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45451.html

“동거남이 때리면서 탈북 강요…내가 간첩이면 사형시키세요”
등록 : 2014.07.03 21:28수정 : 2014.07.04 00:00 

국가정보원이 지난 4월4일 언론에 공개한 경기도 시흥시 조남동 중앙합동신문센터 전경. 탈북자들은 입국하자마자 이곳에서 진짜 탈북자가 맞는지 조사를 받아야 한다. 오른쪽 건물에 숙소와 교육·후생시설이 있고, 정면 건물에는 조사실 등이 있다. 국가정보원 제공

[뉴스쏙] 국정원 여간첩 조작 의혹

국가정보원이 탈북 화교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조작하기 위해 유씨의 여동생을 중앙합동신문센터(합신센터)에서 회유·협박하던 2013년 봄, 합신센터에서는 또다른 탈북 여성에 대한 간첩 혐의 조사도 진행되고 있었다. 이후 유씨 사건은 여동생이 ‘강요에 못 이겨 오빠가 간첩이라고 허위 자백했다’고 폭로함으로써 조작 사실이 드러났지만, 이 여성은 1·2심 재판에서도 계속 ‘자백’을 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에 상고하는 과정에서 이 여성도 ‘불법적 강제수사에 따른 거짓 자백이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또다른 간첩 조작이 이뤄진 것일까. <한겨레>가 해당 사건의 실체에 접근해보았다.

탈북여성 이시은씨 
2013년 2월 연인 김씨와 입국 합신센터서 100여일 조사끝 자백 
그해 10월 간첩죄로 3년형 선고돼 탈북 강요한 김씨는 풀려나 정착 

공작교육·공작금도 안 받은 간첩? 거짓말 탐지기 회피 약물 사용 등 
황당한 내용 많고 자백이 유일 증거 
이씨, 대법원 판결 앞두고 탄원서 “국정원 직원이 시킨 거짓진술”

2012년 12월1일 압록강을 건넌 한 여성이 타이(태국)를 거쳐 7명의 탈북자와 함께 이듬해 2월8일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자그마한 체구의 이 여성이 나고 살던 데는 양강도 혜산시. 작사·작곡을 하고 때로 시도 쓰는 그를 지인들은 “학교 다닐 때 예뻐서 꽤 알려져 있었다”고들 기억한다. 예술대에서 성악을 전공한 그는 두 남자와 결혼했고 실패했고, 또 연애했다.

국가정보원은 그에게 이시은(40)이란 이름을 지어줬다. 이시은씨가 변호인들에게 말했다. “전 탈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동거남이던) 김영철(가명·42)이 때리면서 억지로 넘어가자고 했으니까요. 그래도 날 행복하게 해준다고 했으니까….”

모두 허사가 됐다.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합신센터)에 갇힌 상태에서 100여일 동안 조사받은 뒤 이시은씨만 ‘간첩’이 되었다. 국정원도, 검사도, 1·2심 재판부도 이견이 없었다. 이씨가 ‘자백’한 탓이다.

북한 보위사령부 공작원으로 2012년 6월께 포섭되어 한달 만에 ‘대한민국 침투’ 지령을 받고, 한때 연인 관계였던 반북 활동가 최상혁(가명·43·2006년 말 탈북)씨의 남·북한 연계선 및 동향 염탐, 최씨와 연관된 국정원 직원의 신원 파악 등 공작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탈북자로 위장 입국한 간첩(국가보안법의 간첩·특수잠입·탈출 혐의)이란 것이다.

대한민국에 발 디딘 이래 꼬박 1년5개월 합신센터와 수원구치소에서만 보낸 이씨는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처음으로 자백을 번복했다. “국정원 조사관이 시키는 대로 한 거짓 진술”이었다는 취지다. 지난 4월 2심 선고 뒤 법정에서 ‘펑펑 울었다’는 언론 기사를 의아하게 여긴 장경욱·박준영 변호사 등이 찾아간 뒤부터다. 1·2심에선 국선 변호사가 선임됐었다.

이시은씨가 2심 판결 뒤 작성한 자술서. 국정원 조사관이 거짓 자백을 유도하다 갑자기 “나를 (공작 대상으로) 겨냥하지는 않았는가” 묻기에 그만 웃고 말았다는 일화도 적고 있다. 이시은씨가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무력화하기 위해 사용했다는 밴드를 그린 그림. 이씨는 “사용 뒤 화장실에 버렸다”고 말해, 실재 여부는 누구도 확인한 바 없다.(아래)

■ 유일한 단서, 자백? 

