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5562
'박근혜 낙서'가 불러온 파문 지문 채취에 '배후 있냐' 추궁
[주장] 예술가가 스스로 입막음 하지 않는 세상을 위해
14.06.21 10:07 l 최종 업데이트 14.06.21 10:07 l 홍승희(aaao4)
▲ 이하 작가님의 작품스티커는 강릉에서 먼저 발견되었는데, 뉴스로 그 소식을 접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옥외광고물 위반이라는 명목으로 잠복수사하고 그림 내용까지 추궁하다니. 세상에 어떤 옥외광고물을 그렇게까지 단속한단 말인가? 손바닥만 한 스티커가 뭐가 무서웠던 걸까? ⓒ 이하
6월 1일 새벽, 춘천 지하상가 화장실에서 벽화를 그리던 A씨가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 나는 그를 미술을 전공한 분으로 알고 있었는데, 작업하기 3~4일 전쯤 그가 '작업을 도와주지 않겠냐'며 나에게 연락해왔다. 나는 거리미술의 일환으로 그의 활동을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 도와주기로 했다. 그날 A씨는 화장실 벽에 스텐실(stencil) 도안을 대고 락카로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하는 작품을 그렸다. 나는 그를 도우면서 그와 좀 떨어진 곳에서 역시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하는 이하 작가의 작품 스티커를 붙였다.
사건 당일 A씨만 현장에서 붙잡혔다. 그때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았는데, 처음에는 경범죄로 처리돼 곧 풀려날 것 같다고 해서 나는 그를 기다렸다가 같이 순대국밥이나 먹고 헤어지려고 했다. 그는 현장에서 낙서를 지우면서 선처를 부탁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 시간 후 갑자기 경찰이 수갑을 채워 형사과 강력팀으로 이관 중이라고 연락해왔다.
A씨는 40여 시간 동안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고작 '낙서사건'에 대한 경찰의 조사과정은 가관이었다. A씨의 차량 내부 전체에서 지문을 채취하고, 가방 소지품까지 검사해 모조리 압수해갔다는 것이다. 경찰은 카카오톡 대화 내용도 캡처했다고 한다. 또 배후가 있냐며, 돈을 받지 않았냐고 추궁했다고 한다. 조사과정의 억압적인 분위기 때문에 그는 내 정보까지 모두 진술했다. 경찰은 그의 과거 행적을 들춰내며 유도심문도 했다고 한다.
또 경찰은 나에 대한 개인적인 정보를 먼저 말하면서, 알고 있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난 두려워졌다. 지난해 겪은 일 때문이었다. 작년 11월, 강원지방경찰청에서 민간인 사찰 문건이 발견되었다. 그 문건엔 대학원 재학 당시 나의 지도교수였던 분의 이름과 내 정보가 올라가 있었다. 2010년 작성된 것으로 알려진 그 문건엔 나에 대한 미행 기록도 적혀 있었다. 이후 불법사찰 피해자들과 함께 강원경찰청에 면담도 요청해보았지만 그 어떤 사과도, 보상도 받지 못했다(관련기사 : "이민을 가는 수밖에 없다는 말 듣고 참담했다").
그 뒤로 난 사생활까지 누군가가 엿보고 있을 거란 불안에 많은 심리적 어려움을 겪었고,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후 상담도 받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면서 잘 극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벽화사건을 겪은 뒤엔 또 미행당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길거리를 살피고, 낯선 사람이 쫓아오면 계속 돌아보고 메모하는 버릇까지 생겼다.
<역사란 무엇인가> 책을 읽으면서는 이 책을 치워야 하나 생각도 했다. 웃지 못할 일이다. 경찰차만 봐도 위축됐고, 피하게 됐다. 생각해보면 공권력의 감시는 얼마나 폭력적인가. 나를 도와줄 국가기관이 없는 거다. 그들이 봤을 때 나는 이미 시민이 아닌 걸까? 나도 세금 많이 내고 있는데, '가만히' 있지 않아서 '순수'시민에 포함되지 못한 걸까?
거리미술 행위에 '재물손괴' 혐의... 경찰의 배후는 누구냐
얼마 후, 나에게도 출석요구서가 도착했다.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위반(재물손괴등)'의 피의자로 출석하라는 내용이었다. 스티커를 붙인 게 재물손괴인가? 예를 들면 화장실 변기를 부수거나 문짝을 망가뜨리는 것은 재물손괴이지만, 화장실 낙서는 과태료 부과 정도의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어마어마한 출석요구서가 날아오다니.
