5일에는 안개가 개이기를 기다리는 동안 적들의 정황을 염탐하게 하고, 전투준비를 철저히 하도록 했다. 적의 함대가 당항포로 이동하여 정박하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3도 수군의 연합함대가 당항포 앞바다에 다다르자, 이순신은 치밀한 계획을 강구하여 먼저 3척의 전선으로서, 포구내의 지형을 상세히 정찰하게 했다. 몇 시간이 지나고 정찰선은 적을 있음을 알려왔다. 이순신은 전선 4척을 포구에 머물러 복병하게끔 지시한 후 나머지 전선을 거느리고 포구 안을 향하여 들어갔다. 이순신 함대가 소소강(召所江) 서쪽 기슭에 이르니 왜선들 검은 칠을 한 왜선 26척이 줄을 지어 있었다.
전투는 왜선의 선공으로 시작되었고, 이순신은 왜선을 포위하여 공격하였다. 그리고 큰 배를 목표로 거북함을 돌진시켰고, 다른 배들도 그쪽을 향해 집중 공격을 하였다. 왜군들은 점차 불리해지자 육지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이에 이순신은 포위망 한 모퉁이를 열어 그들의 퇴로를 내주었다.
왜선들은 대장선을 중심으로 중선과 소선들이 열린 수로를 향하여 빠져나왔다. 이순신은 적의 함대가 한 가운데에 나왔을 때 공격 명령을 내렸다. 이순신은 미리 배치해 놓았던 좌우의 전선들에게 명령하여 즉시 포위하게 하고, 전선들은 일제히 적선들을 향해 포를 발사했다. 거북함과 전선의 집중공격으로 대장선에는 불길이 일어났고 동시에 적장도 화살에 맞아 바닷속으로 떨어졌다. 이를 본 다른 대선 4척은 급히 북쪽으로 외양으로 퇴각하기 시작했다.
이를 본 이순신과 이억기 함대의 여러 장수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즉시로 포위하여 맹격을 가하니, 지휘관을 잃은 왜병들은 기슭을 타고 도망하기도 했고, 또 다른 일부는 산으로 도망치는 것이었다. 사기충천한 이순신 함대의 군사들은 창검과 화살 등을 갖고 이를 추격하여 43명의 목을 베고, 일부는 대부분의 왜선을 불태워 버리고 짐짓 한 척만을 남겨 놓았다. 이 후, 이순신은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으므로 이억기, 원균과 함께 모든 전선을 포구 바깥으로 이동하게 하여 내일의 작전을 논의하고 하룻밤을 지냈다.
새벽에는 왜병들은 남겨 둔 전선에 함께 타고서 나오고 있었다. 이때 전부장 이순신(李純信)이 잠복해 있던 군사들과 함께 이들을 공격하였다. 이러한 기습을 견디지 못한 왜병들은 바닷속으로 뛰어들었으며, 24살 정도로 보이는 적장과 왜병 8명을 죽였다.
전쟁이 한창일 때, 원균과 남해 현령 기효근 등은 뒤따라 와서 물에 빠져 죽은 왜병들은 모두 건져내 목을 베어 전공을 올리는 데에만 여념이 없었다. 때문에 군사들에 비난을 받았고, 이렇게 베인 목은 무려 50여 개나 되었다. 이날의 전투가 당항포해전이었다.
그리고 이날은 비가 내리고 바닷길을 분간하기 어려웠으므로, 그대로 당포 앞바다에서 군사들을 쉬게 한 뒤, 저녁에 마루장(고성군 동해면)으로 이동하여 밤을 지냈다. 7일 아침, 사방에 척후선을 보내 왜적선을 수색하게 했고 정오쯤에는 영등포 앞바다에서 왜군의 대선5척과 중선 2척을 발견했다. 모든 전선들은 율포 앞 바다까지 추격하자, 왜병들은 전의를 상실한 채 노획한 물건들을 모두 바다에 버리고 도주했다. 정운, 이몽구와 같은 장수들이 끝까지 쫓아가 왜선을 격파했다. 율포해전이었다.
이 네 번의 해전을 통틀어 당포해전이라고 부르며, 이순신은 이 해전의 승리로 자헌대부(資憲大夫 : 정2품)의 벼슬로 승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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