<한겨레>가 수사기록, 진술서, 이시은씨와 지인 등을 취재·분석한 결과 ‘보위부 직파 간첩 이시은’을 납득하기까지 걸림돌이 지나치게 많았다.

우선 자백 내용에 실소와 비상식을 넘나드는 대목이 많다.

1심 판결문(수원지법 형사12부·재판장 김정운)을 보면, 이씨는 또다른 내연 관계였던 이석준 보위부 7과 과장의 상관(박대학 보위부장 등)에 의해 2012년 6월께 공작원으로 편입된 지 여섯달 만에 대한민국으로 위장 잠입했다. 접선방식이나 임무 등에 대한 지령 내지 교육은 박대학 부장 사무실에서 서너차례 이뤄진 게 전부다.

국정원의 이시은씨 신문조서를 보면, 탈북 일정과 경로를 이씨가 정한 것은 물론 탈북을 돕는 조선족 브로커에게 지급할 자금도 모두 이씨 스스로 마련했다. (만일 국경 경비대에 발각되었다면 즉시 사살됐을 수 있었다.) 이씨가 목숨을 담보로 보위부에 요구한 건 하나다. 당시 두번째 남편이던 이철중(가명·운전수)씨와 이혼하도록 해주고, 남편이 가져간 본인 재산을 되찾아달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요지의 자백은 검찰이 제출한 최상혁씨 등 이씨를 아는 국내 거주 탈북자 5명의 참고인 진술서, 박대학 보위부장의 존재를 확인해준 또다른 탈북자의 증언, 거짓말 탐지기 검사 결과 등으로 뒷받침된 모양이다. 그밖에 객관적 보강증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2심(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강영수) 판결 이후 이씨는 “임무 내용들 모두 거짓말이고, 날짜도 조사관과 함께 머리 짜내어 기록한 것”이라며 과거 자백 일체를 부정한다. 그는 자술서를 통해 “공작원 교육도, 공작비도 안 주고 국경도 봉쇄 속에서 넘는 간첩이 어디 있겠는가?”라며 “(국정원 조사관과) 조사(한)대로 꼭 (검찰 수사에서도 진술)해야 한다고 약속하면서 이제 하나원 가면 (국정원이) 집을 서울에 받게끔 도와주(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또 “(조사관 말대로) 1심에서 ‘자수’를 하였다고 하면 선처받으리라 생각했다”(대법원 탄원서)며 “제가 간첩이면 이 나라에서 사형하십시오”(자술서)라고 주장했다.

■ 탈북 안 한다고 두들겨맞는 간첩? 

신문조서 내용은 지인들의 진술과도 엇갈린다. 이시은씨는 2012년 6월부터 동거했던 김영철씨와 탈북해 합신센터에도 함께 입소했다. 김씨는 변호인들에게 “이시은은 엄마도 아프고 해서 (한국에) 오고 싶어하지 않았다. 내가 설득시켰다. 처음 탈북하기로 한 11월30일 아침 안 가겠다는 거다. 그래서 내가 때렸다. 울고불고하는 거 끌고 왔다”고 말했다. “겁이 나 못 가겠다고 했다가 영철이한테 죽도록 맞으며 울면서 탈북했다”는 이씨의 현재 진술과도 일치한다.

둘의 탈북 자금도 이씨와 혜산시 이웃으로 가까웠던 나연정(가명·40대·2003년 탈북)씨가 제공했다. “어렵게 대출금·장학금을 모아 1300만원 정도를 보냈다”는 나씨는 <한겨레>에 “2012년 2월 최상혁이 북에 있는 이시은과 통화하는 걸 듣고 그 뒤부터 시은과 연락하고 생활비도 보냈다. (이시은과 김영철) 둘에게 아예 탈북하라고 내가 권유했다”고 말했다. 이시은씨는 친정 생활형편이 넉넉한 편이고, 지역 보위부 과장과도 한때 내연 관계여서 적게나마 ‘특권’을 누리던 이다. 그러다 폭력 남편을 피해 교화소에서 갓 출소한 김영철씨와 동거하며 생활고가 커졌다. 탈북이 더 급했던 동거남이 탈북 자금까지 손수 마련한 ‘간첩’을 때려가며 ‘직파’시킨 셈이다.

국정원 조사 과정에서 이씨는 “내가 영철이 상부선이니 걔도 간첩”이라거나 “영철이와 (제3의 남파 간첩인) ‘꼽새’가 한 조”라는 진술도 했으나, 김영철씨는 무난히 정착금을 받아 가정을 이룬 채 살고 있다.

 

■ 남자를 사랑한 죄? 