시간이 지날 수록 난 점점 진이 빠졌다. 사실 나의 신변은 걱정되지 않았다. 다만 이번 일에 대한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데 위축될까봐 두려웠다. 난 이번 일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과 소통했는데, 그 과정에서 그들의 두려움을 느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통령을 비판하는 걸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가만히 있는 이유가 '몰라서'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다 알고 있으면서도 두려워서 말 한 마디 못한 것이었다.
충격적이다. 미약한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람들에게 하나의 용기를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당당히 조사에도 임하고, 계속 '가만히 있지 말자'고 다짐했다. 내가 위축되면 다른 사람들도 더 위축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사를 받기 전날인 6월 12일 팝아티스트 이하 작가의 무죄 판결 소식이 들렸다. 이하 작가는 2012년 6월 '백설공주 박근혜' 풍자 벽보를 붙였다는 이유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1·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그날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관련기사 : '백설공주 박근혜' 벽보 이하씨 무죄 확정).
사실 너무 당연한 결과였다. 예술가는 자신이 숨 쉬는 곳에서 자유롭지 못하면 숨 쉴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자유롭게 숨 쉬는 것. 호흡하기 위해 예술하는 거다. 어떤 나라의 예술가가 경찰서를 들락거려야 하고, 법원에서 재판받아야 하는가? 그래도 상식의 편에 서 준 대법원의 판결에 안도했다.
그 다음 날, 대통령 풍자 낙서를 그려도 잡혀가지 않는 세상이 되길 바라며 당당히 조사에 임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조사관의 질문은 황당했다. 재물손괴라면서 왜 A씨가 그린 그림 내용을 묻고, 그 그림이 박 대통령이 아니냐고, 그걸 알고서 도와준 게 아니냐고 묻는 걸까? 이해가 안 됐다.
경찰이 보여준 증거사진에는 이하 작가님의 풍자 스티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거기 쓰여 있던 제목은 '대통령 비방용 스티커'였다. 그 그림을 '비방'이라고 어떻게 단정지을 수 있는가? 지시를 받았냐고, 배후가 있냐고 묻지만, 배후가 있는 건 그들이 아닌가. 명령이 싫고 억압이 싫어서 하는 일인데, 어떤 지시를 받아 따르겠는가? 너무 답답하고 황당했다.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만드는 정부... 아픈 시대일수록 예술이 꽃핀다
▲ 이하 작가님의 작품을 인쇄한 티셔츠를 입고 사진도 찍었다 ⓒ 홍승희
애초 이런 작업을 한 이유는 누구를 계몽하거나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 전에, 이렇게라도 안 하면 정말 못 살겠어서 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자기를 표현한다. 그 표현을 막고 부당하게 탄압하는 건 숨 쉬지 말라는 소리다. 표현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건 나보고 죽으라는 소리다.
나에겐 생존의 문제다. 하루에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수십 명이다. 그 중에 내가 포함되지 않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는 거다. 이대로는 이 답답한 땅에서 견뎌낼 수가 없기 때문에. 내 양심 앞에서, 먼저 떠나간 세월호의 아이들 앞에서 그들의 눈과 귀와 발이 되어주기로 약속했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안전의 부재, 보호의 부재로, 국민이 직접 나서서 진상규명 천만인 서명을 하게 만들고, 이야기할 통로가 없어 스티커를 붙이게 만든 이 정부는 정말로 부끄러워해야 한다. 나는 가만히 있고 싶은데, 가만히 있는 나를 자꾸 건드니까 움직일 수밖에 없는 거다. 왜 가만히 있는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장을 건드리고, 국민을 도발하는가? 대한민국은 아직도 마비되어 있다. 마비된 채로 가라앉지 않기 위해 계속 표현해야 한다. 느끼는 그대로 그 호흡을 멈추지 않기 위해 나는 계속 움직일 수밖에 없다.
현재 2차 조사까지 받고 나온 상태다. 쉽게 끝나진 않을 것 같다. 통화내역, 문자기록까지 입수해 추궁하는 걸 보니 배후를 조사하려고 하는 건지, 만들어내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으니 상식선에서 끝날 거라 믿고 있다.
아픈 시대일수록 예술이 꽃핀다고 했다. 정직한 사람이 울퉁불퉁한 땅에서 흔들리는 건 당연하다. 그 흔들림이 몸부림이 되고, 그 흔적이 예술이 아닐까? 예술가들이 스스로 입막음 하지 않고 시민들이 자체검열 하지 않는 세상을 위해, 나부터 더 당당하게 표현해야겠다.
6월 21일 토요일 서울 광화문에서 있을 아트액션에 참가해 '표현의 자유'에 대한 퍼포먼스도 할 예정이다. 이하 작가님의 작품을 인쇄한 티셔츠를 입고 사진도 찍었다. 함께할 수 있는 모든 표현을 즐겁게, 웃으면서 해나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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