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8987

"박근혜, 세월호 재난 자본주의 작동시켜"
[인터뷰] <내릴 수 없는 배> 펴낸 우석훈
전홍기혜 기자   기사입력 2014.07.25 11:11:14 

'재난 자본주의'. 

세월호 참사 100일을 앞두고 세월호 관련 책 <내릴 수 없는 배>를 낸 우석훈 박사(경제학)가 강조한 문제다. 

우 박사는 23일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대응책이 '재난 자본주의'의 작동을 극명히 보여준다고 말했다. 

"재난 자본주의는 사람들이 엄청난 재앙에 놀라고 당황할 때, 그 사회 기득권 집단이 자신들이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을 강력히 전개하는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관피아' 문제를 지적하면서 대책 중 하나로 '5급 공무원 공채 숫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했습니다. 공무원 공채를 줄이고 특채를 늘리면, 그 자리를 누가 차지하겠습니까? 부유층 자녀들이 특채로 5급 공무원이 되겠다는 얘기죠."

▲ 우석훈 박사(경제학) ⓒ프레시안(손문상)
▲ 우석훈 박사(경제학) ⓒ프레시안(손문상)

세월호 참사와 같은 재난에 좀더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국가안전처를 신설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 제안도 마찬가지로 '개악'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안전처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이걸 만드는 데만 1년 넘게 걸릴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 나머지 임기를 보내겠다고 볼 수도 있죠.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위기관리센터를 만들어서 국가 재난을 대응하는 콘트롤 타워 역할을 여기서 했습니다. 이걸 이명박 정부 때 없애버렸어요. 

사실 세월호 참사 때도 전국민이 목격한 것처럼, 대형 참사가 터지면 구조 가능한 시간이 매우 짧습니다. 1분, 1초가 너무 중요하거든요. '바다에 뛰어들어서 구조하라'는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최고 권력자 밖에 없어요. 다른 사람은 돈과 목숨이 달린 일이라서 의사결정을 할 수 없습니다.  

지금 대통령이 바로 의사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는데, 왜 이걸 없애고 국가안전처를 만들겠다고 합니까? 결국 대통령이 정치적 책임을 떠안기 싫다는 뜻 아닌가요?"

우 박사는 미국도 국토안전부에서 재난에 대응하는 쪽으로 행정조직을 개편했다가 2005년 뉴올리언즈를 강타한 태풍 카트리나 이후 다시 백악관이 재난시 콘트롤 타워 역할을 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1993년 서해페리호 참사 이후 '재난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나온 대책이 이번 세월호 참사를 잉태했다고 우 박사는 주장했다. 

"이번 사태 때 해양수산부가 초기에 약간 비판을 받다가 이후에는 별다른 문제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잘했다기보다는 서해페리호 사태 때 선박 관리 관련된 업무를 민간에 넘겨버렸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노후된 선박, 무리한 증개축, 화물 과적 등이었습니다. 이와 관련된 업무를 서해페리호 이후 해수부에서 민간으로 넘겼고, 이번에 드러났듯이 제대로 관리, 감독되지 않았습니다."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손문상) 

우 박사는 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사회의 경제 구조에 주목하지 않으면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가 세월호 참사 100일째인 24일 1면 기사를 통해 강조한 것처럼 '안전불감증' 탓이 아니다. 

"한국 사람이라고 해서 특별히 안전에 불감하다? 이건 식민지 시대 '조선 민족개조론' 같은 제국주의적 시각이라고 봅니다. 안전불감증은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는 논리죠. 

사고가 난 근본원인은 선박산업의 문제입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연안 여객의 이윤율이 매우 떨어졌습니다. 우리나라는 고속철도(KTX)와 저가 항공이 비슷한 시기에 다 도입됐습니다. 여기에 고유가까지 겹쳤습니다. 승객은 줄고 비용은 늘고, 이윤이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걸 어떻게 해결했냐면, 이명박 정부에서 규제 완화라는 명분하에 선박 연령을 늘려주는 쪽으로 해결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선박 제한 연령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렸고, 세월호는 일본에서 중고 선박을 사다가 증축한 배다. 

"참으로 이상한 일은 우리가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되기 전에는 못 살아도 새 배를 탔거든요. 근데 이전보다 훨씬 잘 살게 됐는데, 일본이 타다가 버린 배를 타는 나라가 됐어요. 중국도 선박 제한 연령이 28년입니다. 조금만 더 가면 중국이 타다 버린 배를 타는 나라가 되게 생겼어요."

