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용이 너무 길어서 나눠서 올립니다.
홍범도 생애와 독립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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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근대 100년의 역사는 외세의 침략으로 국권을 잃고 이민족 식민지가 되어 갖은 수모와 억압, 착취를 당해야 했던 굴욕과 고난의 역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굴욕과 고난의 민족 수난기에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계셨습니다. 그 분들은 조국과 겨레를 향한 숭고한 사랑, 불타는 정열, 강철 같은 의지로 국권을 회복하고 고난받는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고 희생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민족 구원의 일대 드라마가 펼쳐졌고, 민족정신이 크게 앙양되었습니다.
그 동안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는 이러한 애국 선열들의 생애를『독립운동가열전』이란 이름으로 펴냈습니다. 1992년 제1차로 류인석·김규식·김구·홍범도(1)·신규식·한용운·안중근 등 일곱 분의 열전을 내어 놓은 데 이어, 이번에 제2차로 이강년·서재필·홍범도(2)·이종일·차리석 등 다섯 분의 열전을 새로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이 열전은 연구소가 지난 10년간『독립운동사 자료총서』와『한국독립운동사연구』를 통해 지속적으로 애국지사들의 생애와 활동에 관한 새로운 자료들을 찾아내고 연구해 온 데 기초한 것입니다. 우리가 독립국가의 국민으로서 안정과 행복을 누리고 있는 바탕에는 조국을 찾기 위해 쏟은 애국지사들의 피땀과 눈물이 있었습니다. 열전 발간 사업은 바로 이 분들의 생애를 통해 우리의 삶을 일깨우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물질만능·배금주의, 무분별한 소비문화와 외래 풍조에 휩쓸려 범죄와 부조리, 이기주의가 증대해 가며, 도덕성은 날로 떨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통일을 성취하고 나아가 세계 일류 국가에 진입해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이러한 민족의 대업에 헌신하는 새로운 국민적 기상과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재충전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끝으로 집필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은 연구원 여러분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1997년 3월 1일
독립기념관 관장 박유철
머리말
홍범도는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사, 특히 무장투쟁사를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한 분으로서 일반 대중에게도 전설적 일화와 함께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에 대한 자료의 수집과 정리, 분석·연구 등은 우리의 독립운동사를 올바로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과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국내외 학계에서는 그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요즈음 발간되는 독립운동 관계의 각종 서적이나 자료집·연구 논문 등에서도 그와 관련된 사실이 적지 않게 언급되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중국 연변과 구소련(러시아) 등지의 학자들과 교류가 가능하고 그곳의 연구성과들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홍범도에 대한 연구는 종전보다 훨씬 좋은 여건을 갖추게 되었다.
홍범도와 그가 이끌었던 무장 세력의 활동에 대한 연구는 남한과 북한, 중국 연변, 구소련(러시아)과 일본 등지에서 상당히 진행되었는데 남한에서의 연구가 약간 많은 편이다. 그런데 연변에서는 1991년 여름에『홍범도장군』이라는 전기물을 국내외 통틀어 처음으로 출판하여 그에 대한 연구에서 신기원을 이룩하였다.『홍범도장군』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무릅쓰고 출판된 만큼 독자들에게 새로운 사실과 해석을 많이 제공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구자의 입장에서 볼 때 몇 가지 아쉬운 점이 눈에 띄었고, 특히 그것이 우리에게 별로 소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내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새로운 홍범도 전기의 출판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지은이는 홍범도에 대한 간단한 소책자를 저술하여 국내의 일반인들에게 홍범도의 비범한 일생을 알릴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홍범도는 함경도 지방에서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러시아의 연해주 지방과 중국의 만주지방을 왕래하며 일제 및 반민족·매판봉건세력과 싸웠다. 또한 그 과정에서 소비에트 정권을 지원하는 적군(赤軍)과 함께 제정 러시아를 지원하는 백위파(白衛派)를 상대로 투쟁하기도 하였고 노년에는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하여 거기에서 임종하였다. 이 같은 그의 다양한 편력과 넓은 범위에 걸친 행동반경, 수십 년을 헤아리는 장기간의 투쟁경력은 그에 대한 평가를 다양하게 하는 요소가 되었다. 근래의 국내외 학계에서 그에 대한 평가와 해석을 놓고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보기를 들면 남한 학계에서는 대체로 홍범도를 투철한 민족주의자로 이해하고 있으며 의병에서 독립군으로 발전한 모범적 사례를 보여주고 있는 인물로 간주한다. 반면에 북한과 연변, 러시아의 학계에서는 그를 프롤레타리아 계급인 가난한 농민 출신으로서 거병하여 일제와 싸우다가 나중에 사회주의자로 전향·발전한 영웅적 인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생기게 된 요인은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학자들이 서로 고립 분산적으로 연구하면서 자료의 부족이나 사상적 제약과 같은 어려움에 부딪히고 또 나름대로 시각의 차이 등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지은이는 이와 같은 제한적 요소를 물리치기 위해 가능하다면 많은 국내외 자료를 수집·정리하고 또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집약하여 홍범도의 일생을 여러 방면에서 종합적으로 살펴보기로 했다.
