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6588


4·15 총선에서 참패한 조선일보 

시대착오 프레임 공세, 영상매체 부상에 보수신문 영향력 감소…‘정치·언론·검찰’ 유착 주류서 밀렸다는 분석도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co.kr 승인 2020.04.16 11:10


21대 총선을 앞두고 조선일보는 두렵다고 했다. 총선 당일 “이 정권이 2년 뒤 대선에선 어떤 일을 벌일지 두려울 정도”라고 사설을 마무리했다. 전날인 14일 ‘김대중칼럼’에선 “이번 선거처럼 마음이 무겁고 결과가 두려운 선거가 있었는지 기억이 없다”고 했다. 


이유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미래통합당이 선거구도에서 밀리고 있어서다. 정권 만3년, 회고적 투표 성격이 짙은 시점인데도 제1야당이 참패했다. 조선일보의 주요기사 상당수가 통합당 논평으로 이어진 마당에 통합당만의 실패로 보긴 어렵다. 조선일보가 이번 총선을 두려워한 다른 이유가 더 주목할만하다. 더는 보수신문이 여론시장과 선거판을 주도할 수 없어서다. 


조선일보는 여전히 ‘1등’ 신문이다. 유일하게 유료부수 100만 부가 넘는다. 조선일보는 총선 당일까지 정치면뿐 아니라 1면과 사설, 사진기사에서도 통합당을 전폭 밀어줬다. 그럼에도 결과가 좋지 않았다. 


▲ 총선 당일인 15일 조선일보 1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어두운 표정이지만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은 살짝 미소짓는 표정이다. 9대 일간지 중 유일하게 투표독려가 아닌 대통령 비판 기사를 1면톱에 실었다.

▲ 총선 당일인 15일 조선일보 1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어두운 표정이지만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은 살짝 미소짓는 표정이다. 9대 일간지 중 유일하게 투표독려가 아닌 대통령 비판 기사를 1면톱에 실었다.


우선 프레임 자체가 낡았다. 조선일보는 총선을 앞두고 친문독재저지(정권심판론), 조국 프레임, 여당에만 유리한 선거법, ‘재난지원금=포퓰리즘’ 등의 프레임을 내걸었다. 하나씩 뜯어보면 유권자들을 설득하기 어려운 주장들이었다. 


선거법 개정은 여당을 포함해 거대 양당이 의석을 과점하는 구조를 바꾸고 선거의 비례성을 강화하자는 취지였다. 선거법이 통합당에만 불리하다는 주장은 우매한 대중을 선동하는 수준의 궤변이었다. 


조선일보는 통합당이 ‘조국 대 반조국’ 구도를 만드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평가하며 이를 지원했다. 여당의 위선, 불공정성을 드러내려는 시도였지만 사실 흘러간 이슈였고 조선일보의 노력으로 되살리지 못했다. ‘조국 대전’이라고 부를 만한 경기 남양주병에서 조국 법무장관 시절 검찰개혁위원을 지낸 김용민 후보가 ‘조국 저격수’였던 주광덕 통합당 후보를 꺾었다. ‘조국키드’로 불린 경기 안산단원을 김남국 후보는 조선일보 단독보도로 여성비하 논란까지 더해졌지만 당선됐다. 


코로나 사태로 정부를 비판한 것도 오판이었다. 조선일보는 “정부가 코로나19 방역에 실패했다”거나 “‘모범 방역’ 우기려 국민을 험지로 내몬다”고 비판했다. 서구선진국 코로나 상황과 비교할 때 와닿기 어려운 주장이었다. 오히려 코로나 방역 성과가 다른 정부 실정까지 상쇄한 양상이다.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이나 자치단체의 재난수당 등을 ‘총선용 돈 살포’, ‘포퓰리즘’이라고 명명한 것도 조선일보 프레임이 얼마나 낡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보수언론은 복지공약이 나올 때마다 포퓰리즘·세금낭비라고 비난해왔다. 하지만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기초연금 인상 등 보편복지를 주장했고 당선됐다. 선거국면엔 민심을 읽고 경쟁상대를 누르는 ‘정치’를 해야지, 조선일보처럼 관성과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정책을 ‘고집’해선 선택받지 못한다는 게 이번에도 드러났다. 


코로나 이후 경기 악화로 국민들에겐 지원이 절실하다. 대부분 현재 정부가 결정한 지원액을 ‘돈 살포’로 받아들일 만큼 과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조선일보와 사실상 동맹관계인 통합당조차 각종 재난수당을 주장하며 조선일보 프레임을 외면했다. 