이시은씨는 <한겨레>와의 문답 서신을 통해 “(합신센터에서) 최상혁을 안다고 말한 뒤부터 조사 강도가 심해졌다”고 말했다. “처음엔 영철이와 왔으니 그 관계에만 신경썼는데 조사관이 상혁을 만나고 온 뒤부터 조사가 딴 방향으로 흘렀고 저도 압박받으며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반북 활동가인 최상혁씨는 2005~2006년 이시은씨와 동거했던 관계였으나, 2006년 말 다른 여성과 탈북했다.

이씨는 “(2심 판결 뒤 수사자료 등을 보니) 상혁이 반북의 원류이며 국정원 보호대상이니 제가 몰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제가 진짜 간첩이면 (조사 과정에서) 최상혁을 말했겠느냐”며 변호인들에게 되물었다.

최상혁씨도 2012년 11월 이시은씨에게 탈북을 권유했다. 하지만 막상 간첩죄 수사 때는 국정원을 적극 도왔다. 그는 2013년 6월13일 국정원 직원과 함께 이씨를 접견한 자리에서 “아직 털어놓지 않은 게 있으면 내려놔라”라고 말했고, “(단둘이 남은 자리에선) 이시은이 ‘너 주위에 남자든 여자든 꼭 조심하라’고 10여차례 얘기했다”고 국정원에 밝힌다. 주변 지인에겐 “이시은은 날 죽이러 왔고, 그걸 자백한 아이”라고 말하고 있다.

공작원의 사령탑 격인 박대학 보위부장의 이름도 최씨가 파악해 국정원에 알려줬다. 이씨는 2심 뒤 “나는 성과 얼굴밖에 몰랐는데 국정원이 ‘박대학’이라고 알려준 것”이라고 말한다.

최-이씨 관계를 잘 아는 한 탈북자는 “시은이 (최씨에 대한 애증으로) 감정적 반응을 하다가 사건이 커진 것 같다”고 <한겨레>에 말했다.

■ 거짓말 탐지기 회피 약물을 최초로 사용한 간첩?

이시은씨 수사기록에는 지금껏 간첩 수사에서 단 한차례도 등장하지 않았던 증거물이 있다. 거짓말 탐지기를 무력화한다는 밴드형 부착약물로, 이씨가 사용했다는 자백과 그림이 담겨 있다.

이시은씨는 첫번째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목과 배에 붙인 밴드 덕에 통과할 수 있었다고 진술했다. 2013년 4월3일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한다는 말을 듣고, 점심때 그간 가방에 보관해뒀던 반창고형 약물을 붙이고 4일 실제 테스트에 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약물에 대해 그간의 간첩 수사는 물론 해외 의학계에서도 보고된 바가 없다. 수사기록상 이씨의 진술대로라면 “(북한) 박사들 5명이 2012년 개발한 것으로, 박대학 보위부장은 5개 밴드 가운데 2개를 주었다.” 붙이기만 해도 “기억을 마비시킨다”는 ‘마법의 밴드’다.

변호인들은 “이런 황당한 자백까지 믿어야 하느냐”고 따져묻는다. 이시은씨는 “거짓말 탐지기 검사 결과를 조사관이 알려주지 않고 내게 불리하게 나온 것처럼 계속 모욕을 줬다. 그래서 조사관 약을 올리려고 지어낸 말”이라고 말했다. 부착형 멀미약에서 연상했다는 게 이씨 주장이다.

해당 약물은 존재 여부를 떠나 반입 자체가 불가능해 보인다. 합신센터를 거친 탈북자들은 알몸상태에서 소지품·가방을 검사받고, 새 옷을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씨는 브래지어 안에 약물을 숨겼다가 제 가방에 옮겨 한달 넘게 보관하고 있었단 얘기다.

■ 검찰 “회유 사실 없다”

이시은씨는 변호인들을 통해, 합신센터에서 위장 탈북 조사라는 명목으로 사실상의 강압·감금 수사를 할 수 있게 하는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 지원에 관한 법률’ 7조3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도 지난달 말 신청했다.

검찰은 대법원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피고인을 100여일 동안 조사한 것은) 피고인이 숨길 이유가 없는 친인척의 생년월일, 직업 등을 임의로 번복해 비보호 대상으로 의심되어 조사가 길어진, 필요최소한도의 적법행위”라며 “조사 내용을 번복하면 불이익을 받는다거나 (감옥 대신) 하나원에 간다는 취지로 회유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또 “속옷 탈의를 꺼리는 경우 그대로 신체검사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이르면 이달 내 선고를 예정하고 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