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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은 왜 이성계를 왕으로 만들었을까
[조선왕조 오백년 참모열전: 정도전 1부]
13.10.22 21:01 l 최종 업데이트 13.10.28 11:28 l 김종성(qqqkim2000)
(우리 시대는 혼란스럽습니다. 혼란스러움은 과도기의 증상입니다. 과도기에는 현재 시대를 정리하고 다음 시대를 기획할 인재들이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참모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역사 발전에 기여하는 참모도 있지만, 해악을 끼치는 참모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존재하는 참모들과 앞으로 출현하게 될 참모들 중에서 옥석을 가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 옥석을 가리는 지혜를 역사 속에서 얻어 보자는 것이 이 시리즈의 취지입니다.- 기자말)
▲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태조 이성계 역을 맡은 고 김무생. ⓒ KBS
[기사수정 : 10월 28일 오전 11시 30분]
2008년 KBS 드라마 <대왕세종>에는 군사력을 갖춘 '고려황실 잔존세력'이 등장했지만, 실제로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성계를 전복시킬 만한 세력이 사라진 상태에서 조선이 세워졌기 때문이다.
물론 지식인들 중에는 이성계를 거부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들은 신왕조에 대한 협력을 거부하고 정치권과의 관계를 끊었다. 이로 인해 신왕조는 정통성의 콤플렉스를 짊어져야 했지만, 역설적으로 보면 이들의 탈(脫)정치화 덕분에 조선왕조는 정권의 안보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조선왕조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연착륙에 성공했다.
이성계의 출신을 고려하면, 이것은 상당한 성공이었다. 그는 여진족 거주지에서 여진족 군대를 거느린 상태에서 역사 무대에 등장했다. 그는 "우리 집은 고조부 때만 해도 전주에 살았다"고 항변했지만, 당시 사람들은 그가 여진족 지역에서 나왔다는 점과 그의 부하들이 여진족이라는 점을 중히 여겼다.
이성계는 또 다른 콤플렉스를 안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고려 주류사회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주류의 문화를 모르는 사람이 주류의 법과 제도에 입각해서 주류의 정권을 장악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일만큼 힘들다.
이 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성계는 신왕조를 창업했다. 흥미롭게도, 그는 이 과정에서 상당히 세련된 면모를 보여주었다. 최대한 합법적이고 단계적인 방법으로 신왕조를 세운 것이다. 그의 행보는 여진족 지역에서 성장한 무인의 행보라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최대한 합법적이고 단계적인 과정이란 게 무엇인지는 뒷부분에서 다시 언급한다.
콤플렉스 가진 이성계와 정도전의 만남
이성계가 그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정도전이라는 건국 설계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도전은 고려가 망하기 50년 전인 1342년에 출생했다. 그의 친가는 세습적인 향리(지방공무원)에서 중앙 공무원으로 변신한 가문이었다. 고려 말에 떠오른 신진사대부의 일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도전은 서얼의 혈통을 타고났다. 그의 외할머니는 승려와 여종 사이에서 태어나서 남의 첩이 되었다. 거기서 생긴 딸이 정도전의 어머니다. 이런 약점을 지닌 정도전은 타고난 두뇌와 아버지의 후원에 힘입어 당대 최고의 석학인 이색의 문하생이 됐다. 그는 스물한 살 때인 1362년 진사시험에 급제하고 관료 사회에 진출했다.
▲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정도전 역할을 한 고 김흥기. ⓒ KBS
정도전은 서른 살 때부터 공민왕의 신임을 받았지만, 공민왕은 정도전이 서른세 살 때 암살당했다. 그 뒤 우왕을 옹립한 이인임의 보수파 정권이 공민왕의 반(反)몽골 노선을 폐기하자, 정도전은 정면으로 맞서 저항했다가 서른네 살의 나이로 유배를 당한다. 함께 유배를 떠난 동지들은 다들 관직으로 복귀했지만, 정도전만큼은 2년 만에 유배가 풀린 뒤에도 복귀하지 못했다. 보수파들에게 단단히 미움을 샀던 것이다.
