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부터 뉴스까지 퍼졌다…'일베'의 역습
[주장] 사회 곳곳에서 사용되는 반사회적 일베 용어…상식 지키려는 노력 필요하다
13.08.22 10:22ㅣ최종 업데이트 13.08.22 16:49ㅣ김성규(ksgy7047)
▲ 극우 성향의 커뮤니티 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 이른바 일베 홈페이지 ⓒ 일간베스트 저장소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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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사회가 '일베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극우성향 사이트인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가 김대중, 노무현 두 전 대통령을 비하하기 위해 만들어 낸 은어와 사진들이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까지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자정 노력 정도로는 더 이상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는 모양새다. 반사회적인 게시물들로 인해 '일베충'이라 비난 받던 일베의 '역습'이라고 이야기 할만하다.
뉴스부터 연예계, 출판계까지 확산되는 '일베' 문화
▲ <SBS 8 뉴스>에 등장한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사진 ⓒ SBS
최근 SBS < 8뉴스 >에 일베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기 위해 만든 일명 '노알라' 사진이 등장해 논란이 됐다. 일본 수산물 방사능 공포에 대해 보도하며 내보낸 도표에 해당 이미지가 흐릿하게 찍혀 있었던 것. SBS 측은 곧바로 제작진의 실수를 인정하고 시청자를 비롯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가족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분주히 움직였지만 분노한 여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SBS 직원 중 한명이 일베 인증을 위해 일부러 방송 노출 사고를 일으켰다며 격앙된 반응까지 보이고 있을 정도다. 이에 < 8뉴스 >의 김성준 앵커는 21일 방송 마지막에 장문의 사과문을 읽고 "사실을 보도해야 할 뉴스가 실수로 저급하고 뒤틀린 정보를 전달했습니다. 제대로 고치겠습니다"라며 "사과문 한 번 읽고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SBS 뉴스를 지켜보는 시선을 두려운 마음으로 대하겠습니다"라며 거듭 사과의 뜻을 밝혔다.
노알라 파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Mnet <비틀즈코드2>의 '개꽐라' 해프닝으로까지 번졌다. Mnet <비틀즈코드2>에서 비속어인 '개꽐라'를 묵음처리하고 자막에 개와 코알라 시진을 넣으면서 일부 시청자가 '개노무'로 받아들인 것. <비틀즈코드2> 제작진은 이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묵음처리 된 말은 '개노무'가 아니라 '개꽐라'였다며, 이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발음이 비슷한 개와 코알라 그림을 사용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5월에는 대구 북구 동천동 홈플러스 칠곡점의 가전제품 매장 TV에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사진이 올라와 큰 파문이 일었다. 홈플러스 측은 즉시 사진을 삭제 조치하는 한편, 사과문을 게시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해 강력대처 했고, 그 결과 최주업체에 근무하는 20대 계약직 직원이 체포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찰은 노모씨를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사법처리할 방침이라 밝혔다.
문제는 이런 식의 '일베 논란'이 비일비재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연예계는 그야말로 일베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빠빠빠'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걸 그룹 크레용팝은 과거 '노무노무'와 '쩔뚝이' 등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일베 용어를 사용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 일로 인해 대중의 십자포화가 이어지고 행사 취소, 광고모델 경질 등 연이은 손해를 입게 되자 소속사 측은 "반인륜, 반사회적인 일베 같은 사이트와는 결코 상관이 없다"며 장문의 해명 글을 공식홈페이지에 게재했다.
▲ 최근 일베 논란으로 큰 곤욕을 치룬 걸그룹 크레용팝 ⓒ 크롬엔터테인먼트
앞서 지난 5월에는 걸 그룹 시크릿의 멤버 전효성이 라디오 <최화정의 파워타임>에 출연해 "시크릿은 개성을 존중한다. '민주화'시키지 않는다"고 말했다가 전격적으로 사과하는 일이 벌어졌다. 여기서 '민주화'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소수를 집단으로 폭행, 언어폭력을 하는 행위 등으로 쓰이는 일베 용어 중 하나다. 이 발언 이후, 시크릿은 각종 대학 행사가 취소되는 등 손해를 봤다.
전효성과 크레용팝 사건 이후, 일부 연예 기획사는 소속 연예인들이 일베 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거나 무심결에 일베 용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베와 한 번 엮이는 순간 엄청난 이미지 추락을 감수해야 할뿐더러 방송 출연은 물론이거니와 주요 수입원인 행사, 광고 캐스팅까지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일베 금지령'이 일종의 의무 사항이 된 셈이다.