연간 350만 명이 연안 여객을 이용한다. 세월호 탑승객을 보면 경제적 격차에 따른 '안전의 양극화' 문제는 여실히 드러난다. 또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들처럼 사회적 약자들은 개인의 비용 절감과는 무관하게 배에 '태워졌다'.

우 박사는 이 책을 통해 2011년 부산해양항만청과 제주해양관리단이 '페리 산업이 어려우니 수학여행을 보내 달라'고 교육당국 등에 협조 공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세월호 운임이 편도 7만1000원으로 저가항공과 비교하면 결코 싸지 않다는 점도 확인했다. 

"수학여행 비용 일부가 페리 산업의 생존에 보태진 것이고 국가가 교육이란 이름으로 학생들을 동원해 업계의 이익을 보장"해 준 셈이다. 집권 후 '4대강 사업'으로 축소되긴 했지만,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에서 선박업계의 '수익성 보장'은 더 중요한 문제로 여겨졌을지 모른다. 

인천공항은 세계 공항 서비스 평가에서 9년째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비행기와 연안 선박의 '안전'을 비교해보면 우리 사회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양극화'의 또 다른 측면을 확인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배경 뿐 아니라 참사 이후로도 '양극화'는 계속 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제기된 의문 중 하나가 '서울 강남 고등학교 학생들이 피해자였다면 구조 작업이 이렇게 엉망으로 진행됐을까'입니다. 괜한 억측이 아닙니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수학여행 실태를 좀 들여다보니 서울 강남 지역의 학교들은 비행기를 이용하더라구요. 

또 강남 지역에서 최근 일어난 재난이 2011년 우면산 산사태였습니다. 당시 인근 호텔이 피해자들에게 빵을 무료로 주고 방도 최저가로 제공해줬어요. 세월호 유가족들은 어떤가요. 체육관에서 난민처럼 지냈습니다. 팽목항에서 유가족들이 수용됐던 진도 체육관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 국립 남도국악원이 있어요. 숙박시설이 갖춰진 이 곳에 누가 묵었나요? 현지 파견된 공무원, 경찰, 일부 기자들이 묵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정치와 경제가 가장 슬프게 만난" 사건인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책'을 마련한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무슨 생각으로 말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박근혜 대통령 말대로 "국가개조"가 필요한 일이다. 우 박사는 그 첫 단추로 '연안여객의 완전공영제'를 제안한다. 스코틀랜드, 캐나다 등이 '안전'을 위해 연안여객 공영제를 도입한 나라들이다.  

"연안 여객 산업 규모를 보니까 선박 회사의 부채까지 포함하면 1조 원, 부채를 제하면 4000억 원 정도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현재 운항이 중단된 세월호 노선인 인천에서 제주만 시범적으로 운행한다고 하면, 연간 50억 원 정도면 됩니다. 이 노선은 청해진이 독점적으로 운항하던 것입니다. 여긴 현재 운항하고 있는 회사가 없으니, 관련된 4개 지자체(서울, 경기, 인천, 제주)가 같이 운항하면 어떨까요. 여기에 정부가 보조금을 주는 방식으로 하면, 배의 '안전' 문제는 개선될 것 같습니다."

▲ <내릴 수 없는 배>, 우석훈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 <내릴 수 없는 배>, 우석훈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버스 공영제'가 주요한 정책 의제가 됐던 것처럼, 연안 여객의 성공적인 '공영제'는 다른 대중교통수단 문제에도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민영화' 문제와 정확히 반대로 가자는 얘기다. 

"세월호 참사는 민간의 실패를 보여줍니다. 선박과 관련해 정부가 관리하던 영역을 민간으로 떠넘길 경우 얼마나 위험한 일이 벌어지는지, '재난 자본주의' 시스템이 작동해 만들어진 구조가 어떻게 사회, 경제적 약자들의 생명을 위협하는지 보여준 셈이죠. 

물론 세월호 참사를 해결하고 치유하는 문제는 매우 장기적 과제입니다. 그 시작은 '내릴 수 없는 배'에 태워진 우리 모두가 이 위험한 배를 정박하고 내리려는 노력을 하는 것에서 시작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라는 우 박사가 책 서문에 인용한 까뮈에 소설 <페스트>에 나오는 대사처럼, 이제 한국 사회는 '아이들을 떼죽음으로 몰아넣는' 야만의 경제 시스템에 대한 고민과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서 정치와 경제가 가장 슬프게 만난 사건"이기 때문에, 그 해결책 역시 정치와 경제가 만나 격렬한 파열음을 내지 않고는 손에 잡히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이란 배의 '경로 수정', 성공할 수 있을까. 현재 진행 중인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논란이 그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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