그 후 정도전은 재야를 맴돌며 후진 양성에 주력했다. 그렇게 30대 후반을 보내고 불혹을 맞이했지만, 기회는 여전히 오지 않았다. 관직에서 쫓겨난 지 8년이 됐을 때, 그는 마음을 굳힌다. 기회를 기다리지 않고, 찾아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마흔두 살 되던 해인 1383년, 정도전은 '귀인'을 찾아 동북방으로 떠난다.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개경의 유력자를 찾아갔겠지만, 그는 여진족들이 사는 곳으로 떠난다. 그가 간 곳은 이성계 장군의 군영이었다. 일반적인 지식인 같았으면, 최영이나 이인임 같은 사람을 찾아갔을 것이다. 이성계 같은 아웃사이더를 찾아간 것만 봐도 정도전은 특이한 사람이었다.
처음 만난 이성계에게 대뜸 건넨 정도전의 한마디. 그 말이 <태조실록>에 수록된 '정도전 졸기'에 실려 있다. "훌륭합니다. 이만한 군대로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이성계가 "거 무슨 말이오?"라고 묻자, "아, 이 정도면 왜구를 격퇴할 수 있겠다고요"라며 그는 말을 돌린다.
책략가 정도전과 무장 이성계는 이렇게 만났다. 한쪽은 머리밖에 없고 한쪽은 군대밖에 없는 두 사람이었다. 혼자의 힘으로는 더 큰 일을 할 수 없는 두 사람이었다. 이 만남을 계기로 두 아웃사이더 사이에는 세상을 뒤집기로 하는 무언의 약속이 성립했다. "아, 이 정도면 왜구를 격퇴할 수 있겠다고요"라는 대답의 속뜻도 이성계에게 정확히 전달됐을 것이다.
▲ 이성계가 압록강을 넘어 울라산성(오녀산성)을 점령한 사건을 묘사한 김태 화백의 그림. 이 전투에 관한 내용은 <고려사> 공민왕 세가 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그림은 서울시 용산구에 있는 전쟁기념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김종성
책략가 정도전과 무장 이성계의 세가지 전략
그로부터 9년 뒤, 두 사람은 구체제를 전복하고 신질서를 수립했다. 그 9년 동안 이성계는 정도전의 설계 하에 최대한 합법적이고 단계적인 행보를 걸었다. 이것은 아웃사이더들이 주류 사회의 최고 권력에까지 도달하는 데 필요한 전략적이고 세련된 행보였다. 그 행보 중에서 세 가지 사례만 살펴보자.
첫째, 명분 있는 군사행동. 최영과 동맹하여 이인임 정권을 붕괴시킨 뒤, 이성계는 우왕과 최영의 명령에 따라 5만 대군을 이끌고 요동 정벌에 나섰다. 최영의 의도에는 요동 정벌뿐만 아니라 이성계 토사구팽도 있었다. 그것을 간파했는지, 5만 대군을 이끈 이성계는 압록강 너머로 진군하지 않고 개경으로 군대를 돌린다. 이 과정에서 그는 시간을 기다리며 명분을 축적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성계는 압록강 위화도에 군대를 주둔시킨 상태에서 '이번 전쟁은 승산이 없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했다. 어느 정도 명분이 쌓인 뒤에, 그는 범(凡) 최영 라인인 조민수 장군을 끌어들여 군대를 유턴시킨다. 위화도 회군이라 불리는 쿠데타를 단행한 것이다. 그는 이 쿠데타로 최영을 무너뜨리고 이성계-조민수 공동정권을 수립했다.
둘째, 당근 제공을 통한 민심 획득. 조민수와 공동정권을 수립한 이성계는 국민적 신망을 받는 최영 장군을 죽이고 우왕에 이어 창왕까지 폐위시켰다. 조민수 역시 권력에서 밀려났다. 이성계 단독정권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부득이한 일이었지만, 이로 인해 이성계 정권의 인기는 급락한다. 그러자 이성계 정권은 과전법이란 토지개혁을 통해 민심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전세를 역전시킨다.
농업보다 유목업이 더 강한 여진족 거주지에서 성장한 인물이 토지개혁을 매개로 전세를 역전시키겠다는 발상을 하기란 쉽지 않다. 유목이나 반농반목(농업 절반, 유목 절반)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결코 친숙하지 않다. 농경지대에서 성장한 정도전의 기획이 없었다면, 그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 삼봉 정도전의 집이 있었던 서울 종로구청 주변 지역. 사진 오른쪽 위편에 ‘삼봉길’이란 안내판이 보인다.