다수 유권자 눈에 띄지 않았겠지만 조선일보는 ‘북풍’과 ‘대통령 총선개입’에도 불을 지폈다. 선거판에 영향을 끼치지 못함은 물론 이를 받아쓰는 언론도 거의 없었다.


▲ 사전투표일인 지난 11일 조선일보는 총선 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까지 실었다.

▲ 사전투표일인 지난 11일 조선일보는 총선 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까지 실었다.


조선일보는 지난 11일 ‘김일성 모자 쓴 김정은 “포탄에 눈 달린 듯 명중”’이란 기사를 다른 면도 아닌 4·15총선면(6면)에 배치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진도 옆에 실었다. 북한이 발사체를 발사하기 전이다. 선거 전날 북한이 발사체를 쏘자 15일 조선일보는 이를 1면에 배치했다. 동아일보는 선거면 톱기사로 이 소식을 보도했다. 


문 대통령이 총선에 개입했다는 보도도 수차례 나왔다. 조선일보는 지난 9일 사설에서 대통령이 8일간 5회 지역을 찾았다며 선거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총선 당일 1면 톱에서 대통령이 선거 전날 긴급재난지원금 신청을 지시했다며 “추악한 매표행위”, “금권선거”라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13일 기획기사로 한면을 털어 ‘투표를 앞두고 코로나 검사를 못하게 해 확진자수가 감소한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이 신문은 14일 선거면에서 한 사회복지관의 ‘기표소 들어가 도장 1번만 찍으세요’란 유인물이 ‘기호 1번 더불어민주당을 찍으라는 것’이란 주장을 ‘논란’이라며 전했다. 선거전 보수언론의 다급함이 느껴지는 무리한 보도였다.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는 14일 한겨레TV에서 최근 보수언론 1면 기사를 언급하며 “코로나 충격으로 인한 경제·사회 붕괴를 막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언론도 지구적 차원의 재난에 맞서 인간과 공동체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공론형성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겨우 한차례 선거 승패에 매달릴 때가 아니”라며 “보수언론이 지금처럼 편파 보도를 계속하면 신뢰를 잃고 우리 사회에서 퇴출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가 영향력을 잃었다는 다른 표현이다. 


언론계 내에서 조선일보 입지가 좁아지기도 했다. 과거 펜기자들이 강했다면 민주화 이후 PD·아나운서 등 방송언론인의 힘이 커졌고 이들이 언론자유를 주장하며 입지를 넓혔다는 분석이다. 고재열 전 시사IN 기자는 1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2012년 방송사 총파업 때부터 ‘대한민국 주류가 교체된다’고 봤다”며 “이때 파업한 90년대 사번이 지금 방송사 임원들”이라고 말했다. 


올드미디어 쇠퇴도 한 원인이다. 신의한수(123만), 진성호방송(87만), 펜앤드마이크TV(67만), 김태우TV(60만) 등 보수진영 주요 유튜브 채널은 구독자 수만으로 조중동 못지않다. 그러나 허위정보나 막말을 유통하는 플랫폼이라 외연 확장이 필요한 선거판에 도움이 되긴 어렵다. 반응이 뜨겁고 지지층 결집에 유리하다는 판단에 통합당도 조선일보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 지난해 2월27일 오후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제3차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황교안 당대표가 당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지난해 2월27일 오후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제3차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황교안 당대표가 당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통합당이 조선일보 기대에 어긋난 건 이번 선거만의 일은 아니다. 지난해 3월 당대표 선거에서 조선일보는 오세훈를 밀었지만 통합당(당시 자유한국당)은 황교안을 택했다. 이는 보수야당이 박근혜를 버려야 한다는 2016년 하반기부터 이어진 탄핵정국에서도 나왔던 조선일보의 ‘주문’이다. 결국 황교안 대표는 종로에서 참패했고 선거결과에 책임지며 대표직을 내려놨다.  


이번 총선은 정치·언론·검찰의 유착이 끊어지는 구조변화일 수 있다. 고 전 기자는 “이번 총선은 구시대의 정언검(통합당·조선일보·정치검찰) 유착이 2류로 전락하는 기점이 될 것”이라고 봤다. 지난해 검찰개혁 집회를 더해 보면 일리 있는 분석이다. 이래저래 조선일보의 시대가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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