우리는 그의 이념이나 사상적 편력을 흑백논리로 재단하기보다 그가 당시에 어떤 상황과 입장에 처해 있었던가, 또 결국 그가 이루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었는가 하는 근본적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즉 보다 중요한 문제는 그의 삶을 얼마나 진솔하게 이해하고 또 그의 투철한 생애를 얼마나 합리적으로 조명·평가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인 것이다.
홍범도는 그와 싸웠던 일본군 스스로가 “날으는 장군(飛將軍)”으로 부를 정도로 기민한 유격전술을 구사하며 일본군을 연파, 명성을 떨쳤다. 당시 함경도 지방의 민중 사이에서 홍범도는 “축지법을 구사하는 신출귀몰의 명장” 등으로 까지 과장되게 알려져 있었다. 이는 그만큼 그의 활동이 비범했다는 것을 나타내며 동시에 그에 대한 사람들의 성원과 기대가 대단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홍범도는 정규군을 지휘·통솔하는 장군의 자리에 임명되거나 취임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또 그는 체계적으로 잘 정비되고 짜여져 있는 정식 교육기관에서 한 번도 교육을 받지 못한 ‘무식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군으로 불리우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가 뛰어난 군사적 자질을 발휘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그가 존경받을 만한 인품을 지닌 훌륭한 무인이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하겠다.
홍범도 사후인 1962년 대한민국 정부는 독립운동의 공적을 인정하여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그는 구소련(러시아) 지역에서 또한 ‘혁명가’, ‘소비에트 주권을 위하여 투쟁한 국제주의자 빨치산’ 등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연변에서도 뜨거운 민족애를 품은 사회주의자로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홍범도의 폭넓은 생애를 단적으로 증명하여 주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홍범도의 일생을 통해 우리 민족의 수난과 좌절, 동시에 오욕을 극복하기 위한 피나는 투쟁을 볼 수가 있다.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그의 생애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은 물론, 만주와 연해주·일본 등지의 복잡한 국제정세와 연관시킨 거시적 시야에서의 고찰이 요구된다.
지은이는 홍범도의 일생을 그려가면서 사실 이상으로 과장하거나 미화할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그의 생애는 굳이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뛰어넘는 특출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주의할 점은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한 개인의 역할을 지나치게 크게 보는 영웅주의 사관에 빠질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즉 역사의 발전은 몇몇 개인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개인들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는 사회나 민족, 혹은 제도나 기구, 또 특출한 개인으로 하여금 그의 역할을 가능케 하는 시대적 상황 등에 크게 영향 받는다는 것이다. 이제 지은이는 최근 러시아에서 국내에 소개된 홍범도의 이력서와 일지 등 새로운 자료와 참고문헌, 그리고 기존의 국내외 여러 자료 및 연구서들을 종합하여 개설적으로 그의 비범한 일생을 서술코자 한다.
홍범도의 생애는 크게 보아 5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지은이는 대략 아래와 같은 시기구분에 따라 그의 일생을 조명해 보려고 한다.
제1기 - 어린 시절 및 청·장년기(?): 출생부터 1907년 11월 본격적 의병활동의 개시 직전까지 시기
제2기 - 국내에서의 의병부대 조직과 항일무장투쟁시기: 1907년 11월부터 이듬해 11월 초 만주로 망명하기 직전까지의 시기
제3기 - 만주·연해주 지방에서의 재기도모 시기: 1908년 11월 초부터 1919년 8월 간도로 진입하기까지의 재기 준비시기
제4기 - 간도 지방에서의 국내 진입작전 및 독립전쟁 전개시기: 1919년 8월부터 1921년 1월 러시아의 연해주 지방으로 건너가기 직전까지 시기
제5기 - 연해주·중앙아시아에서의 만년: 1921년 1월부터 1943년 10월 임종하기까지 연해주·중앙아시아 지방에서의 노년기
이러한 시기구분이 엄격하게 확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홍범도의 생애를 이해하는 데에 약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시기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시기는 물론 국내에서의 의병부대 조직과 항일무장투쟁 시기, 그리고 1920년대 초 국내 진입작전과 간도에서 독립전쟁을 전개한 시기라 할 수 있다.
부족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집필과정에서 많은 가르침을 베풀어 주신 조동걸·신용하·성대경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이 책은 1992년 발간되었던『홍범도의 생애와 항일의병투쟁』을 일부 보완하고 미처 언급하지 못한 1920년대 이후의 독립전쟁 사실을 추가로 수록하였다.
최근 국내외에서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고 연구업적이 증가함에 따라 독립운동사 연구도 새로운 방법론과 접근방식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 책이 과연 그러한 요구에 얼마나 부응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자신할 수 없지만, 뒷날의 수정·보완을 기약하고자 한다.
1997년 3월 1일
혹성산 기슭에서
지은이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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