일베 논란에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비단 방송계뿐만이 아니다. 출판업계 역시 무분별하게 노출되어 있는 일베 용어에 골치를 썩고 있다. 최근 출판사 미래인이 발간한 미국 작가 제임스 패터슨의 <내 인생 최악의 학교2>은 원작에서 '바보같이 당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된 'got dinked', 'dinked'를 '민주화'로 번역했다가 독자들의 격렬한 항의를 받았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작품이 다수의 온라인 서점에서 청소년 권장도서로 추천된 책이었다는 사실이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결국 미래인과 번역자 김아무개씨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 "'민주화'를 '바보같이 당하다'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해 민주화와 민주주의의 참뜻을 훼손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하신 그리고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모든 분께 큰 누를 끼쳐드린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사과문을 올리고 발간한 책 전량에 대한 회수 결정을 내렸다. 이 사건은 더 이상 일베 용어가 그들만이 사용하는 '소수의 언어'가 아님을 보여준 단적인 사건이 됐다.
일베 논란, 보수와 진보가 아닌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
▲ 크레용팝을 일베 논란에 휩싸이게 만든 문제의 트위터 글. ⓒ 크레용팝 트위터
최근 확산되고 있는 일베 문화는 과거처럼 단순한 은어 사용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고인을 모독하는 비하사진이 오프라인으로 유출되는 차원으로까지 변질되고 있다. 그 결과 일베 문화는 알게 모르게 생활 깊숙이 침투해 마트 같은 일상의 공간부터 뉴스, 예능으로 대표되는 방송계, 책을 발간하는 출판업계까지 흘러 들어가게 됐다.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만큼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개개인이 원래의 뜻을 왜곡하고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베 문화에 관심을 끊는 것이 일차적인 해결책이겠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우선 방송계에서는 더욱 일베 문화의 침투를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생각하고 제작 및 편집차원에서 무심결에 노출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일종의 거름망 작업을 통해 오해의 소지가 벌어지지 않도록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연예인을 포함한 방송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사적인 일베 활동까지 쫓아다니며 말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전국의 시청자들이 동시에 볼 수 있는 방송에서는 저속한 일베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건 방송윤리의 문제인 동시에 시청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아울러 방송인들은 SNS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그들의 SNS는 개인의 공간인 동시에 수십, 수백만의 사람이 함께 하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마땅히 의무와 책임이 뒤따른다. 크레용팝의 경우처럼 일베 용어를 유행어처럼 남발하는 일이 결코 반복 되서는 안 된다.
방송계보다 더 노력을 해야 하는 쪽은 출판업계다. 미디어가 아무리 세상을 지배한다고 해도 책은 여전히 인류가 자랑하는 집단지성의 원천이다. 이런 지성의 원천이 일베 문화를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비극이다. 철저한 검증과 검수를 통해 일베 용어를 사전에 걸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일베 문화에 대한 대중의 대처 역시 더욱 단호해져야 한다. 앞서 문제가 된 것처럼 반사회적인 문화를 유지한다면 일베를 대중문화의 범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이를 노출시키는 것에 대해 항의하고 엄중한 책임을 묻는 것은 대중의 권리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크레용팝에 대한 대중의 집단 항의는 다소 오해가 있기는 했지만 크레용팝과 소속사측이 SNS에 여러 차례 일베와 관련 된 글을 올렸다는 점, 이에 대해 비판하는 대중을 돼지로 모욕하고 오히려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오히려 '사필귀정'의 측면이 강하다.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는 대중의 이 같은 태도는 마녀사냥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려는 일종의 자정노력으로 봐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회 전체적으로 상식을 지키려는 노력 역시 절실하다. 정치적 입장은 분명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고인이 된 전 대통령을 극단적으로 비하하는 것도 모자라 민주화라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마치 빨갱이들의 폭동으로 폄하하는 것까지 용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일베는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베의 역습'은 더욱 소리 없이 강력하게 몰아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개개인과 그들이 속한 각 조직들이 일베 문화에 경각심을 가지고 상식적인 차원에서 대처해 나간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다. 민주주의 국가에 살면서 '민주화'를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는 시대. 지금이야말로 스스로의 언행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되새겨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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