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암성 : 연주성(燕州城)
정상부분으로 이곳에서 장수가 지휘를 하였거나 봉화를 올리는 곳 등으로 판단됨
요동성에서 태자하(太子河)를 따라 20킬로미터 정도 상류로 올라가면 강가에 연주성이 있는데 대부분의 학자들이 고구려 때의 백암성이라고 보고 있다. 백암성은 고구려 양원왕 3년(서기 547년) 가을 7월에 개축했다는《삼국사기》의 기록이 있어 547년 보다 훨씬 이전에 축성된 것으로 보이나 언제 처음 쌓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당 태종은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입하여 국경지대의 여러 성과 더불어 요하 동쪽에 있는 요동성을 격전 끝에 점령하게 된다. 그 뒤 공격목표를 백암성으로 정하여 성의 서남부를 공격하자 성주 손대음(孫大音 혹은 손벌음)은 요동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에 겁을 먹고 항복함으로써 백암성은 그 기능을 상실하고 만다. 이때 성안에 1만 명의 백성들과 2400여 명의 병사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원형이 파괴되지 않아 한편으로는 고구려성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귀중한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백암성을 뺏은 당 태종은 바로 안시성으로 쳐들어가는데 그 안시성 싸움에서 양만춘 장군에게 패하여 귀국했지만, 백암성을 위시한 10여개 성과 요주, 개주, 암주 등의 3개주가 당나라 영토에 편입되었다.
한쪽이 강과 절벽으로 되어있는 천연요새의 모습
적의 주요 공격부분인 고구려 성벽의 모습
셩벽 위로 이동중인 사람들 위쪽이 적의 주 공격루트이다.
보존이 안되어 부너지고 있는 성벽
심하게 무너져내린 성벽
성 안쪽의 무너져 내린 성벽 모습
당나라 군사들이 백암성을 칠 때 그 성의 입지에 대하여 "산을 의지하고 강을 내려다보면 4면이 험난한 절벽이다."고 했는데 실제 백암성의 모습이 그러하다. 강가 절벽은 깍아지른 듯 하고 나머지 면은 10여 미터나 되는 돌벽으로 되어 있으며 현재 있는 서문 터에서 동북쪽으로 곧게 뻗어 올라간 성벽은 지금까지 압록강 이북에 남아 있는 고구려 성벽 가운데서 가장 견고하고 웅장하다. 이 직선상의 성벽에는 밖으로 3개의 치(雉)가 완벽하게 남아 있다.
고구려 성의 전형적인 치의 모습
“치”란 적이 접근하는 것을 일찍 관측하고 전투를 할 때 성벽으로 접근하는 적을 정면이나 측면에서 격퇴할수 있도록 성벽의 일부를 돌출시켜 네모나 반원형으로 쌓은 곳을 말한다.
치의 밑부분이 굽도리와 퇴물림방식으로 쌓여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성벽위에서 굽도리와 퇴물림부분을 찍은 모습
계단식으로 경사지게 굽도리식 쌓기를 한 모서리는 타원형으로 다듬어 직선인 윗부분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또 성벽 안쪽에도 성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사용되는 치를 쌓아올려 양쪽에서 받치는 형상을 이루어 더욱 튼튼하게 하였다. 내성에서 깍아지른 듯한 남쪽 절벽까지도 성벽이 남아 있으나 절벽 위라서 그다지 높게 쌓지는 않았다. 그리고 남쪽의 직벽은 태자하에 보(堡)를 쌓아 물이 차면 관광지로 변할 정도로 절묘하다.
성 안쪽 7부능선에 우물터로 추정되는 것을 발견
성밖에 또 다른 제2의 성곽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성벽의 틈새를 회로 마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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