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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혁신의회와 국민부
 
(1) 혁신의회와 재만책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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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8월 3부통일회의의 결렬에 앞서 정의부를 이탈하여 촉성회에 가담한 일부는 길림성 내 김응섭의 집에서 임시간부회의를 열었다. 여기에는 김동삼·이종건·김상덕·배활산 등이 참회 협의하여 유일당촉성의 조직과 선전을 위하여 각자 구역을 분담하고 남·북만주 각지에서 적극적으로 선전할 것을 결의하였다. 같은 해 11월 중순 반석현 호란양창자(呼兰梁厂子/呼蘭梁廠子)에서 민족유일당의 이름으로 동맹규약을 발표함과 동시에 맹원(盟員)의 모집에 노력하고 있을 때 이에 신민부의 군정파와 참의부는 완전히 촉성회와 투합할 것을 결정하므로서 드디어 그해 12월 하순 길림에서는 신민부 군정파의 주창에 따라서 정의부의 탈퇴파의 가담과 더불어 양부는 해체를 선언하고 과도적 임시기관으로 혁신의회를 조직하였다. 그 부서를 보면, 회장에 김동삼, 중앙집행위원장 김원식 동위원 김희산(金希山)·이청천·정신 등 16명이며 군사위원장에 황학수(黄學秀), 동 위원에 이청천, 민사위원장에 김승학으로 하고 그 존속기간은 1년 이내로 하여 군정부 건립을 목적으로 하고 다음과 같이 주요 과업을 정하였다. 註 039
* 호란(呼兰/呼蘭) 양창자(梁厂子/梁廠子) : 검색 불가. 현재 지린시 판스시 후란진(吉林市 磐石市 呼兰镇) 근처?
 
1. 대당(大黨) 촉성의 적극적 방조(幇助)
2. 군사선후(軍事善後) 및 적세침입 방지
3. 합법적 중국지방 자치기관(同鄉會) 조직
4. 잔무 처리
 
그리고 한교(韓僑)의 자치를 위한 잠정적 행정구역으로 전 참의부의 관할구역을 남구(南區), 재야혁명당 소재 註 040 관할구역을 중구(中區), 전 신민부의 관할구역을 북구(北區)로 나누어 통합하기로 하였다. 이같이 체제를 갖춘 혁신의회는 비록 짧은 기간이었으나 친일주구배(親日走狗輩)인 선민부(鮮民府)와 한교동향회(韓僑同鄕會) 등 애국자의 탈을 쓰고 활동하던 친일단체의 박멸에도 주력하여 성과를 올렸다.註 041
* 한교(韓僑) :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 교포.
 
이와 같이 신민부와 참의부가 결속되어 혁신의회를 조직하여 민족운동을 계속하는 한편 기성회와도 의견의 일치를 보게 됨으로서 오랜 숙원이었던 민족유일독립당 재만책진회를 조직하고 협의회측에 대항할 새로운 진용을 구성하였던 것이니 그 집행위원으로는 註 042
 
촉성회측(정의부 탈퇴 구 간부) : 이청천·김동삼·김원식·김상덕 외 4명
참의부측 : 김회산·김소하 외 2명
신민부측(군정파) : 김좌진·황학수·김시야(金時野)·최호(崔灝)·정신
 
등이었다. 이제까지의 주요 과업이었던 대당촉성이 이룩된 셈이다.
 
이 민족유일독립당 재만책진회는 혁신의회와는 이신동체(二身同體)로 서 중앙집행위원회장에 김동삼, 동 위원에 김좌진·전성호(全聖鎬) 등을 선출하고 유일당의 촉성에 주력하기로 하고 다음과 같은 방침을 의결하였다.註 043
 
1. 일반 구성분자를 독려하여 당의 집성토대(集成土臺)에 분투 진출케 할 것
2. 조선의 혁명에 대한 이론을 전개하여 만주 운동의 내재적 모순을 정리하고 대당촉성의 준비에 노력할 것.
3. 대당이 아직 성립되기 전인 과도기에서 악독한 마수의 침입을 방지하고 한편 소위 만몽(滿蒙)침략 적극정책을 배제할 것.
 
아뭏든 혁신의회는 민족유일독립당 재만책진회의 결성은 보았지만 그 존속만기인 1929년 5월 전까지 군정부를 조직해야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혁신의회는 동 5월 중앙집행위원회의 결의에 의하여 1년 만기가 되어 해체하고 책진회를 근거로 활동하기로 하였다. 註 044
 
그후 만주 각지로부터 회집한 책진회의 간부들은 오랫동안 본대의 근거지를 이탈할 수 없기 때문에 김좌진·김시야 등은 북만주로, 이청천은 오상(五常)현으로 김희산·박희곤(朴希坤)·이백파 등은 남만주로 돌아간 후 일부가 일본 관헌에 체포되므로서 책진회는 정의부에서 탈퇴하여 책진회에서 활동한 김동삼·김상덕·김원식 등에 의해 많은 곤경 속에서 근근히 유지되었다. 註 045
 
이상에서 책진회를 떠난 김좌진 등은 세력의 만회에 주력하고 원래 신민부의 근거지었던 중동선 스토허즈/석두하자(石头河子/石頭河子)에서 동지를 규합하고 민족단체의 조성에 분주하던 중 같은 해 8월 한족총연합회(韓族總聯合會)를 조직하였다. 그 강령을 보면 註 046
 
1. 국가에 완전한 독립과 민족의 철저한 해방
2. 민족생활의 안정 및 혁명적 강령의 철저
3. 혁명민중의 조직 완성
 
이었다. 이 한족총연합회는 순 국수파인 김좌진 등과 무정부주의자의 일파인 남대하(南大廈)를 비롯하여 출신지방이 다른 국내 인사가 서로 제휴한 단체로 중동선 일대를 관할할 수 있는 영안현 산시(山市) 역전에 본부를 두고 주석에 김좌진이 취임하였다. 그러나 이듬해인 1930년 1월 24일 반대파인 재중국청년동맹 일파인 공산주의 청년에게 김좌진이 암살되므로 지방적 분열을 초래하여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고 정신 등에 의해 한족자치연합회로 개칭 계승되었다가 그해 7월 홍진·이청천·민무(閔武)·안훈(安勳)·황학수·신숙·이장녕(李章寧) 등이 추진하던 한국독립당에 합류함으로서 민족의 염원이던 유일독립당의 조직으로 항일 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註 047
* 중동선(中東線) = 중국동방철도 = 동청철도 = 북만주지역 만주횡단철도(하얼빈~치타)
 

 

 
註 039  國史編纂委員會編, 앞 책, p.878.
註 040  蔡根植, 앞 책 , p.151에 보면 김동삼(金東三)·이청천(李靑天) 등이 정의부(正義府)와 분열된 후 재야혁명당을 조직한 곳이라 함.
註 041  蔡根植, 앞 책, pp. 151~152.
註 042  慶尙北道警察部, 앞 책, p.127.
註 043  주 38)과 같음.
註 044  國史編纂委員會編,『韓國獨立運動史』五, p.732.
註 045  주 43)과 같음.
註 046  國史編纂委員會編,『韓國獨立運動史』五, p. 687.
註 047  蔡根植, 앞 책, p.156.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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