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6252044001&code=940100


취준생 분노의 이면엔, 비정규직 사회가 낳은 '정규직 특권'

심윤지·이창준·조해람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입력 : 2020.06.25 20:44 수정 : 2020.06.25 21:40 


“일터에서 차별 목격해 정규직에 집착”

“배정된 예산 그대로면 신규채용 영향”

“당장 취업 급해…보안요원 현실 안보여”


25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3층 출발층에서 보안검색 직원들이 근무를 서고 있다. / 김창길 기자

25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3층 출발층에서 보안검색 직원들이 근무를 서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비정규직 보안검색요원 1902명을 직접 고용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청년층을 중심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여론이 또다시 나오고 있다. 1년2개월 전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ㄱ씨(29)도 그중 하나다. ‘로또 취업’이라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보안검색요원의 임금 수준은 과장됐고, 공기업 사무직 채용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는 언론보도를 본 이후에도 허탈한 마음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고 했다. ㄱ씨는 말했다.


“만약 그 사람들이 원래부터 연봉 3800만원 받는 인천공항 소속 정규직이었으면, 아무리 처우가 안 좋다고 해도 다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을걸요.”


ㄱ씨를 비롯한 청년들의 분노 뒤에는 한국 노동시장에서 특권이 된 ‘정규직’의 독특한 위상이 있다. 경향신문은 5명의 공무원·공기업 시험 준비생(공시생)에게 이번 논란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전환에 반대하는 이들은 그나마 남은 ‘좋은 일자리’까지 없어질 수 있음을 우려했다. 하지만 부정확한 언론보도와 비정규직에 대한 편견이 논란의 원인이라는 반론도 있다.


ㄱ씨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전까지 간호사로 일했다. 급여 수준이나 처우가 나쁘지 않은 정규직이었지만, 고질적인 인력난에 부서이동도 잦아 늘 불안했다. 예전 일터에서 목격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은근한 ‘급나누기’도 ㄱ씨가 정규직에 집착하는 계기가 됐다.


“똑같이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지만 병원 내 계급은 정규직인 의사와 간호사, 비정규직인 외래 간호사, 혈액을 이송하거나 의료기구를 소독하는 ‘여사님’ 그리고 청소노동자 순이에요. 같은 비정규직이라도 여사님들은 그래도 쉴곳이 있는데 청소노동자 분들은 병원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쉬시죠. 더럽고 치사해서라도 안정적인 정규직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죠.”


ㄱ씨가 보안근무요원의 처우가 열악하다거나 그들의 업무가 중요하다는 사실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규직’이 되기 위해 자신이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허탈감이 밀려오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취업하려면 대학 가야 한다고 해서 갔는데 조금은 억울하죠. 등록금이 껌값도 아니고 고졸 사원도 많은데…. 이기적이라고 비난해도 어쩔 수 없어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정규직의 전반적인 ‘하향 평준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컸다. 인천공항공사에서 두 달간 인턴으로 일했던 ㄴ씨(25)는 “공항공사에 배정된 예산이 그대로라면 기존 정규직 직원들의 복지나 성과급은 깎이고 신규채용에도 영향이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6개월차 공시생 ㄷ씨(24)도 “건강보험공단 같은 공기업들의 적자 수준이 심각한데 이번 전환이 채용에 영향을 줄까봐 그게 제일 불만”이라고 말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지난해 대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은 공기업 1위(잡코리아 조사)였다. 만점에 가까운 토익 점수와 각종 자격증이 없다면 서류전형 통과조차 어렵다. 하지만 그렇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한 공항공사 정규직들이 높은 급여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전체의 88%에 달하는 비정규직 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ㄹ씨(26)도 처음에는 정규직 전환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했다. ‘알바로 들어와서 190만원 벌다가 정규직 돼서 연봉 5000만원 받는다’는 단체카톡방 메시지를 기사에서 접한 뒤였다. 하지만 주간과 야간을 오가는 불규칙한 근무시간, 이용객의 폭언과 성희롱에 노출된 보안검색요원의 열악한 처우를 알게 되고 생각이 바뀌었다.


ㄹ씨는 “막상 고학력자인 취준생들에게 하루에 14시간 동안 육체노동을 하라고 한다면 그렇게까지 나서서 준비할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취업이 간절한 청년들 입장에서는 그 일자리의 근무환경까지 따질 여유가 없다. 그래서 눈앞에 보이는 정규직화를 부러워하는 것”이라고 했다.


ㅁ씨(28)는 “공공기관 사무직 채용의 수요 감소는 이번 전환과는 별개의 흐름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과정에서 드는 비용을 다른 부분에서 충당할 수도 있다”며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이번 논란에 불을 붙였을 것”이라고 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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