ⓒ 김종성
셋째, 저절로 왕이 될 때까지 참고 기다리기. 이성계는 1389년에 창왕을 폐위하고 공양왕을 추대했다. 창왕을 폐위시킨 시점에 이성계의 세력은 이미 상당히 공고해졌다. 그렇지만 이성계는 무리하게 왕위를 탐내지 않았다. 공양왕이 스스로 왕위를 내놓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공양왕은 의외로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이성계 정권은 공양왕을 몰아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절대 무리수를 두지는 않았다. 이성계 정권은 왕실의 웃어른인 공민왕 부인의 결단을 빌려 정권을 인수했다. 고려 왕실의 웃어른이 공양왕을 폐하고 이성계를 왕으로 세우는 형식을 취했던 것이다. 왕조 국가에서는 남자 왕이 유고인 경우에 태후(대비)나 왕후를 비롯한 왕실 여성 어른들이 비상 대권을 행사했다. 이성계 정권은 이런 관행을 활용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이성계는 고려 태후의 결단에 의해 고려 왕권을 넘겨받는 형식을 취했다. 왕위에 오른 임신년 7월 17일(음력) 즉 1392년 8월 3일(양력)부터 계유년 2월 14일 즉 양력 1393년 3월 26일까지 이성계는 형식상으론 고려왕이었다. 1393년 3월 27일부터 정식으로 조선왕이었다. 실제로는 고려왕조를 무너뜨리면서도, 형식적으로는 고려왕조를 이어받아 조선을 세우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한마디로, 합법적인 강도의 형식을 취했던 것이다.
정도전이 없었다면?
여기에는 참모인 정도전의 인생경험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정도전은 아웃사이더 이성계와 유사한 처지에서 성장했다. 그는 아웃사이더인 서얼 출신으로 중앙 정계에 진입했고, 정치 낭인의 처지에서 중앙 정계에 복귀했다. 그는 주류 사회에 진입하려고 애쓰는 아웃사이더가 주류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비쳐지는지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이런 인물은 주류 사회의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주류 사회에 진입하는 방법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정도전은 '어떻게 하면 좀더 안정적인 방법으로 이성계를 고려 주류사회의 왕으로 만들 것인가?'를 고심했을 것이다. 이런 고민이 있었기에, 최대한 합법적이고 단계적인 '이성계 왕 만들기' 프로젝트가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이성계 옆에 정도전 같은 인물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이 점을 추론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정도전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을 때에 이성계 그룹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확인해보면 된다.
조선 건국 직전, 이성계 진영에서 이탈한 정몽주가 이성계 진영을 압박하면서 며칠 동안 정권을 잡은 적이 있다. 정몽주는 이성계의 브레인인 정도전을 유배 보냄으로써 이성계 진영을 마비시키려 했다. 이때 이성계 진영에서 갑자기 부각된 인물이 이성계의 아들인 이방원이다. 이방원은 정도전이나 이성계가 생각지도 못한 방식, 시도하지도 않았을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백주대낮에 수도 개경에서 철퇴로 정몽주를 죽인 것이다.
이런 야만적인 방식은 고려 지식인들이 이성계 정권에 환멸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이들 중 일부가 백년 가까이 조선왕조와의 타협을 거부한 데는 이방원의 돌발 행동도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성계 옆에 정도전이 없었다면, 이성계 정권은 매사를 이런 식으로 해결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이방원의 방식이 통할 수 있었던 것은, 이성계의 대권이 이미 공고해진 상태에서 이방원이 거사를 벌였기 때문이다. 만약 대권이 공고해지기 전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이성계 그룹은 건국 문턱에도 가지 못하고 쓰러졌을 것이다.
정도전이라는 특급 참모가 가세하지 않았다면, 주로 여진족으로 구성된 이성계 군단은 고려인들에게 야만적인 집단으로 비쳤을지도 모른다. 정도전이 아니었다면 이 집단은 '합법적인 강도'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다음 주에 2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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