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641953.html

끌려나간 할머니들…수녀들도 온몸으로 저항
등록 : 2014.06.11 20:12수정 : 2014.06.11 21:48 

경남 밀양시 초고압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 농성장 강제 철거가 이뤄진 11일 오전 129번 송전탑 건설예정지가 있는 부북면 평밭마을 움막에서 신부·수녀들과 마을 주민들이 팔을 걸고 누워 철거에 항의하고 있다. 밀양/김봉규 선임기자 류우종 기자 bong9@hani.co.kr

끌려나간 할머니 “노인네들 다 죽여가며 탑 세우면 뭐하나”
공무원·경찰 2200여명 들이닥쳐
주민들 끌어내고 움막 등 철거

할머니들의 희끗희끗한 머리카락 위로 흙먼지가 뿌옇게 내려앉았다. 주름진 눈가에선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조상 대대로 이곳에서 살았는데 어디로 가란 말이냐”며 울부짖던 할아버지는 한꺼번에 달려든 경찰 6명에게 손발을 붙들린 채 움막에서 끌려나왔다.

경남 밀양시와 경찰이 11일 765㎸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농성장을 모두 강제 철거했다.

밀양시와 경찰은 이날 아침 6시부터 오후 5시10분께까지 하루 종일 밀양시 직원 200명과 경찰 20개 중대 2000여명을 동원해 농성장 강제 철거를 위한 행정대집행을 했다. 주민들은 밀양시 산외면·상동면·부북면에 있는 101번·115번·127번·129번 등 4개 송전탑 건설 예정지에 농성장을 설치하고, 진입로에는 움막 4개를 설치해 공사를 막아왔다. 하지만 이날 행정대집행으로 공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단장면 금곡리의 움막 1곳을 뺀 농성장 4곳과 움막 3곳이 모두 철거됐다.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끌려가지 않으려고 서로의 몸을 쇠사슬로 묶고 저항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이 과정에서 김남순(87·여)씨 등 대부분 70~80대 노인들인 주민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19명과 경찰 5명이 다치거나 기절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또 경찰에게 분뇨를 뿌리며 저항한 박순연(77·여)씨 등 주민 2명과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보좌관 최철원(42)씨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경찰에 연행됐다.

강제 철거는 127번과 129번 송전탑 예정지의 진입로에 있는 부북면 위양리 장동마을 움막에서부터 시작됐다.

같은 장소에서 끌려가지 않기 위해 몸에 쇠사슬을 묶고 버티던 한 할머니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밀양/김봉규 선임기자 류우종 기자 bong9@hani.co.kr

아침 6시 밀양시 행정대집행 공무원은 장동마을 움막을 지키던 주민 10여명에게 “밀양 765㎸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소유의 불법 시설물을 6월2일까지 철거하도록 계고서를 송달했으나 지정된 기한까지 이행하지 않아 대집행을 통보한다”며 행정대집행 영장을 내보였다.

주민 10여명은 분뇨를 뿌리며 저항했지만 모두 붙잡혀 움막 밖으로 끌려나왔다. 여경 8명한테 붙잡힌 주민 구덕순(80·여)씨는 “평생 여기서 농사만 지으면서 살았다. 난 여기서 죽으련다. 못살게 굴지 마라”며 눈물을 흘렸다. 이웃 평밭마을의 권영길(77) 이장은 “한전이 의좋던 마을 주민들을 보상금으로 갈라놨다. 돈 때문에 주민들이 흩어졌다. 내 자식들이 여기서 살아야 하는데 그까짓 돈은 필요 없다. 예전처럼 마을을 되돌려 놓아라”고 외쳤다.

30여분 만에 움막을 철거한 밀양시 직원들과 경찰은 곧이어 129번 송전탑 예정지의 농성장 철거에 들어갔다.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50여명이 서로 팔을 붙잡고 버텼지만, 한꺼번에 밀어닥친 경찰한테 붙잡혀 농성장 밖으로 들려 나갔다. 속옷만 입고 저항하던 일부 주민은 담요에 덮인 채 끌려나갔다. 끌려나가지 않으려고 목에 쇠사슬을 걸고 있었지만, 경찰은 절단기로 쇠사슬을 끊었다. 주민 박아무개(80·여)씨는 끌려나가면서 “정부가 밀양 주민을 무시하고 힘으로 누르고 있다. 법도 없는 현 정권은 물러가라”고 외쳤다.

129번 농성장이 1시간여 만에 철거되자, 목과 허리 등에 쇠사슬로 묶고 지켜보던 127번 농성장 다섯 할머니의 눈가가 젖었다. 1년여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농성장을 지켜온 손희경(79·여)씨는 “지키면 될 줄 알았더니…”라는 말을 되뇌다 결국 목 놓아 울었다. 서울 성가소비녀회에서 온 수녀 10여명이 “할머니, 다치면 안 돼요. 하느님이 우리를 지켜주실 거예요”라며 할머니들을 위로했지만 손씨의 눈물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129번 농성장 철거를 마친 밀양시 직원들과 경찰이 아침 8시46분, 인근 127번 농성장에 들이닥쳤다. 127번 농성장도 1시간여 만에 허물어졌다. 경찰은 주민들을 끌어낸 뒤 곧바로 인간띠를 만들어 주민들이 다시 농성장에 들어가는 것을 막았다. 밀양시와 한전 직원들은 인간띠 안으로 들어가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농성장을 뜯어냈다. 농성장 앞 꽃동산이 마구 짓밟혔다.

낮 12시 상동면 고정리 115번 송전탑 예정지 농성장에서는 수녀들의 성가가 울려 퍼졌다.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나뭇가지로 십자가를 세우고 종이상자로 강단을 꾸려 미사를 올렸다. 하지만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경찰과 공무원들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일사불란하게 사람들을 끌어내고 농성장을 철거했다. 고답마을 주민 전춘자(74·여)씨는 “놔라, 놔라고. 내 몸띵이 내 맘대로도 못하나”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끌어내. 끌어내 빨리”라며 다그치는 경찰들의 고함에 묻혔다. 고답마을 주민 장혜춘(80)씨는 “기가 차고 분해서 못살겠다. 정부에서 하는 일이라도 사람을 살려 가며 해야지, 이래 노인네들 다 죽여 가며 하면 뭐하나. 내 평생 송전탑을 저주하며 살 기다”며 울분을 토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오후 4시30분 마지막 남은 101번 송전탑 예정지 농성장에 구슬픈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노래를 부르는 할아버지·할머니들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노래가 끝나자 경찰은 주민들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환자를 실어 나르는 헬리콥터가 일으킨 흙먼지가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어지럽게 뒤엉켰다.

밀양/김영동 이재욱 기자 yd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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